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 생태주의 작가 최성각의 독서잡설
최성각 지음 / 동녘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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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주의 작가 최성각씨의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동녘. 2010)는 무척 맛깔난 말투로 생태를 뼈저리게 생각하게끔 하네요. 그 가운데 아주 인상 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위알을 품은 암탉의 이야기인데, 뜬금없이 에디슨이 생각나네요. 에디슨이 알을 품었을 때 누가 막지 않고, 에디슨도 온 마음을 다해 품었다면 혹시?

 

처음 하루 이틀은 거위 암컷이 알을 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암컷은 그때뿐, 마당에 나와서 놀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싶어 다가가 보았더니 암탉이 알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이 역할분담과 관련해 모종의 합의 과정을 거쳤을까? 그것 역시 인간인 내가 알 도리가 없다.

 

거위알을 왜 암탉인 무꽁지가 품었는지 참 알쏭달쏭하면서도 솔깃하네요. 알을 낳고 마당에 나와 노는 거위와 자기가 낳은 알도 아니면서 온 몸으로 품고 있는 암탉, 퍽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즐거운 모습이 아닌가 싶네요.

 

무꽁지가 거위알을 품은 지 6주째, 지난 화요일, 마침내 거위 다섯 마리가 세상에 태어났다. 동물들 스스로 새 생명을 이 행성에 내놓은 것이다. 그것은 실로 신비롭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곱 개 알들 중, 다섯 개의 알이 생명으로 나아갔고, 나머지 두 개는 생명으로 나아갈 마음이 없었던 모양이다.

 

무꽁지가 알을 품고 부화의 순간을 위해 집중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무꽁지는 말 그대로 식음을 전폐하고 자신이 품고 있는 생명체들이 세상에 나오는 일에만 집중했다. 그동안 정작 알을 세상에 내놓은 거위 암컷과 수컷은 마냥 놀기만 했다. 봄에 피는 꽃들을 즐겼고, 땅바닥에서 새로 돋아나는 풀잎을 즐겼다. 한가롭게 마당 바깥 개울가를 산책했고, 다시 맞이한 봄에 겨워 거억거억, 울어 젖히곤 했다.

 

궁금증이 확 생깁니다. 이제 새끼들이 태어났는데, 암탉을 따를까? 그렇다면 거위들은 가만히 내버려둘까? 도대체 어찌 될까? 아니나 다를까 사달은 쾅 하고 터집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태어난 것은 거위새끼 다섯 마리인데, 정작 알을 품은 것은 다른 종인 암탉 무꽁지였던 것이다. 동물행동학자 로렌츠의 경험과 학설을 떠올릴 것도 없이, 당연히 거위새끼들은 자신의 애미를 무꽁지로 생각했다. 무꽁지 역시 샛노란 거위새끼 다섯 마리를 철석같이 자기 자식으로 믿었다. (…) 그러나 거위들의 생각은 달랐다. (…)

 

무꽁지와 거위들의 생각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기어이 작은 전쟁이 일어나고 말았다. 가만히 있던 거위 수컷이 나섰다. 수컷의 이름은 철근이인데, 철근이가 무꽁지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위는 야생 기러기에서 날지 않기로 결심하고 인간과 같이 살기로 작정한 하얀 새로서 잡식을 한다는 것 외에도 그 성격이 거친 것이 여러 특성들 중의 하나다. 철근이는 긴 목을 땅바닥에 낮추고 마치 어뢰처럼 부리를 앞세우고 무꽁지를 공격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느닷없는 모성본능이 발동했을 뿐인 평범한 암탉은 자기 새끼를 빼앗겨 울화가 치민 세 살배기 수컷 거위의 상대가 안 된다. 옆구리와 몸통을 찍힌 무꽁지는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쳤다. 그러자 놀란 새끼거위들이 일제히 무꽁지를 향해 몸을 피했다. 무꽁지의 몸은 순식간에 앙증맞은 거위새끼들로 둘러싸였다. 그것은 딱히 혈통상의 아빠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품어 만든 무꽁지 엄마를 보호하기 위한 의도여서라기보다 어떤 무서운 하얀 새가 화를 내니까 겁이 나서 그들이 태어나서 처음 느끼고 만났던 몸체를 향해 피신하는, 그런 방어적인 몸짓이었다.

 

하하, 정말 재미있으면서도 껄끄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기 새끼들을 찾겠다고 수컷 거위가 암탉을 몰아치는데, 거위 새끼들이 암탉을 둘러싸니, 거위로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겠지요.

 

무꽁지를 공격했던 철근이는 참으로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공격의 자세에서 다시 고개를 허공에 높이 쳐들면서 어이없어했다. 철근이의 아내인 구리(거위 암컷)는 이 설명할 길 없는 난해한 사태에 봉착하여 물끄러미 상황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낳았으되 품지 않은 대가가 이렇게도 아플 줄은 몰랐다는 슬픔의 표정이 역력했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더 책에 나오진 않지만, 많은 걸 생각하게끔 해주네요. 동물들은 단순한 자동기계가 아니라 정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과 그리 다르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죠. 이 지구란 별에서 동물 없이 사람들만 행복할 수 있을까? 글쓴이는 따끔하게 묻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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