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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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여자를 사랑할 수 있나요? 이 물음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일 남자는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럴 수 있다고 말은 해도 못생긴 여자를 실제로 사랑하고 있을 남자는 더 적을 겁니다. 욕망대로 흘러가는 세상을 나무라긴 쉬워도 자기 삶에 배어있는 욕망을 비판하고 넘어서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니까요. 외모지상주의에 딴지를 걸어도 외모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미모’는 성역이 되어 여자들을 사로잡고 있네요.

 

세상은 ‘구분 짓기’가 이뤄지는 마당이죠. 끝없이 남을 깔아뭉개면서 그 위에 올라타려고 합니다. 그렇게 매겨진 가격에 따라 사람들은 연애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 때, 남자와 여자의 가격 채점표는 좀 다르죠. 이른바 ‘사회에서 만들어진 미 기준’에 모자라는 남자들은 권력이나 재산으로 얼마든지 자기 가격을 올릴 수 있죠. 그래서 뚱뚱보 대머리 아저씨와 젊고 예쁜 여성의 만남은 지겨울 정도로 많이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여성은 다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여성이라도, 너무 못생겼다면? … 어떤 대접을 받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죠.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요. 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여자들도 돈을 갖게 되면서 입김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뚱뚱보 파마머리 아줌마와 젊고 멋진 남성의 만남은 보기 힘듭니다. 여전히 얼굴과 몸매는 여자에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렇기에 오늘도 여자들은 거울을 보며 다이어트를 합니다.

 

인류역사상 최초로, 잘생긴 스무 살 남자가 너무나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이야기

 

박민규의 신작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우리 안에 외모지상주의가 어찌나 깊게 새겨져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장편 소설입니다. 이 책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이야기를 다뤄 아주 독특합니다. 아마, 인류 역사상 최초일 듯싶어요. 지금까지 사람들은 예쁜 여자만 너무나 좋아했으니까요. 잘생긴 스무 살 남자가 ‘너무나 못생긴’ 동갑내기 여자를 사랑하는 이야기, 판타지 소설보다 더 환상 같은 장면이 펼쳐집니다.

 

주인공 ‘나’는 스무살이 되자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 같이 일하는 ‘그녀’를 만납니다. 처음 봤을 때,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얼핏 보면 마치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한 눈에 뿅 간 거 같죠. 하지만 정 반대입니다. 이제까지 꽤 많은 못생긴 여자들을 봐왔지만 나는 그녀처럼 못생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못생긴 여자입니다. 아르바이트를 소개한 친구가 이렇게 평할 정도죠. 나도 첨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니까. 걘...정말 너무하지.

 

모든 남자를 얼어붙게 만드는 힘을 가진 추녀! 그녀는 혼자 밥을 먹고, 아무도 그녀와 얘기를 하지 않죠. 학창시절에 조금이라도 뚱뚱하거나 못생긴 여자에게 가했던 폭력들이 사회에서 아무런 변화 없이 또 벌어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외톨이 그녀가 계속 신경 쓰입니다. 잘생긴 얼굴 덕분에 여직원들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내가 그녀에게 관심을 나타내면서 소설책이 뜨거워지네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숱한 상처를 받았던 그녀와 나 사이에 ‘요한’이라는 직장 동료가 다리를 놓아줍니다. 셋이 어울리면서 조심스럽게 사랑을 키워나가는 과정은 그 어떤 남녀의 만남보다 훨씬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왜냐하면 쌔고 쌘 잘생기고 예쁜 짝이 아니라 너무나 못생긴 여주인공과 짝을 맺어야 하니까요. 이렇게 기묘한 만남은 본적도 들은 적도 없기에 읽는 이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사랑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밝혀준다는 ‘전구론’, 영혼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누구나 아름다워!

