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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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분석은 중요합니다. 뒤르켐의 <자살론>에서 나오듯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판단해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둘레를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행동하고 있으니까요. 사회가 개인의 선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거죠. 그렇게 사회과학의 늦둥이로서 사회학은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구조주의 철학은 20세기에 용솟음칩니다. 바보야, 문제는 구조야!

 

그러나 한계가 드러납니다. 사회학은 나무 대신에 숲을 본다고 자랑스러워했지만 결정론이란 덫에 걸리기 쉬웠죠. 살아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피기보다는 큰 그림을 보려다보니 주체성을 무시하고 사회가 모든 걸 결정한다는 논리에 퐁당 빠졌죠. 사람들은 구조에 판가름나는 꼭두각시로 뭉뚱그려 취급됩니다. 숲을 볼 수 있는지 몰라도 나무들의 차이와 나무들의 결을 못 보게 되는 거죠. 그저 멀리서 숲이 어떻다며 평가 내리기만 합니다.

 

수디르 벤카테시는 안락한 의자를 박차고 나와 현실로 뛰어듭니다. 시카고 뒷골목으로 들어가 10년 동안 마약상, 코카인 중독자, 무단입주자, 성매매여성, 포주, 사회운동가, 경찰, 주민대표와 어울리며 도시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누빕니다. 그 결과가 <괴짜사회학>[2009. 김영사]입니다. 숲만 보는 거에 만족하지 않고 나무까지 아울러서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이 도움 되겠네요.

 

법이 사라진 암흑가의 10년 기록, 도시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누빈 괴짜사회학자

 

배트맨이 필요한 고담시의 배경이 될 정도로 시카고는 범죄가 많은 도시죠. 수많은 갱단이 으르렁거리고 마약이 들끓습니다. 얼굴이 까맣다는 것은 가난하다는 말과 다름없으며 빈민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죽을 때까지 헉헉대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시카고에서 학자들과 위정자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죠. 복지를 어떻게 해야 한다, 공공정책이 어떻다, 도시재개발계획이 필요하다 등등. 그러나……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은 빈민가에 가지 않습니다. 멀리서 몇 푼을 던져주거나 일을 안 하면 굶어도 할 수 없다고 을러대면서 마치 대단한 걸 한 것 마냥 뽐내기만 하죠. 지은이는 다릅니다. 도시재개발, 실업, 가난과 범죄가 벌어지는 현장에 몸을 던집니다. 전통 사회학에서 쓰는 통계학과 사회 연구 방법의 한계를 느끼며 몸으로 조사를 한 거죠. 법이 사라진 암흑가에서 벤카테시는 10년을 지냅니다.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지은이는 하루 종일 교실에 처박혀 공부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다른 일을 해보기로 결심하고 거리로 나섭니다. 접근 금지 지역이었던 흑인 거주 지역으로 들어가 인종과 지역사회 문제를 들추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운 좋게도 갱단 우두머리 제이티와 동무가 되어 그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연구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알려지지 않은 ‘암흑가의 생얼’을 담아냅니다.

 

이곳으로는 경찰과 구급차가 오지 않습니다. 범죄무리가 치안을 맡고, 주민들은 그 안에서 나름대로 구실을 하며 살아가죠. 시카고의 한복판이 무법지대라는 겁니다. 지은이는 값싼 코카인으로 뒷골목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며, 갱단은 어떠한 일을 하고 권력은 어떠한지 낱낱이 밝힙니다. 어려운 말이나 이리저리 꼬인 표를 들이미는 게 아니라 지은이가 겪은 이야기 속에 갱단 정보가 녹아있네요. 빈민가 오줌 냄새까지 맡아질 정도로 꼼꼼하게 글을 썼네요.

