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꽃이 아름다운 까닭은 색깔이 곱다랗고 향이 탐스럽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온존재를 머금고 있기 때문이죠. 꽃 한 송이를 피워내고자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있었는지 그 식물만이 알겠지요. 어여쁘게 핀 꽃 한 송이가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고, 꽃들이 모여 온골을 환하게 비춥니다.

 

꽃은 사람 안에서도 태어나죠. 저마다 꽃 한 송이를 피고자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요. 그렇게 돋아난 꽃은 그 사람의 정신을 담아냅니다. 하나하나 향기가 다르고 빛깔이 다르지만 위아래는 없어요. 호박꽃은 호박꽃대로 제비꽃은 제비꽃대로 해사하죠. 모두 같이 섞이면서 어울리는 꽃밭이 바로 사회입니다.

 

잊지 못할 촛불꽃들, 2008년 5월과 6월을 되살린 캔들플라워

 

그러나 사람이란 존재는 꽃을 피워 올리기도 하지만 밤을 불러들일 때도 있죠. 꽃들의 아름다움을 가리고 향을 막는 캄캄함이 왔을 때 깨어있는 사람들은 촛불을 듭니다. 촛불꽃들이 피어나면서 어둠을 물리치죠. 한국엔 잊지 못할 촛불꽃들이 있었죠. 김선우 시인의 <캔들 플라워>는 2008년의 촛불시위를 소설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촛불시위를 두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평가도 딴판이죠. 어떤 사람들은 빨간색을 덧칠하면서 짓뭉개려하고, 어떤 이들은 안타깝지만 한계가 많았다며 씁쓸해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해석들 더듬거리다보면, 촛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리둥절해지곤 하죠.

 

이 책은 무거워진 평가들을 비집고 우선 처음에 어땠는지 생각해보자며 2008년 5월을 생생하게 되살려놓죠. 무엇이 옳다거나 그르다는 주장들을 잠깐 제쳐두고, 촛불이 고개 든 때를 펼쳐놓습니다. 세파에 찌들어 모든 일에 심드렁한 어른들을 대신하여 청계천으로 모여든 중고등학생들의 반짝이는 눈으로 촛불을 다시 읽어내고자 하죠.

 

책을 읽으면 왜 청소년들이 먼저 나설 수밖에 없는지 느껴집니다. 삶의 때가 덜 탄 청소년들은 감수성이 굳어버린 어른들과 달리 말랑말랑한 생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겁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얻는 게 뭔지 따지고 셈한 뒤에 움직이는 어른들과 달리 청소년들은 주판알을 튕기지 않습니다. 참을 수 없어서 움직인 거죠. 그들은 특정한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촛불을 든 게 아니라 어둠이 짙게 드리워지는 한국이 속상하여 스스로 나선 겁니다. 그러한 싱싱하고 가벼움이 광장을 열어내죠.

 

이렇게 알아서 모이고 즐기는 청소년들이 바로 촛불의 고갱이입니다.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어른들이 촛불에 어우러지면서 이야기가 굴러가죠. 통통 튀는 이들의 말과 몸짓을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2008년의 산뜻함을 떠올리게 되네요. 제가끔 헌데를 갖고 있지만, 자신의 아픔에 머무르지 않고 남의 괴로움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촛불을 통해 만나고 따뜻함을 나눕니다. 누군가 아파하면 자신도 아플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말간 눈으로 광장에 들꾀든 것이죠.

 

새로운 생명감각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고민들이 만나 커다란 잔치를 열다

 

부당한 현실엔 유쾌하게 대들면서도 서로서로 존중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을 보면 눈자위가 촉촉해집니다. 세상살이란 남을 못 잡아먹어 안달해야 하는 정글이라고 인상 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등을 가만가만 토닥거리면서 힘을 북돋워주니까요. 촛불을 잊지 말라고 조곤조곤 속삭입니다. 함께 이야기를 하고 먹을 것을 나누고 웃고 떠들었던 기억들을 묻어두지만 말라고 지친 가슴을 어루만져줍니다.

 

주인공들이 저마다 외로움 속에서도 더불어 있고자 애쓰는 모습은 촛불시위 때 사람들이 보여줬던 정신을 떠올리게 하며 마음에 물결을 일으킵니다. 잔잔한 먹먹함에 물기가 흠뻑 배어들어요. 시들었던 눈동자가 빛을 내고 메말랐던 시간에 희망이란 물꼬가 트입니다. 표정 없는 얼굴에 핏기가 돌고 입 속에 침이 고이죠. 책장을 넘기는 손이 촛불을 들었던 손이란 생각에 미치면서 뭉클함을 자아냅니다.

 

이러한 울렁임을 낳는 까닭은 촛불을 ‘새로운 생명감각’으로 보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정책에 반대하거나 미국산 쇠고기를 먹기 싫어서 나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평화롭게 나온 까닭은 여태까지 보이지 않던 ‘생명에 대한 예의’가 솟아났다는 거죠.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는 생명감각을 글로써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고 나면, 아늑하면서 뜨거운 기운이 용솟음칩니다.

 

사람들이 보여줬던 수수하지만 참 뜨뜻했던 연대와 환대를 잊고 살고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촛불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촛불에 대한 차가운 웃음과 비판에도 귀 기울여야 하겠지만, 자그마한 불꽃들이 옆으로 번지면서 한국의 한복판을 가득 메웠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촛불꽃들을 그냥 업신여겨선 안 되죠. 사람들의 심장을 달구고 한국의 밤을 밝혔던 촛불들을 되짚어봤으면 하네요.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고민들이 만나 역사상 가장 커다란 잔치를 열었던 그 때.

 

촛불 시위로 한국이 아예 다른 사회로 발전하거나 나아진 건 아니죠. 당장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변화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100만 명이 촛불을 들었던 기억은 한국에 스며있습니다. 꽃이 지고 난 뒤 열매가 맺히죠. 촛불꽃들이 낳은 열매들은 어떻게 여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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