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의 공부론 - 인이불발, 당기되 쏘지 않는다
김영민 지음 / 샘터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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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씨가 쓴 <공부론>[2010. 샘터]엔 솔깃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 술에 대한 풀이가 따끔하게 와 닿네요. 잘못된 정치사회문화에 회초리를 서슴지 않는 지식인들조차 술 마시는 일이 노상이라 술문화에 대한 반성이나 고민은 찾아보기 쉽지 않은 터라 김영민씨의 글은 무척 반갑죠. 김영민씨는 한국인들이 이다지도 술을 찾는 까닭을 이렇게 적습니다.

 

각박한 교환의 셈평 속에서 아등바등하다가 도시의 조각난 어스름에 업혀 술자리를 찾는 것은, 술에 묻어나는 탈자본주의적 사이비 자연성이 풍겨 내는 증여의 환상, 그 넉넉한 이미지의 탓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팍팍한 버거운 일상을 술이 마치 벗어나게끔 해주는 것처럼 노릇한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며 피로하고 지친 삶과 다르게 술잔이 오가면 정이 오가는 거 같고, 술기운에 왠지 기분이 좋아지니 어둑어둑해지면 자연스레 술집으로 향할 수밖에요. 이런 분위기가 깔려있기에 흥청망청 술을 마셔도 너그럽기 그지없습니다. 오히려 그만큼 힘들게 살아왔다는 걸 드러내어 사람들의 위로를 받거나 아니면 술 잘 먹는다고 칭찬을 받기 일쑤죠.

 

그러나 오늘날의 술은 낭만을 자아내며 살가움을 나누는 매체라기보다 삶이란 쳇바퀴를 구르게끔 하는 항우울제 같은 구실을 합니다. 술은 이미 자본주의의 그물에 단단히 붙들려있습니다. 술에 낭만이 잔뜩 묻어나고 특별한 뭔가가 있는 거 같아도 주머니가 빈 사람에게 술 주는 곳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고, 술값 없는 사람과 술자리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른 것과 다르게 술엔 뭔가 유난스러움이 있다고 믿고 싶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지요.

 

(…)내 삶의 양식이 지닌 완강함에 틈입한 술은 어느 순간 자본주의적 체계를 키우고 빛나게(!)한다는 점이다. 술을 자본제적 체계의 양식과 별개로 논의하려는 개인주의적/낭만주의적 태도는 이미 그것 자체가 자본제적 체계가 술과 인간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후적 현상으로 여겨져야 한다. 술의 장(champ)에 안팎으로 스며든 제도와 사회정치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술이 개인의 자율성이나 창의성, 그리고 대면적 대화관계와 호의적으로 습합하는 부분에서만 관심을 집중시키는 태도로부터(학인이라면!) 우선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술은 입으로 들어와 몸에 스며들었다가 오줌으로 빠져나가는 단순한 액체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일상을 쥐락펴락하는 연모는 곧 생각과 사람살이의 테두리를 딱 긋기 마련이죠. 그러므로 술을 막무가내로 좋아라하기보다 술이라는 매체를 그루터기 삼아 피어나는 사람들의 생활모습과 한국사회의 산업구조를 매섭게 따져야 합니다.

 

태탕(駘蕩)한 사치 속에 이미지의 빈곤이나 이미지의 죽음을 키우고 있는 술자리의 그늘진 품을, 모든 낭만과 상징의 영도(零度)를 스스로 마련하며 ‘체계적으로 관리되면서 그 만족을 내내 저지당하는 인간의 슬픈 욕망’에 바치는 자본제적 일상의 제전(祭典)으로서 기능하는 술자리의 지친 맨 얼굴을, 이제는 과감히 살펴야 하는 것이다.

 

술이 주는 아우라에 좋아라하기만 하기보다 자신이 왜 술을 마시는지, 여태 심드렁하게 지나쳤지만 술이란 씨앗을 머금고 피어나는 ‘악의 꽃들’이 어떠한지, 돌아보고 새로운 실천을 꿈꿔야 하겠죠. 술을 그냥 들이킬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짜고 있는 얼개들과 여러 매체들을 매만지면서 ‘더 나은 삶’을 애태웠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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