아름다운 마무리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법정 스님이 떠나고 나서도 그가 남긴 글들은 사람들을 맑고 향기롭게 해주네요. 뜨거운 차를 잔잔하게 마시듯 고요하면서도 묵직한 그의 글들을 나지막이 읊으면서 천천히 읽다보면 놀랍게도 삶의 무게는 보다 더 가벼워지고 마음은 더 시원해집니다. 그의 글들이 먼지털이마냥 오랜 세월 내 안에 묵었던 때들과 더께들을 떨어져나가게 해주니까요.

 

법정스님의『아름다운 마무리』[문학의숲. 2008]를 넘기다보니, 이명박 정부가 하고 있는 4대강 정책 같이 잘못된 일들엔 누구보다 불호령을 치지만 일상에선 친절과 배려에 힘쓰라고 거듭 얘기하시네요. “만나는 대상마다 그가 곧 내 ‘복밭’이고 ‘선지식’임”을 알아야 하는데, 그 까닭은 “그때 그곳에 그가 있어 내게 친절을 일깨우고 따뜻한 배려를 낳게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친절이다. 이웃에 대한 따뜻한 배려다. 사람끼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 대해서 보다 따뜻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친절과 따뜻한 보살핌이 진정한 ‘대한민국’을 이루고, 믿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10쪽

 

이렇게 세상이 엉망인 까닭은 어쩌면 이념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대단하다는 지식인들이 저마다 자기가 옳다며 내놓은 이론들은 차고 넘칩니다. 그렇지만 그 이론들만큼, 드잡이하고 실랑이하는 만큼, 사람들의 삶이 더 행복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오히려 현실감각에서 멀어진 채 뜬구름 잡는 소리만 늘어놓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일그러진 현실에 눈감아서야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특정한 이론을 섬겨서도 안 되지요. 일상세계가 텁텁하고 힘겨운 까닭은 뛰어난 지도자가 정치를 하지 않았거나 어떤 사상을 밑천삼아 ‘변혁’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너와 나 사이에 살가움과 친절함이 달리기 때문이지요. 가까운 사람들과도 다정하고 행복하게 지낼 줄 모르는데, 어찌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좋은 사회를 이룩할 수 있겠는지요.

 

사람에겐 거룩한 글자들이나 텅 빈 몸짓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기에 이념을 지닌 채 앞만 보고 걸어갈 수 없죠. 짬짬이 발 쉼을 해야 하고 멈춰 서서 풍치도 느끼고, 이따금 길이 막히면 에움길로 가봐야 하고, 때론 쉬고 싶을 때는 퍼질러 앉아 생막걸리 한잔도 나눠야 합니다. 몸과 몸을 맞대고, 눈과 눈이 마주치는 생생한 관계를 통해서 사람들은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따라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과 정이 도타워질 수 있게끔 사람들을 거듭나게 해주는 ‘영성의 기운’은 ‘사회과학지식’만치 소중하지요. 푸코의 주장대로 “권력은 손에 넣거나 빼앗거나 서로 나눠 갖는 어떤 것, 간직하거나 놓치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쁜 놈들’에게서 권력을 빼앗아와 세상을 바꾸자는 생각은 이제 털어내어야 합니다. 권력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른바 ‘사회과학자들’ 가운데는 ‘엘리트 의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먹물들로 세상을 그린답시고 옆 사람들에게 먹칠하며 업신여기기를 마다않는 이들이 드물지 않습니다. 날카로움과 야멸침을 가름하지 못하고, 뾰족한 꼬집기와 싸늘한 헐뜯기를 헷갈려하는 것이죠. 먹통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법정스님의 글은 자신이 바꾸고자 하는 현실이 무엇을 위한 건지 되돌아보게끔 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사막여행보다 더 막막한 인생여행을 할 때, 사람은 사상만으로 달려갈 수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살포시 감싸안아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친절함과 살가움은 삶을 촉촉하게 해주는 녹녹함입니다.

 

이러한 깍듯함과 자비심을 품을 때만이 삶이 살아있게 됩니다. 썩은 살은 아프더라도 도려내어야 하고 삭정이는 잘라버려야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남에 대한 너그러움과 다사로움을 놓치는 순간, 삶은 성말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마음의 끈을 놓치다보면 어느새 죽음의 골짜기로 굴러 떨어지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법정 스님은 내 안의 정겨움을 지키라고 죽비소리를 해주시네요.

 

삶의 비참함은 죽는다는 사실보다도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 죽어간다는 사실에 있다. 가령 꽃이나 달을 보고도 반길 줄 모르는 무뎌진 감성, 저녁노을 앞에서 지나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줄 모르는 무감각, 넋을 잃고 텔레비전 앞에서 허물어져 가는 일상 등, 이런 현상이 곧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섬이다. 88~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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