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 알베르 카뮈 전집 20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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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거스르기란 무척 고달픈 일입니다. 조선시대, 양반에 대들기란 꿈도 못 꿀 일이었으며, 일제시대, 독립운동에 뛰어드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죠. 힘 센 사람에게 손바닥 비비면서 남들처럼 편하게 살아가라는 달달한 꼬임을 뿌리치면서 그 사회가 정해놓은 길 따라 가지 않는 것은 매서운 일들을 받아들이겠다는 꺾심(의지)없인 할 수 없죠.

 

불의에 대든다는 건 괴로움을 한보따리 짊어지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냥 걸어가기에도 피곤한 인생살이, 둘레의 슬픔에 흔들리고 멈춰 서서 손수건을 건네는 일은 쉽지 않으니까요. 자기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다가 죽겠다는 게 아니라 남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피면서 걸어가는 사람은 그 사회와 불화할 수밖에 없죠. 어떤 사회든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레지스탕스가 아닌 다른 쪽에 가 있는 자신을 상상할 수 없었다는 알베르 카뮈

 

배고픈 시절을 잊고 어느새 뚱뚱해진 몸으로 기름진 말들을 내뱉는 사람들 틈에서 끝없이 반항하는 사람이 있었죠. 20세기의 반항아, 알베르 카뮈입니다. 소설 <이방인>과 <페스트>로 이름 높은 카뮈는 사람들이 여러 핑계를 내세워 캄캄한 데를 바라보기보다 반짝이는 빛깔들로 눈을 옮길 때에도 지난 아픔을 잊지 않는 지식인이었죠. 그가 고민하면서 정치사회에 대해 썼던 글 모음이 <시사평론>입니다.

 

사람 사는 시대 가운데 언제 합리성이 탄탄했던 적이 있겠냐만, 카뮈가 살았던 20세기 중반도 오늘만큼 부조리하였죠. 세계전쟁이 터지면서 그동안 믿어왔던 사람에 대한 믿음과 이성에 대한 권위가 부서져 버렸습니다. 여기저기서 마구죽이기가 벌어졌고,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숱하게 일어났죠. 모든 게 무너져 내리자 사람들은 한숨 쉬며 고개를 숙일 때, 카뮈는 인간의 운명엔 비관하더라도 인간에게 낙관하자고 글을 씁니다.

 

카뮈는 사람들의 아픔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 게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몫을 한 사람이죠. 나치의 손아귀에 들어간 프랑스 파리에서 레지스탕스로 독립운동을 합니다. 지하신문 <콩바>에서 그가 써낸 글들은 프랑스 사람들의 가슴을 달구었죠. 나치에 거슬(저항)하기보단 나치에 무릎 꿇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같이 일하던 벗들이 붙잡혀 총살을 당할 때에도 카뮈는 레지스탕스로서 끝까지 남아 파리의 해방을 맞습니다.

 

그는 “레지스탕스가 아닌 다른 쪽에 가 있는 나를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뿐입니다”라며 당연한 일을 한 거라고 겸손해했죠. “사람은 출생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동에서 자격을 얻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격을 고스란히 보존하려면 그 행동에 대해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며 자신의 레지스탕스 경력을 단 한 번도 치켜세우거나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에겐 레지스탕스가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카뮈를 프랑스 시민들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죠.

 

나치의 손에서 벗어났으나 숙청 재판, 역사주의, 테러, 스탈린 수용소 등등을 놓고 어지러워진 프랑스 사회에서 카뮈는 도둑 들었을 때 목 터져라 짖는 바둑이마냥 비판을 멈추지 않았죠. 독립운동으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들이 정부기관에 들어가 한자리씩 하면서 어물쩍 지난날을 덮거나 아니면 자신의 호주머니를 생각할 때에도 카뮈는 피 흘리고 죽어간 사람들을 잊지 않고, 더 나은 프랑스사회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글을 씁니다. 비판지식인으로서 자기 할 일을 한 번도 데면데면하게 여기지 않았던 거죠.

 

이러한 그와 공산주의 세력은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식인이라면 자본주의 착취에 반대를 하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 공산주의를 추어올리는 건 카뮈로선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과정으로서 폭력을 정당화하였던 공산주의와 스탈린의 소련에 대해서 카뮈는 에두르지 않고 아주 날카롭게 꼬집으며 목소리 높이죠.

 

오늘의 삶을 파묻어버린 채 내일의 희망을 얘기하는 건 안 된다는 시대의 반항아

 

자본주의를 몹시 싫어한 나머지 공산주의가 벌이는 일들에 대해서 눈감으려고 한 지식인들에게 카뮈는 불편한 존재였죠. 여기서 사르트르와 틀어지고, 프랑스 지식인사회와 다툽니다. 그럼에도 카뮈는 시체구덩이에서 얻어내는 혁명은 어리석은 짓이며, 사람을 죽이다보면 반드시 썩어문드러진 전체주의가 나타난다며 소련에 대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죠.

 

그래서 ‘혁명’이 아닌 ‘반항’으로 생각을 바꿉니다. 혁명이 너무 많은 피울음을 낳기에 삶의 숨결을 잃지 않으면서 부조리한 현실에 개기는 반항을 고른 거죠. 무장투쟁을 통한 계급지배를 ‘도그마’로 붙들고 있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카뮈는 ‘천진난만’하거나 ‘반동’처럼 여겨질 수 있을 터지만, 사회주의 좌파로서 카뮈는 적당히 그 시대와 손잡지 않고 끈덕지게 싸워나갑니다.

 

카뮈는 오늘의 삶을 파묻어버린 채 내일의 희망을 얘기하는 건 안 된다며, 자유주의자나 공화주의자들을 평생 강제수용소에 가둔 소련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겁니다. 또한 삶에서 행복을 일구기보다 죽은 다음의 행복을 얘기하는 기독교를 믿을 수 없었죠. 이데올로기나 종교처럼 지금의 행복을 앗아가고, 삶의 생생함을 옥죄는 모든 것에 카뮈는 반대합니다.

 

카뮈는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고, 작가란 진실과 자유를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는 책무를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자기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죠. 한마디로 진실과 자유를 위할 때라야 지식인이라는 겁니다. 그저 책 많이 읽고 권위 있는 직함을 가슴에 붙였다고 ‘정당성 있는 작가’는 아니란 거죠. 한국에서 글 쓴다는 사람들이 어디에 봉사를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카뮈가 교통사고로 죽은 지 올해로 50주년이 됩니다. 냉전이 끝났지만, 카뮈가 바라는 대로 터무니없는 죽음을 막고 폭력에 맞서는 국제사회가 오기는커녕 엄청난 뚤커(용기)가 없으면 ‘반항’하는 일마저 엄두가 안 나는 21세기를 맞았습니다. 자기 몸만 배부르게 살아가는 게 최고라고 부추기는 한국의 앞날이 왜 캄캄한지 카뮈의 말을 더듬어봅니다.

 

“진정한 절망은 너무나 질기고 모진 대립에 부딪히거나 대등하지 않은 싸움에서 지쳐버렸을 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싸워야 할 때에 더 이상 싸울 이유를 찾아내지 못하게 되는 데서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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