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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에세이 - 개정4판 ㅣ 동녘선서 1
조성오 지음, 이우일 그림 / 동녘 / 2005년 6월
평점 :
올해 7월엔 영국 셰필드 대학과 워릭 대학 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하여 닭이 없으면 달걀이 있을 수 없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달걀 껍질을 만드는데 ‘오보클레디딘-17’(OC-17)이란 단백질이 꼭 있어야 하는데, 이 물질은 닭의 난소에서만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따라서 닭 없이 달걀이 있을 수 없다고 맺음말을 하네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건 누구나 한번쯤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수수께끼입니다. 오래 전부터 걸핏하면 툭 튀어나와 머릿속을 헝클어뜨리는 실꾸리죠. 이리 풀기도 까다롭고 저리 풀어내기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실톳입니다. 닭이 없는데 어찌 알이 있을 수 있겠냐 싶지만, 그럼 알이 없는데 어떻게 닭이 생겼을까 싶어 알이 먼저일 성싶기도 하지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는 물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들을 가다듬으며 무엇이 맞는지 생각을 하게끔 해주는 좋은 문제죠. <철학에세이>[동녘. 2005]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쪽으로 눈을 돌리게끔 부드럽게 말을 건네며, 알이 먼저라고 차분히 일러줍니다.
닭이나 알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즉 세상이 있으면서부터 존재한 것이 아닙니다. 닭이나 알은 모두 생물이 진화해 온 어떤 단계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생물이라는 커다란 관점에서 보면 답은 간단히 나옵니다. 먼저 알이라고 부르는 것이 생겨 알을 낳는 여러 가지 동물이 나타나고 그 뒤에 닭이 생긴 것입니다. 이 문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알을 생각할 때, ‘닭의 알’이라는 식으로 좁게 한정하여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파리도 알에서 생겨나고 물고기도 알에서 생겨난다는 사실을 넓은 안목으로 파악한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됩니다. 알이 먼저라는 것이 올바른 답입니다.
생각보다 답이 싱거운데, 고개를 아니 끄덕일 수 없게 하네요. 알을 닭이 나오는 둥그스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틀에 갇혀있기에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는 물음에 답할 수가 없었지요. 그렇지만 닭과 달걀만의 앞뒤 차례가 아니라 진화라는 커다란 흐름에서 생겨난 변화로 읽으면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는 물음은 골칫덩이가 아니게 되지요.
어떠한 무엇이라도 그 안에 답이 있기보단 ‘바깥’과 관계하며 답을 이루기 때문에 맥락을 짚지 않으면 엉뚱한 얘기를 늘어놓게 되지요. 따라서 철학이 필요합니다. 철학은 자신의 선자리를 다시 돌아보게 해주는 거울이자 어디로 가야할지 일러주는 나침반이니까요. 나무만 보다가 숲을 못 볼 때, 좀처럼 길을 시원하게 못 찾을 때, 철학이란 연모를 지니면 보다 수월하게 자신의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이 책은 1983년에 초판이 나온 다음에 개정 1판은 17쇄, 3판은 24쇄까지 찍었던 책이지요. 4판도 11쇄까지 찍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얘기만 들어도 두통이 날 거 같은 철학개념들을 살갑게 풀어내었기 때문이죠. 수많은 젊은이들이 인생을 고민하며 이 책을 밤새워 읽었을 걸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