 

갱단이 이렇게 설칠 수 있는 까닭은 경찰들과 지역 주민대표들이 짬짜미하면서 엉켜있기 때문이죠. 코카인 파는 갱단과 지역 유지들은 다 들러붙어 있습니다. 경찰은 갱단 뒤를 봐주기도 하고 때론 갱단을 뜯어먹기도 하죠. 주민들이 아무리 불러도 경찰은 오지 않습니다. 이곳 사람들 말을 빌리면, 경찰도 하나의 갱단이니까요. 이곳에 사는 사람은 갱단과 경찰에게 이중수탈을 당하고, 갱단의 관리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지역 대표들은 묘한 존재들이죠. 사회 안전망의 그늘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은 지역 대표를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대표들은 갱단과 이어져 있고, 주민들을 등치면서 득을 봅니다. 그러나 대표 노릇을 해야 영향력이 유지되기에 적당히 주민들 살림을 보태주면서 살아갑니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현실이 얼마나 팍팍한지, 또한 그 어둠 속에서도 사람들이 얼마나 꿋꿋하게 살아가는지 생생하게 담았네요.

 

갱단의 우두머리가 된 괴짜 사회학자를 이야기를 읽으며 한국을 돌아보다

 

책 내용 가운데 한 가지 이야기를 따오면, 지은이는 비록 하루였지만 갱단 우두머리가 됩니다. 제이티에게 별로 하는 일이 없다고 농을 던지자 이 일을 한 번 해보라고 제이티가 입을 연 것이죠. 일생일대의 제안! 처음에는 헛기침이 나왔지만 지은이는 떨리는 마음으로 도전합니다. 하루 종일 제이티를 따라다니면서 의사결정을 대신 하는 거죠. 안건 처리를 하고, 상황을 헤아려서 누구에게 어떤 일을 시키고, 무슨 벌을 줄지 판단해야 했죠.

 

지은이는 되도록 폭력을 쓰지 않는 선에서 문제들을 마무리하려고 하네요. 벤카테시는 조마조마하면서 두목 역할을 해냅니다. 제이티에게 믿음을 얻은 지은이는 총알이 튀는 싸움판에서 제이티 친구를 구하기도 하면서 절친이 되네요. 벤카테시는 훗날 제이티가 최고위급으로 승진을 했을 때, 갱단 최고 회의에도 따라가기까지 하죠. 그는 최고위급들과 만나서 이것저것을 묻고 그들의 생각과 움직임들을 직접 보고 기록하네요.

 

사실, 책과 강의실에서 얻은 지식과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유명한 교수들의 주장이 너무나 쓸모없음에 화가 난 그는 학자들이 편안하게 상아탑에 머물 때, 현장으로 두 발을 내딛었네요. 가난한 사람들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떠들긴 하지만 정작 그들의 삶을 낫게 하지 못하는 사회학, 그건 죽은 학문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그는 소외된 이들과 불평등에 무관심한 세상 사이에 다리를 놓고자 하고 스스로 무지개가 됩니다.

 

살아있는 사회학을 실천한 그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듭니다. 한국 역시 가난한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죠. 비정규직, 저임금, 엉성한 사회복지, 청년실업, 자영업자들의 몰락… 서민들을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는 한국사회에서 사회학자들의 어떠한 처방도 통하지 않고 있네요. 큰 목소리로 사회를 재고 따지는 사람은 많아도 서민들을 이롭게 하는 일에 뛰어드는 지식인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지식인들은 권력 얻는 게 목적이니까요.

 

거리에서, 골목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와 공부를 하는 벤카테시는 얼굴 하얀 ‘지식 상인들’의 꾸지람과 걱정을 이겨내고 엄청난 결과들을 이뤄냅니다. 그 덕분에 시카고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무법지대에 대해 잘 알 수 있었고 미국 정부는 새로운 시각으로 정책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지식인이라면 어떠한 자세를 갖고 세상에 물음표를 던져야 할지 새삼 짚어보게 되네요.

 

스티븐 레빗의 <괴짜경제학>은 상식을 뒤집는 연구결과들에 무릎을 치게 했다면, 수디르 벤카테시의 <괴짜사회학>은 어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어떻게 움직여야할지 고민하게 하죠.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수많은 복지정책이 펼쳐지고 있고 재개발계획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그러한 정책들이 누군가의 잇속만 채워주었죠. 한국에서는 어떨까요? 점점 더해가는 가난과 범죄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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