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와 나눈 3일간 심층 대화
오연호 지음 / 오마이뉴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역대 대통령들을 떠올리며 입맛이 쓰디씁니다. 어쩜 하나같이 사람들을 옥죄면서 끽소리 못하게 만들었을까요? 그러나 대통령만을 욕한다고 풀리는 일도 아니죠. 대통령은 국민 수준을 넘지 못합니다. 냉정하게 돌아보면 민주주의를 위해 온 몸으로 저항한 사람도 있지만, 그저 자기 몸 편하면 장땡이라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대통령이 나옵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정치권력을 누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려고 정치인이 된 그 사람은 보기 드문 지도자였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도 한계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늘 서민 대중의 삶을 걱정하고, 그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기를 자신의 유일한 소망으로 삼았던 정치인이었죠.

 

언제나 그렇듯 지난날을 잊어버리기에 같은 잘못을 되풀이, 노 전 대통령을 공부해야 하는 시기

 

그런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500만 명이 통곡을 하였지만 세상은 그대로입니다. 그가 죽었다고 우러를 필요는 없지만 족벌언론에서 말하듯 그의 업적들을 싸잡아 깔아뭉갤 이유도 없지요. 그가 한 일과 바라봤던 지점들을 제대로 짚어내고 공부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지난날을 잊어버리기에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니까요. 이제 쳇바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국내 첫 언론 인터뷰를 <오마이뉴스>와 하더니 퇴임 6개월을 앞두고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포와 3일 동안 심층 인터뷰를 하였지요. 그렇게 만들어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2009. 오마이뉴스]는 노 전 대통령의 생각들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귀한 자료네요.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 역사의 기록에는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대통령으로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털어놓고, 한나라당의 대연정 제안에 대해, 뼈아픈 실수라고 반성하면서도 지역정치를 없애기 위한 대타협의 정치시도였다고 돌아봅니다. 한미FTA에서는 현실 시장주의자로서 한국이 세계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지도자로서 뛰어들었다고 얘기하네요. 그의 정책을 지지하든 안하든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네요.

 

그의 모든 생각을 받아줄 순 없겠지만 그가 뜨거운 가슴으로 쉼 없이 공부한 정치인이었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참모들에게 대충 일 시키고, 권력을 누리는 정치인이 아니라 늘 서민들의 살림을 걱정하고 역사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지켜보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누구보다 아파하였던 ‘사람’이더군요.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적기 때문이겠죠.

 

대통령이나 정치인이라면 그 정도 책임감 가져야 당연히 가져야 하건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절규를 뒤로 하고 미디어법이 통과되었습니다. 대다수 시민들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회법도 어기면서까지 날치기 통과되었지요. 아수라장이 된 국회를 보면서 탄핵 때와 어쩜 저렇게 비슷한지 놀라게 됩니다. 세상은 과연 좋아지는 건가요?

 

탄핵을 당한 뒤, 두 달 동안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 그가 지금 국회를 봤다면 무슨 말을 할까요? 더 이상 그를 만날 순 없지만 책으로나마 대화를 시도해보려 합니다. 책에서 나온 그의 말들을 그대로 따오고 배치하고 결합하여 가상 인터뷰를 해보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하는 언론과 미디어법입니다.

 

-지난 5년 동안 여러 가지로 힘드셨습니다. 돌아보면 어떤가요?

“지난 5년간의 투쟁에서 가장 큰 장애는 야당이 아니고 조중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과의 싸움이 제일 큰 것이었습니다. 근데 그것이 좀 뒤에 할 일이면 미루겠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하필이면 역사의 변화 과정에서 제 자리가 거기에 부닥쳐버렸다는 것입니다.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에서 언론에 있어서 변화가 필요하고, 이것은 역사적 필연인데, 거기에 제가 인연을 맺은 거죠.”

 

“시민들이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접해, 언론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을 좌우할 수밖에 없어”

 

-왜 언론이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민생은 정책에서 나오고 정책은 정치에서 나옵니다. 정치는 여론을 따르고 여론은 언론이 주도합니다. 언론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을 좌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 놓아도 운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흉기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민주주의 선거제도나 정당 제도를 만들어놓아도 그것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요. 이 차를 운전하는 운전자들인 시민들이 미디어를 통해 세상에 대한 정보 접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미디어가 중요합니다.”

 

-조중동에 맞서면서 본인 뜻이 왜곡되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싸웠던 이유가 있나요?

“저의 뜻이 얼마만큼 국민들에게 전달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해도 (언론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언론이 비틀어 보도하는) 이 미디어 환경 속에서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호의적인 관계가 만들어지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관계가 아니죠. 내가 작용을 해서 개선할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조선일보는 스스로 거대한 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 맞서는 건 엄청나게 불리한 싸움일 수 있지요. 그러나 조선일보처럼 부도덕한 언론과 아무도 싸우지 않는다면 누구도 정치를 바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누군가가 상처 입을 각오를 하고 이런 악의적인 언론의 횡포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저는 정치적으로 상처를 입는 한이 있더라도, 이로 인해 다른 정치인은 조금이라도 피해를 덜 입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언론이 거대한 권력기구로 변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역사를 보면, 언론은 정치권력을 견제하면서 자라났습니다.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언론은 분명히 시민 권력으로서 정치권력을 억누르는데 업적을 남겼지만 지금 와서는 시장권력과 결탁해버렸어요. 언론이 좀 더 커가지고, 스스로 시장권력이 돼버렸거든요. 옛날에는 광고 갖고 먹고 살았는데, 이제는 언론 자체가 미디어 산업이 되어버렸지 않습니까?

