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다시 묻다 - 새로운 시대의 가치혁명을 위하여
윤한결.이윤영 지음 / 궁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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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문학은 사람을 달라지게 해주는 발판입니다. 인디고 서원에서 청소년 때부터 인문학을 공부한 끝에 새로운 주체들로 자라난 젊은이들은 세계로 떠납니다. 인디고 유스 북페어란 팀을 꾸린 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지식인들과 가치를 위해 애쓰는 단체들을 찾아가 만납니다. 그 이야기를 엮은 <가치를 다시 묻다>(궁리. 2010)는 어떤 가치를 품고 살아야 하는지 일러주는 나침반이네요.

 

이들은 지구마을을 찾아다니는데, 주제를 정해놓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지요. 북아메리카ㅡ정의와 희망, 아시아ㅡ평등과 다양성, 유럽ㅡ자유와 자기실현, 아프리카ㅡ공동체와 민주주의, 오세아니아ㅡ생명과 자연, 남아메리카ㅡ사랑과 아름다움으로 짝을 지은 뒤, 거기에 알맞은 지식인을 찾고 그의 책을 읽은 다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들의 푸르름에 눈이 부십니다.

 

워낙 짱짱하고 초롱초롱한 지성인들이라 그들이 해주는 이야기도 귀담아 들을만했지만 오히려 더 솔깃한 건 그들의 몸가짐이었습니다. 아시아에서 한국, 그것도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찾아온 젊은이들을 맞이하는 그들의 모습은 정겹고 따사롭지요. 뭉클함을 자아냅니다. 먼저 하워드 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오래되고 익숙한, 그러나 청정하고 천진한 맑은 눈의 노학자는 이내 손을 잡고 그래, 너희들 왔구나. 다 준비했니, 문이 안 열렸구나. 아무도 오지 않았던? 하며 큰 키에 느린 걸음으로 가장 구석진, ‘Howard Zinn’이라고 A4종이에 크게 써붙인 그의 작은 방으로 함께 들어갔다.

(…)

우리 젊은이들이 꼭 다시 정의하고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짧은 정지……. 친절이라고 생각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 다른 이들의 입장에서 느끼고 생각해보는 것, 관대한 것, 존중하는 친절.

평생을 사회 정의를 위해 저항하고 투쟁하며, 앨리스 워커의 말대로 그는 항상 우리와 함게 있었다, 라고 말했던 그가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질문에 정의도, 평등도, 자유도 아닌 Kindness라니. 가슴이 울컥했다. 나의 좋은 선생님, My kind teacher.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의 어떤 것도 놓치지 않고 싶던 그 시간, 한 인간의 존엄과 겸손과 아름다움 앞에서 눈물이 났다.

 

인디고는 “가르친다는 것, 그것은 바로 저렇게 따뜻하고 천진하고 아름답고 용기 있는 사람이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과 이상을 향한 투쟁을 손을 잡고 함께, 젊은이들과 늘 함께 해나가는 것이라는 걸.

나는 이제 다시는 뵙지 못할 아름다운 선생님. 하워드 진에게서 느끼고 배웠다”고 적네요. “그의 삶은 아름다운 그 자체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니까요.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먹먹해지더군요. 그렇다면 지그문트 바우만은 어떤가.

 

그의 친절함은 거기서 끝나게 아니었다. 부엌 식탁에서 인터뷰를 하자며 잠시 앉아 있으라 하더니, 어디론가 나가셨다. 카메라며 필기구며 인터뷰 준비를 할 수 있게 시간을 내준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다시 식탁으로 돌아온 그의 손에는 방금 오븐에서 꺼낸 뜨거운 춘권과 소시지가 있었다.

 

지그문트 바우먼은 택시기사에게 어떻게 길을 설명하는지 이메일에 덧붙여 설명해줄 정도로 섬세하고 친절하였죠. 양쪽 귀 모두에 보청기를 할 정도로 청력이 좋지 않은 그는 질문지를 미리 받고 답변을 준비하여 침을 꼴깍 삼키게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냅니다. 그 안에 담긴 다정과 번뜩임에 찌릿하네요.

 

인디고가 가치를 다시 묻는 까닭은, “왜 타인의 고통을 느껴야 하나요?” 라고 묻는 어린 학생을 보면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치를 찾아 세상으로 나가서 “왜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없지요?”라고 묻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타인의 고통을 줄이려고 온 마음을 다해 서로서로 챙기고 보듬는 온누리의 사람들을 보면서 희망의 불꽃을 지핍니다. 그 가운데 쿠바의 젊은의사들이 퍽 인상 깊은 말을 합니다.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죠.

 

탁아소(유치원)의 아이들이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쿠바 또한 의사가 될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의사가 되면 어떻게 살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되는데,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 아닌, “타인을 도와주는 직업”이라고 배우지요. 어린 시절부터 많이 배우게 됩니다. 태어나자마자 이렇게 타인을 도와주는 직업이라는 교육을 받기 때문에 저희가 이렇게 활동하는 것은 전혀 특이할 것 없습니다.

 

쿠바의 젊은의사들이라고 해서 태어날 때부터 더 착한 유전자를 갖고 지구동네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보면서 그 사회의 이념과 교육, 문화와 가치관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딴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지요. 돈을 많이 벌고자 의사가 되겠다는 한국아이들과 남을 위해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의사가 되겠다는 쿠바아이들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릅니다.

 

물론 쿠바에도 엄청난 허물들과 가탈들이 쌔고쌨지요. 그러나 그러한 문제 때문에 모든 걸 싸잡아 손사래 쳐선 안 됩니다. 배울 건 배워야 하겠지요. 가난하지만 의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진 지구인 모두에게 의사가 되는 모든 과정을 공짜로 가르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아픈 사람들을 돕도록 이바지하는 쿠바를 보면서 체 게바라의 정신이 느껴집니다. 쿠바에선 초등학교 수업을 받을 때, 선생님에게 이렇게 인사를 한다고 하네요.

 

세레모스 꼬모 엘 체!(Seremos como el Che. 우리가 체 게바라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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