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20대, 자취의 달인 - 반지하와 옥탑방에서도 잘 살기
김귀현.이유하 지음 / 에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예전부터 그러했지만 젊은이가 독립을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죠. 더구나 날로 팍팍해지는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도전할 영역은 줄어들고, 숨통은 막히고 있습니다. 부모가 빵빵하다면 결혼할 때 자기 집을 구해 독립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자식들은 결혼도 하기 힘든 형편입니다. 다 컸으면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게 자연의 이치건만 부모 품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는 현실, 젊은이들은 ‘캥거루족’이 되어버렸습니다.

 

밖에서 비를 맞느니 부모 우산 밑에서 편안하게 살겠다는 거죠. 젊은이들의 독립이 늦춰지는 건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빚어지는 현상이죠. 미국에서는 트윅스터(twixter), 이탈리아에서는 맘모네(mammone), 프랑스에서는 탕기(Tanguy), 영국에서는 키퍼스(kippers), 독일에서는 네스트호커(Nesthocker), 캐나다에서는 부메랑 키즈(boomerang kids)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88만원 세대’라 불리며, 대학 졸업 뒤에도 일자리를 갖지 못하거나 얻더라도 불안정한 비정규직에 얄팍한 봉투를 받으며 살고 있죠. 어른이 되었는데도 부모의 도움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그런데도 집밖을 나와 독립을 한 20대들이 있지요. <대한민국 20대, 자취의 달인>[2009. 애쎄]은 고생이 뻔히 보이는 길을 간 남녀의 이야기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책이네요.

 

반지하의 제왕과 옥탑방 사투리, 자취의 달인들이 들려주는 자취생 생활백서

 

캥거루족이 사회문제라 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나와서 살고 있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돈 없는 20대는 어디에서 살까요? 땅 밑으로 들어가거나 꼭대기로 올라가야 하죠. 사실, 이런 곳이 사람 살기에 적당하진 않죠. 반지하는 방공호 목적으로 지어진 데고, 대부분의 옥탑방은 불법 옥외건축물입니다. 쭉 펴고 눕기도 힘든 고시원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젊은이들의 보금자리는 이런 곳입니다.

 

그렇다고 암울하기만 한 건 아니죠. 이들에겐 꿈이 있습니다. 비록 오늘을 힘들게 살아가지만 반짝거리는 내일이 있으니까요. 불 속에서 철이 단단해지듯 어려움 속에서 사람은 여물죠. 밑바닥에서 올라가는 일만 남은 셈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부모 돈 받아서 비싼 차 몰고 커다란 오피스텔에서 사는 젊은이가 더 불쌍하죠. 그들에겐 꿈이 없고, 오로지 써버림만 있으니까요.

 

이 책의 두 주인공은 반지하남과 옥탑녀입니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얘기처럼 서울로 올라온 두 사람은 자취를 하기 시작합니다. 반지하방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남자는 지상으로 올라가기를 기다리며 ‘반지하의 제왕’이 되고, 첫 직장생활에서 뜻하지 않은 구조조정을 당한 여자는 ‘더 이상 물러날 곳도, 겁날 것도 없다’는 마음으로 짐을 부친 뒤 서울로 올라와 ‘옥탑방 사투리’가 됩니다.

 

이 둘의 서울 생활은 맛깔나고 재미있네요. ‘억’ 소리 나는 집들은 쳐다보지도 못 하고 구석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주머니 형편부터 야심차게 준비한 카레 요리에 곰팡이가 슬어버린 사정까지, 혼자 살아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가 담겨 있네요. 음식물 쓰레기봉투 값을 줄이려고 먹거리 찌꺼기를 갈아서 변기에 버린다는 생활의 지혜(?)들도 덧붙여져 있어, ‘자취생 입문서’이자 ‘자취생 생활백서’라 할 수 있어요.

 

이들의 생활은 짐작대로 밝지만은 않습니다. ‘반지하의 제왕’은 싸구려 먹거리만 먹다가 요로결석에 걸려 병원에 실려 가고 ‘옥탑방 사투리’는 얼어버린 보일러가 터지면서 보일러 뚜껑에 얻어맞아 입술이 터지고 시커멓게 멍이 듭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캔디처럼 꿋꿋하게 살아가네요. 햇볕이 들어오지 않아 눅눅한 반지하와 시베리아처럼 추운 옥탑방에서 탈출하는 날을 손꼽으며!

 

눈 뜨고 나면 치솟는 집값, 과연 이들은 반지하와 옥탑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쉽게 술술 익히는 글을 읽다보면 킬킬거리거나 씨익 웃게 되지만, 책을 덮고 나니 가슴에 뭔가 콱 얹힌 듯 하네요. 과연 이들은 반지하와 옥탑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갈수록 치솟기만 하는 집값 앞에서 집 장만을 위해 아끼고 모으겠다는 젊은이들의 다짐은 너무나 초라하기만 합니다. 1년 동안 힘들게 일해도 500만원 모으기 힘든 현실에서 눈 뜨고 나면 500만원씩 오르는 집값을 보면 젊은이들은 한숨밖에 내쉴 게 없습니다.

 

너무나 적은 돈을 받으면서 일하는 젊은이들에게 집 장만은 ‘반지의 제왕’에서나 할 수 있는 환상이거나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에서 나오는 허구죠. 그렇다 해도 허리띠를 졸라매는 젊은이들의 순수함이 끝내 그들을 평범한 가정집으로 이끌어내겠죠. 지금은 헉헉대지만 온 몸으로 부딪힌 젊은이들은 자기 몸 누울 곳을 만들어 냅니다. 문제는 그들이 빠져나간 그 자리로 또 다른 젊은이들이 들어간다는 거죠. 사회 판은 그대로입니다.

 

젊은이들이 어떻게 독립을 하고, 무슨 일을 하며 어디에서 살아가는지 사회는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집을 짓는다고 하지만 비싸도 너무 비쌉니다. 젊은이들이나 철거민,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집만 잔뜩 지어놓고, 건축업계는 집이 안 팔린다고 울상이죠. 정부는 부동산 거품이 빠질까봐 규제를 풀어주었고, 집을 가진 사람들만 또 사고 있습니다. 있는 사람은 자꾸만 배에 기름기가 끼고, 없는 사람은 점점 싸늘해집니다.

 

이런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패기를 갖기보다 로또 한 방을 바랄 뿐입니다. 뼈 빠지게 일해도 단칸방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데, 물려받는 집값이 껑충 오르기만 하고 덩달아 목도 뻣뻣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누가 성실하게 일할까요? 돈 많은 어버이 밑에서 다시 태어나길 바라거나 돈 벼락이 안 떨어지나 은행 둘레를 서성거리는 게 낫죠. 20대의 열정과 기운을 앗아놓은 뒤 시치미 떼면서 젊은이들을 나무라는 한국사회가 참말로 이상하네요.

 

젊은이들은 요상한 한국사회에서 씩씩하게 살고 있습니다. 청춘 하나 만을 믿고 희망의 연을 날리는 사람들, 천진난만하여 오히려 안쓰러운 그들이 결국 사회를 바꿉니다. 가만히 앉아있는 게 아니라 창을 낼 때, 반지하에도 볕이 들어오듯 젊은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세상의 밝고 어둠이 나뉘겠죠. 20대들이 지금은 ‘자취의 달인들’이지만 나중엔 ‘행복의 달인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들의 앞날을 장밋빛으로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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