 

지금 루퍼트 머독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크기,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행세하고 있는 힘, 한국의 조중동이 부리고 있는 횡포들을 보세요. 시장의 권력으로부터 광고를 받아 대변하는 걸 넘어 이제 스스로 시장권력이 되어버렸습니다. 민주화 이후 모든 조직과 집단이 관행이란 이름으로 누리던 부당한 이익을 다 포기하고 있는데, 왜 언론은 그렇게 못합니까? 언론의 이기주의가 너무 지나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은 언론에게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조폭 같은 언론의 횡포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해 투쟁을 해야, 언론의 위치에 대해 재평가 해야”

 

-미디어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전에 언론과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고 말하신 게 떠오릅니다.

“그 말은 언론과 전쟁을 하라는 뜻이 아니라 굽실거리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는 말이에요. 언론을 억압하거나 박살내라는 게 아니라 언론의 횡포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야기한 것이죠. 왜냐하면 언론이 사회의 보편적인 공론을 형성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에게는 몰매를 내리치고 있어요. ‘조폭 언론’이라는 말에 공감해요.

 

밉게 보인 사람들은 사석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중계하면서 망신을 주고 있어요. 자기들에게 굽실거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언론의 맛을 보여주는 거죠. 따라서 모든 언론이 정당한 언론이라고 볼 수 없고, 언론의 위치에 대해 재평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언론의 정통성은 결국 소비자의 선택을 통해서 만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권력은 위임하되 지배는 거부하는 노력이 민주주의 역사입니다. 정치권력은 만능이 아닙니다. 최고 정점도 아닙니다. 진짜 권력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시민 권력입니다. 국가와 역사의 방향을 끌고 가는 것은, 결국 시민들의 투표로 뽑힌 지도자들이 결정합니다. 결국 시민들이 투표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시민들의 각성, 이것이 궁극적으로 답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각성해서 시민이 지도자가 될 정도로 돼야 합니다.”

 

언론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민들의 확장된 눈과 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경험의 테두리를 넘어서기 힘듭니다. 자신이 듣고 배운 것만을 믿고 살아가는 존재들이죠. 이 때, 언론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것만 끝없이 보여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일제에 부역하고, 박정희를 떠받들고, 전두환을 국민의 영도자라고 찬양하던 족벌언론들이 있습니다. 정치권력에 빌붙어 세를 키워오던 그 언론들은 반성은 하지도 않고, 검증도 받지 않은 엄청난 권력을 휘둘러대고 있습니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자신들의 힘이 줄어들자 그동안 긁어모은 돈으로 방송까지 하겠다고 하고 그걸 허용하겠다고 국회의원들이 무더기로 나섭니다.

 

다양한 주체들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시장 환경이 이뤄져야 하는 게 자본주의 기초입니다. 조중동이 신문과 방송을 손에 쥐면 언론시장이 어떻게 될까요? 시장경제를 그렇게 떠들던 그들이 시장의 기본질서마저 뿌리 째 흔들려고 합니다. 자기 이득을 위해서라면 일제든 독재정권이든 신자유주의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이용하였던 경험에서 벗어나기 힘들었겠죠.

 

미디어법은 원천 무효, 도대체 언제까지 뒤늦게 땅을 치며 후회만할 것인가?

 

두 번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미디어법은 원천 무효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문제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쉽게 흥분하고 너무 빨리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한나라당이 지금까지 어떠한 역사를 갖고 왔고, 어떠한 일들을 해왔는지 알면서도 그랬는지 아니면 다 까먹었는지 그들에게 표를 몰아줬고, 미디어법이 통과되자 땅을 칩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뒤늦게 후회만할 건지 안타깝습니다.

 

대다수 시민들이 원치 않는데도 의회민주주의랍시고 이상한 법들이 통과되는 현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다음 선거에 또 뽑히는 기막힌 상황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이런 부조리를 꼬집고 뭐라 하는 언론들이 있었지요. 제발 시민들이 정신 차리고 시민의식을 갖으라고 얘기하던 언론들은 이제 밀려나게 생겼습니다. 대형할인마트가 들어서는데, 구멍가게에게 버티라는 건 말이 안 되죠.

 

미디어법이 발효되어 조중동이 방송에 진출하면, 어느 때보다 똑같은 얘기와 영상들이 반복되면서 사람들 눈과 귀를 파고들겠죠. 빨갱이가 뿔 달린 도깨비라고 믿던 시절이 다시 오는 거죠. 빨간 선글라스를 끼고 평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다른 안경을 쓰고 싶어도 다른 게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될 겁니다.

 

그렇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자기가 할 수 있는 거부터 하면 됩니다. 둘레에 있는 사람들과 언론 문제를 얘기하고 지혜롭게 신문을 골라야겠죠. 이와 함께 자기 삶부터 바꿔가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구태와 부조리들을 털어내야죠. 자신이 변하지 않는데, 세상이 절대 달라지지 않습니다. 시민들이 깨어나야 합니다. 권력에 지배당하는 게 아니라 감시해야 합니다. 바르게 투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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