 

잘생긴 남자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한다는 게 어쩌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나 ‘미녀와 야수’는 있어도 미남과 추녀는 동화에서도 없는 일이기에 지은이는 개연성을 갖추려고 장치를 씁니다. 바로, 부모 세대죠. 나는 뒤늦게 인기를 얻자 평생을 뒷바라지를 하며 헌신하던 ‘못생긴 어머니’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배우 아버지를 두었고, 요한은 재벌에 ‘첩’이었던 아름다운 어머니에게서 태어납니다. 이들은 부모세대 사랑방식을 거부할 이유가 있는 거죠.

 

그렇다 해도 상대가 멋지고 예뻐야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 보통 사람들은 주인공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죠. 동정이나 연민 아니냐며, 그것이 상대를 더 비참하게 하는 일이라고 따질 수 있습니다. 사랑을 뭔가 특별한 감정이라거나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나로호 발사대’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못생긴 여자와 만남은 말도 안 되는 거죠. 사랑을 좁게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지은이는 ‘전구론’을 들고 나옵니다.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순간 빛이 들어오면 유리의 곡선도 전구의 모습도 빛에 묻혀버리지만, 우리는 빛이 들어오지 않은 것만을 보며 상대를 무시하는 거죠. 사랑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밝혀주는 존재라는 걸 모르고 필라멘트가 꺼져있는 전구처럼 막막하게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아무리 못생긴 전구라도 영혼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아름답고 눈부시게 변하는데…

 

연예인들이 아름다운 것은 외모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주기 때문이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보내주고 있기에 터무니없이 밝은 빛을 발하는 겁니다. 그래서 ‘스타’죠. 그 어떤 미인도 사랑받지 못한다면 불 꺼진 전구와 같죠. 결국, 빛은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겁니다. 자신의 필라멘트에 불이 들어오려면 저 멀리 있는 엉뚱한 사람에게 사랑을 몽땅 주기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랑을 줘야죠. 그때 자신에게 환한 빛이 들어오며 세상이 밝아집니다.

 

못생긴 여자를 사랑할 수 있나요? 가난한 남자를 사랑할 수 있나요? 사랑에도 상상력이 필요해!

 

그동안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둘레를 아끼기보다 저 너머에 허깨비들을 바라고 있죠. 가난한 이들이 자본가를 사랑했고, 서민이 독재자를 존경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캄캄한 거죠. 저 멀리 어딘가는 환한데 자기는 늘 어둠에 묻혀있습니다.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저기를 부러워하는 세상살이가 그렇게 만들어지죠. 사회기준에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을 못 견뎌하는 대중들이 달려들어 사정없이 물어뜯는 야만사회에 내동댕이쳐져 살아갑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람들은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예쁘고 똑똑하고 돈 많은 주인공들만 보며 살았죠. 따라서 그렇지 않은 대다수 인생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곧 깨닫습니다. 그럴 듯한 인생이 되려고 욕망할수록 결코 그런 인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수많은 스타들을 보면서 자기도 ‘백마 탄 왕자님’이나 ‘인형 같은 숙녀’를 꿈꾸지만, TV가 꺼지는 순간, 불 꺼진 전구 하나가 우두커니 있을 뿐이죠.

 

와와~하는 사람들에게 지은이는 워워~손사래를 칩니다. 부를 거머쥔 극소수의 사람을 가난한 대다수 사람들이 스스로 추어올리듯 미모를 지닌 극소수의 사람들을 평범하게 생긴 사람들이 우러르는 우리네 모습에 대해 고민해보자고 하네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쥘 수 없는 신기루를 쫓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고 합니다. 아름다워<져야만> 하는 여자들과 힘을 <가져야만> 하는 남자들, 인류는 가야할 길이 아직 멀었다며 자기부터 반성을 하네요.

 

다시 처음 물음입니다. 못생긴 여자를 사랑할 수 있나요? 이 물음은 가난한 남자를 사랑할 수 있나요? 이것과 이란성 쌍둥이죠. 이 물음들을 넘어서기 위해선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그 아무리 예쁘고 돈 많은 이를 만나도 얼마 안 가 시들해진다는 걸 우린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곧 시시해질 사랑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더 무르익으면서도 언제나 싱싱할 사랑을 해야겠죠. 사랑의 빛으로 삶을 밝혀나가는 세상을 상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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