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남자 & 황제내경 : 하늘, 땅, 인간 그리고 과학 지식인마을 20
강신주 지음 / 김영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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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들어 사람들은 자연을 기계처럼 보았죠. 갈릴레이와 뉴턴으로 상징되는 고전역학이 나타나면서 과학혁명이 시작됩니다. 자연에 무슨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세계관이 뒤집힌 거죠. 마치 하나의 기계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모든 사물과 자연현상을 분석하고 설명하려고 하죠. 이러한 기계론이 사람들의 자연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그러나 핵무기가 나타나고, 자연이 끔찍하게 파괴되면서 사람들은 서양의 과학문명을 반성하게 되죠. 여기에 자연이 기계 같다는 세계관으론 풀어낼 수 없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이 나타나면서 사람들의 물음표는 커져만 갑니다. 20세기 후반부터 신과학운동(New Science Movement)가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자연관에 눈길을 돌립니다.

 

그동안 잊힌 중국과학과 철학의 알짬, 회남자와 황제내경, 동양 과학의 뿌리를 찾아 나서다

 

동양의 과학사상은 자연을 기계로 보는 근대 세계관을 넘어설 수 있는 ‘유기체 자연관’의 원형으로 서양 지식인들에 눈길을 받게 됩니다. 해외를 나가보면, 불교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뜨겁고 동양사상에 대한 연구가 힘차고 시원하게 이루어지고 있죠. 그렇다면,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동양과학과 철학에 대해 얼마나 알까요? <회남자&황제내경>[2007. 김영사]를 읽으며 많이 모르고 살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네요.

 

약 2,000년 동안 동양을 지배했던 중국 전통 과학사상 회남자와 황제내경은 어느새 많이 묻혔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회남자나 황제내경이란 말을 처음 들어볼 겁니다. 한의학을 뺀 다른 동양 전통 과학들은 그저 미신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인 만큼 동양의 과학사상과 철학이 잊힌 거죠. 가끔 심심풀이로 사주나 관상을 보거나 풍수지리에 대해 풍월을 들을 뿐, 사람들은 더 이상 동양 전통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죠.

 

회남자와 황제내경은 기, 음양, 오행이라는 세 가지 범주를 엮어서 세계를 설명하는 동양과학 정신의 알짬이죠. 이러한 두 책을 가지고 왜 동양의 과학사상은 보다 진보한 모습으로 발달하지 못했는지, 동양 전통과학사상은 서양의 과학사상과 같은 과학이라고 봐도 좋을지 풀어서 알려주네요. 동양과학과 서양과학의 차이점을 뚜렷하게 견주고 한계들을 콕 집어내면서도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대화마당을 펼칩니다.

 

이 책엔 우주, 땅, 그리고 시간에 대한 고대 중국인들의 이해 방식을 알 수 있는 회남자와 동양의학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황제내경을 중심으로 그 뒤에 나타난 여러 사상과 서양철학들을 두루 담았죠. 전통과학을 형이상학으로 만든 신유학, 이러한 형이상학을 의심하고 허물려 한 실학의 주장들도 만날 수 있죠. 송나라 시대 주자부터 한국의 정약용과 최한기까지 여러 자연관을 살필 수 있네요. 깔끔하면서 친절한 설명이 돋보입니다.

 

몸과 세상을 해석하는 출발부터가 다른 한의학과 양의학이 21세기 한국에서 부딪히다!

 

이렇게 두 세계관을 짚어보는 까닭은 오늘날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으르렁거리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라 할 수 있는 게 한의사와 양의사 사이 갈등이죠. 이 두 의학체계는 사람과 세상을 해석하는 시작부터가 아예 다르기에 언제든 부딪힐 수밖에 없죠. 몇 해 전, 젊은 양의사가 신문 칼럼에 한의학을 ‘사이비 학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둘 사이는 더 험악해졌습니다.

 

일부 한의사들이 치유가 불가능한 말기 암환자를 대상으로 검증이 안 된 비싼 한약재를 팔아먹고, 전통 치료법이라고 하면서 효험이 밝혀지지 않은 시술을 하고 있다며 비판을 한 거죠. “과연 그들이 의사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지, 또는 남의 불행을 빌미로 근거 없는 관념을 팔아서 부를 축적하는 사기꾼인지 모르겠다고”고 날을 세웁니다. 이에 한의사 단체는 젊은 양의사를 꾸짖는 모임을 열었고, 이에 질세라 양의사 단체에서도 한의학의 문제점을 꼬집는 기자회견을 하며 맞불을 놓았죠.

 

한의사와 양의사 사이엔 먹구름이 늘 껴 있었죠. 같은 의술이지만 세상 보는 눈이 딴판이니까요. 한의학에서는 몸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고 서로 다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죠. 우리 몸에는 경락이라는 맥을 통해서 기가 끝없이 흐르고, 모든 질병은 몸 안의 기가 원활히 돌지 않아서 생기는 거라고 봅니다. 따라서 몸속의 질병은 분명히 겉으로 드러나기에 직접 몸속을 관찰 할 필요가 없으며, 문제가 나타난 부위만 고치려는 게 아니라 환자 상태와 여러 가지를 사정을 헤아려서 맞춤치료를 하죠.

 

이에 반해 서양의학에서는 몸을 기계처럼 다루죠. 마치 자동차는 여러 가지 부품들로 이뤄져 있고, 저마다가 자기 기능을 다해야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몸도 여러 장기들로 이뤄져 있고, 그것들 각각이 기능을 떨치며 나타내야 건강할 수 있다고 보죠. 따라서 어디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만 해결하면 사람의 몸은 정상이 될 거라며, 문제가 일어난 속을 들여다보고 치료를 하죠.

 

서로 으르렁대는 한의사와 양의사, 진짜 건강은 무엇이고 세상은 어때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의학에서는 몸의 한 부분의 변화가 전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만 사람마다 몸이 다르다는 생각을 깔고 있습니다. 따라서 의학이라 하면, 보다 여러 층위에서 병과 사람을 바라봐야 하는데, 서양의학은 병이 걸린 다음에 아픈 곳만을 없애버리는 데만 힘을 쏟는 만큼 한계가 있다고 나무라죠. 그러면서 병이 아직 걸리지 않았을 때, 병을 치료하는 게 한의학이라며 서양의학이 한 수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네요.

 

양의학에선 ‘그때 그때 다르다’는 한의학은 스스로 과학을 포기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객관성을 갖춘 검증 가능한 일반 의학이론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모호한 신념체계와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를 다루는 건 위험한 일이며, 최첨단을 달리는 시대에 맞지 않는 ‘사이비 과학’이라고 낮잡죠. 모든 게 그렇듯 여기에도 밥그릇이 걸려있기에 이 둘은 평행선을 그리며 다투고 있네요.

 

한쪽 손을 들어주기보다 한의사와 양의사들이 함께 힘과 뜻을 모으길 바라게 되네요. 사람은 누구나 건강하고 싶고, 한의학이나 양의학이나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서로 모자란 점도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남을 더 알려고 애를 쓰면서, 진짜 건강은 무엇이고, 세상은 어때야 하는지 의사들이 고민했으면 하네요. 마찬가지로 자기 몸의 주인으로서 사람들도 참 건강이 뭔지 자신의 생각과 몸을 슬기롭게 탐구했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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