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은 동물입니다. 제 아무리 잘난 척을 해봐야 깊은 밤이면 외로움에 흔들리고, 자기 욕망에 휘둘리기 일쑤입니다. 뼈 속 깊이 웅크리고 있는 짐승은 틈 날 때마다 뛰쳐나와 삶을 할퀴죠. 사람들은 상처와 흉으로 너저분해진 생활을 붙들면서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살아갑니다. 해일처럼 밀어닥치는 욕망 앞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후회하기를 되풀이하죠. 그렇게 인생이란 수레바퀴는 굴러갑니다.

 

놀라운 21세기라지만 사람들 의식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유롭게 살기보다는 배부르게 살기를 바라죠. 더 크게 해쳐먹는 도둑을 부러워할지언정 그것에 맞설 용기는 뱃살에 눌린 지 오래입니다. 밥통과 창자가 지배하는 세계니까요. <도가니>[창비. 20009]는 그렇게 탐욕스러워진 세상을 잘 담아내죠. 사람이란 탈을 쓴 짐승들과 그래도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이 숨가쁘게 그려져 있습니다.

 

안개가 잔뜩 낀 세상, 평범하게 살고 싶으나 가슴 깊은 데를 긁어대는 너무 뜨거운 사건

 

처음부터 안개가 짙게 껴 있습니다. 한치 앞도 내다보이지 않는 날씨는 숨을 턱 막히게 합니다. 흐릿한 것이 날씨만은 아니니까요. 툭하면 희뿌옇게 도시를 휘감는 안개는 사람들 정신과 사회 상태가 얼마나 탁한지 전해주는 장치죠. 심심할라치면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는 사회에서 살기란 안개 속에서 길 찾는 일과 비슷하게 갑갑하죠. 한마디로 안개에 뒤덮인 남쪽 도시 무진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곳을 상징합니다.

 

세상살이에 찌들기 시작한 강인호가 무진으로 옵니다. 아내가 힘써서 청각장애인학교 ‘자애학원’에 기간제 교사 자리를 얻게 된 것이죠. 너무 옳은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강인호는 그저 그렇게 닳아버린 소시민입니다. 사회 부조리를 들추기보다는 그저 잠깐 눈 감는 게 여러 모로 편하다고 생각하는 보통 서민이죠.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살고자 자애학교에 갔으나 ‘평범하지 않은’ 일이 쏟아집니다.

 

첫 출근 날, 학교는 너무나 조용합니다. 평화롭기 때문이 아니라 폭력으로 억눌려져 있기에 그렇죠. 아이가 기차에 치어죽어도, 낭떠러지에서 떨어져도, 학교는 태평하게 굴러갑니다. 퇴근할 때 우연히 듣게 된 여자화장실의 비명소리와 잠겨있는 화장실, 강인호는 평범한 소시민답게 문을 열고 들어가기보다 ‘내가 잘못 들었나 봐’, ‘다른 사람이 해결하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그렇게 대충 살려고 하는데, 자애학원은 해도 해도 너무 합니다. 아직 순수함이 남아있는 강인호는 그래도 선생다운 선생노릇을 하려고 하자, 아이들은 너무 뜨거워 가슴 깊은 데을 긁어댈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을 털어놓습니다. 교장, 행정실장, 교사들 사이에 짬짜미가 있고, 학생들을 상대로 오랫동안 성폭력과 폭행이 이뤄져왔다는 거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에 강인호는 충격을 받으면서 분노를 하게 됩니다.

 

강인호는 대학 선배이자 무진인권운동센터 간사 서유진과 함께 지난날을 파헤치죠.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자애학원은 교육청, 시청, 경찰서, 교회 등 무진의 기득권세력들과 이미 손을 잡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 이대로가 좋아’를 노래하는 이들이 ‘고작 장애인들 때문에’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동무’들을 처벌할리 없죠. 사건을 어물어물 덮기 위해 비열한 방법들이 강인호와 서유진에게 덮쳐옵니다.

