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
서동진 지음 / 돌베개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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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쉴 줄 모릅니다. 방학(放學)이면 말 그대로 좀 쉬어야 하죠. 그동안 공부 부지런히 했으니 잠깐이나마 목을 돌리면서 마음에 빈칸 하나쯤을 남겨두어야 하는데, 요새 젊은이들에겐 이딴 소리를 했다간 세상물정 모른다며 따가운 눈총받기 십상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줄 알아요? 전쟁이에요. 총성 없는 전쟁!

 

그렇습니다. 젊은이들은 방학 때 더 바쁩니다. 계절 학기를 통해 조금 떨어지는 학점들을 끌어올리거나 인턴으로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거나 기업에서 좋아라 하는 자격증을 따거나 새벽에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스펙을 쌓아야 하니까요. 느긋함이란 말은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골동품이 되었습니다. 회계사란 전문자격증을 딴 대학생은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한 친구가 회계사 자격증을 땄어요. 그게 가장 큰 동기가 되었어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제가 앉아서 공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안 했어요. 고시는 나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회계사 시험에 붙으니, 친구들에게 뒤쳐지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었죠. 뭔가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저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나중에 제가 뭘 하고 싶으냐가 아니라 당장 뭘 하는 거였어요. 크게 봐서 제가 뭘 할 거니까 이게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이거 따면 어떤 기회가 생기고 뭔가를 얻게 되겠지, 이렇게 생각을 했죠. 나중에 뭘 하려는 과정으로서 자격증을 준비한 게 아니라 일단 뭘 해야 했고 해야 될 게 필요했어요

 

그렇습니다. 이젠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암만 뛰어나고 스펙이 빵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조마조마한 시대입니다. 뭘 하고 있어야만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입니다. 한 손엔 자기계발서적을 꼭 쥐고 부채삼아 자기 안의 일렁거림을 달래려 하지만, 가슴 한복판의 불길은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모릅니다. 이러한 불안을 장작삼아 사람들은 이곳저곳을 뜨겁게 뛰어다닙니다.

 

이른바 ‘자기계발하는 주체’들이죠. 이제 자기계발하지 않는다면 멍텅구리가 되는 형편입니다. 너나할 거 없이 죄다 자기계발을 뇌까리며 허리띠를 조릅니다. 이젠 깍쟁이보다도 제 앞가림 못하는 사람을 더 거북해하고, 가난이나 차별 때문에 쓰러진 사람에게 “너가 못났기 때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현실이죠. 어느 때보다 물질이 넘치는 시대를 살지만 어떻게 된 게 사람들은 더 헉헉거리고 툭하면 악다구니를 벌입니다.

 

이런 현실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돌베개. 2009]는 아주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매우 촘촘히 밝힙니다.

 

글쓴이는 자본주의가 자기계발하는 주체를 만들어냈다고 여러 자료를 통해 보여줍니다. 자본주의는 주체를 지배하지 않고 주체를 ‘통해’ 지배하니까요. 그러니까 옛날 권력들은 사람들을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려고 했다면 이젠 통치이성으로서 지배합니다. 오늘날엔 단순히 어떤 권력자가 주먹으로써 지배하지 않고 자본주의가 ‘자유로써’ 지배합니다. 언제나 권력은 자유를 통해 작동하니까요.

 

결국 권력은 지배받는 주체에게 직접 작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체성을 형성하고 그 주체가 자신의 삶에 작용하는 방식을 규정함으로써 주체를 ‘멀리에서’at distance 지배한다. 신자유주의는 바로 그런 지배대상으로서의 주체를 빚어낸다.

 

그러므로 개인들은 어떤 의미에선 자유롭습니다. 자신이 땀 흘린 만큼 보상을 받는다고 믿으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련히 자기계발을 하고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이며 살죠. 그런데 야릇하게도 자유를 쫓으면 쫓을수록 삶은 갈팡질팡 더 흔들리고 땀에 흠뻑 젖은 등줄기는 하루도 편치 않습니다. 가만 되돌아봅니다. 나는 정말 자유롭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자기계발하는 자유가 허깨비이자 쇠사슬이라면서 사람들이 매트릭스에 갇혀있는 꼭두각시라고 빈정거리지 않습니다. 이 자유가 거짓이니 벗어던지자고 할 수도 없습니다. 대신, 오늘날의 자유가 어떠한지 짚어보면서 자유가 지닌 아찔함을 알리며 ‘새로운’ 자유의 정치학을 일구자고 얘기하네요. 여태껏 몸소 채찍질을 하면서 달려왔다면 이젠 자신을 후려치던 ‘자유’를 어디에 써야할지 고민하자고 합니다. 참 자유는 참 사유를 거쳐서만 태어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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