 

어렵게 법정까지 끌고 갔으나 잘 알다시피 사법부는 사회강자에게 면죄부를 주며 합법성을 주는 곳으로 변한지 꽤 되었지요. 진실보다는 거짓에, 정의보다는 이익 앞에 재판은 흔들리면서 중요한 것들을 다루지 않고 어물쩍 넘어갑니다. 돈과 힘 앞에 사람들은 하나둘씩 지쳐나가고, 상처를 입고 무너집니다. 처음에 잠깐 관심을 보였던 언론과 대중들도 수없이 일어나는 ‘이상한 사건들’ 앞에 자애학원을 잊어버리죠.

 

안개를 없애기보다 안개 속을 더듬으며 조용하게 사는 사람들, 그렇게 만들어진 안개지옥

 

이 소설을 읽다보면, 울컥, 무언가 치밀 때가 많습니다. 목이 메어 다음 장을 넘기지 못하고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게 되기도 하죠. 믿기지 않는 일에 대한 놀라움인지, 아이들이 겪었을 두려움과 서글픔 때문인지, 사람으로서 봐줄 수 없는 ‘종’들에 대한 분노인지, 온 몸에 휘몰아치는 감정이 잘 다스려지지 않죠. 세상에, 이럴 수가, 탄식하며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죠.

 

이 글은 광주의 한 장애인학교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작가가 그저 머릿속으로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몇 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거죠. 지옥이 현실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던 겁니다. 지은이는 소설에서 두 가지 지옥을 보여줍니다. 자애학원이라는 작은 지옥과 어른들의 사회라는 큰 지옥을. 그리고 묻습니다. 저 ‘작은 사건’에 지금 몸서리를 치듯 ‘커다란 세상’에 대들 수 있습니까?

 

진실은 차갑고 끔찍한 법, 사람들은 작은 지옥 풍경에도 아찔해 합니다. 여기에 고개를 돌려 버리기 쉽지만 그나마 응시한다 해도 더 큰 지옥이 입을 벌리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지요. 이미 세상은 부당하고, 누군가의 희생을 먹으면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돌을 던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기 얼굴에 침 뱉기가 되니까요. 이 소설이 놀라운 이유는 평범한 소시민들이 큰 지옥의 구성원이며, 대중의 침묵이 큰 지옥을 만들어내는 걸 짚기 때문이죠.

 

둘레를 돌아보면, 작은 지옥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때마다 눈물을 흠뻑 흘리거나 부들부들 떨면서 욕을 하다가 사람들은 다시 큰 지옥에서 ‘잘’ 살아갑니다. 작은 지옥에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많아도 큰 지옥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사람은 적습니다. 밥벌이에, 집 장만에, 아이 학원비 걱정을 하며 입 다물고 사는 거죠. 이렇게 안개를 만들어집니다. 안개지옥, 이것은 무진이 아니라 ‘눈 먼 자들의 세상’으로 변해가는 우리네 삶터를 가리킵니다.

 

이런 세상에서 진실을 찾기는 어렵지요. 더더군다나 진실을 보고자 하는 마음조차 갖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안개를 없애기보다는 안개 속을 더듬으며 조용하게 사는 편을 택합니다. 그저 눈에 띄지 않게, 남들과 다르지 않게, 총인구 셈할 때 머릿수 하나를 늘려주는 역할에 만족하며 살죠. 기득권을 욕하면서도 언제든지 기득권에 껴주면 헤벌레 웃으며 달려갈 사람들, 그렇게 안개지옥은 탄탄하게 이뤄집니다.

 

그럼에도 희망을 놓아선 안 되겠죠. 강인호가 처음에 학생들 앞에서 수화하면서 촛불을 켜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기억합니다. 어떻게 해야 상대와 소통할 수 있는지 아주 빼어나게 그린 명장면이죠. 수화하는 교사가 없는 장애인학교는 대화가 끊겨버린 한국사회의 판박이입니다. 상대와 소통하고자 한다면, 상대의 마음을 열고자 한다면, 자신의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책을 덮자 다시 안개가 몰려오네요. 미친 도가니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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