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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 옆 철학카페
김용규 지음 / 이론과실천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영화는 100년 남짓한 시간동안 가장 강력하고도 폭넓은 영향력을 끼치는 문화매체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문학, 미술, 음악이라는 예술 요소에 첨단기술이 더해진 종합예술로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죠. ‘영상으로 펼쳐지는 현실’에 시대 정서가 움직이고 집단무의식이 건드려지면서 사람들은 사회와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자기 이해를 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 할 수 있죠.
따라서 21세기에는 영화가 20세기 문학이 맡았던 역할들을 할 거라 짐작됩니다. 인생에서 누구나 만나는 ‘가슴 저린 주제’들을 작품에서 다룸으로써 사람이 자신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영화관 옆 철학카페>[2002. 이론과 실천]은 영화를 2시간 때우는 단순히 수단을 넘어서 철학을 담아내는 원전으로 봅니다. 영화와 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아주 좋을 책이네요. 훌륭한 영화에 그보다 더 멋들어진 철학 해석들이 버무려져 있으니까요.
뛰어난 영화해설서이자 재미난 철학입문서, 영화관 옆 철학카페
이 책은 희망, 행복, 시간, 사랑, 죽음, 성이라는 주제로 18편의 영화들을 다룹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아우구스티누스, 칸트, 사르트르, 하이데거, 마르셀, 프로이드, 라이히, 프롬, 엘리아데, 비트켄슈타인, 라캉, 마르쿠제, 마투라나… 수많은 학자들의 사상들을 끌어들이면서 영화를 풀어내죠. 책에 나오는 해설들이 유일한 해석이 아니라 수많은 이해 가능성 중 하나로 생각한다면 뛰어난 영화해설서이자 재미난 철학입문서가 될 수 있죠.
소개되는 영화들이 평범한 관객들에게는 조금 낯설 수 있겠네요. 데이트용 오락거리로 영화가 소비되는 현실에서 이른바 상업영화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온 작품들은 사람들의 복잡한 머리를 2시간 동안 가리는 임무만을 띤 채 점점 시각만 자극하고 있죠. 더구나 조금만 어려워질라치면 책을 덮어버리는 세태에서 어차피 상업영화를 다뤄도 볼 사람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인지 지은이 김용규 철학자는 이른바 ‘작품성 있는 영화’만을 바탕으로 글을 쓰네요.
지은이는 읽기 편하도록 여러 모로 애쓴 점이 곳곳에서 드러나지만, 어쩌면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것은 지은이가 괜스레 어렵게 책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철학자들의 사상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죠. 아무리 쉽게 써도 안 볼 사람은 안 보겠지만 철학을 더 알고 싶거나 자신의 지식이 모자라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되겠네요. 지은이의 친절과 땀방울이 글을 아로 지르네요.
한국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다룬 <박하사탕>은 정말 대단한 작품으로 갓 스무 살의 청년 김영호가 80년대를 만나면서 파멸하는 이야기지요. 소녀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진압군으로서 영혼에 큰 상처를 받은 김영호는 가학을 해야 하는 고문경찰관으로서 살아가죠. 언젠가 사진이 생기면 들꽃을 찍고 싶다는 순수한 청년은 80년대라는 ‘미친 시간’을 만나면서 무너지죠. 영화를 보다보면 극심한 공포와 함께 지독한 혐오감이 일어납니다.
박하사탕은 훌륭한 영화지만 지은이는 아쉬움을 끄집어냅니다. 이창동 감독은 ‘박하사탕’ 홈페이지에서 “단순한 ‘과거지향’이나 ‘복고지향’이 아니라 나에게 ‘박하사탕’은 원점으로 돌아가서, 과연 그 곳에서의 내 본래 모습은 무엇인가를 스스로 질문해 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나뿐만이 아닌 현재 시점에서의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으나 ‘과거로의 회귀’에는 성공했지만 ‘순수로의 회귀’에는 실패했다고 지은이는 얘기하네요.
자유의지를 갖고 있어 자기반성을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음,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본질
사람은 본능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유전자가 만드는 본능에도 영향을 받고, 행동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주어진 환경에도 영향을 받는 존재지요. 그렇지만 사람은 본능과 환경에 지배만 받는 ‘DNA 운반기계’나 ‘찰흙인형’이 아니에요. 자유의지를 갖고 있어 자기반성을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지요. 이것이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본질이죠. 김영호는 20년 동안 단 한번도 ‘행동하는 인간’으로서 자기 성찰을 하지 않고 그저 외부상황에서 주어지는 조건형성에 반응만 하는 유기체일 뿐이었음을 지은이는 짚어내네요.
갈수록 막장으로 치닫는 김영호에게 양심이란 건 이미 광주항쟁과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송두리째 박살이 났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사람이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고민들을 영화엔 없던 거죠. 순수에서 타락으로 과정에만 집중했을 뿐 더러워지는 것에 ‘저항하는 사람’이 빠져있습니다. 그 아무리 끔찍했던 아우슈비츠에서도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김영호는 조금도 반성하는 흔적이 없으니까요.
어떠한 환경에 놓이더라도 사람은 자기 모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마지막 자유’지요. 시대가 아무리 험악했어도 사람답게 살고자 피눈물을 흘렸던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순수했던 청년의 밑바닥까지 허물어뜨리면서 ‘짐승의 시대’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는 큰 울림을 낳지만 사람이란 존재를 너무 건성으로 본 건 아닌가 생각이 들게도 하네요. 물론, 그 시대에도, 지금도 자유보다 욕망충족에 눈 빨간 괴물들이 많긴 하죠.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양심이란 ‘사람의 자기회귀성’이지요. 프롬은 “사람은 자기 인생을 얻거나 잃는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사람은 오직 자기 양심소리를 이해하기만 한다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는 파멸할 것이다. 아무도 그를 도울 수 없으며 그 자신만이 도울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죠. 즉, 진정 자기 자신, 참나에게로 돌아가려는 사람이라면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만 합니다.
사람 스스로 책임지는 존재이기에 자유의지가 있고 양심이 늘 심장 가까이에서 바른 길을 속삭여주죠. “야! 너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냐?… 임마! 네 일기장에 보니까 그렇게 써 있던데. 삶은 아름답다고…”라며 고문하던 김영호가 ‘이건 진짜 아닌데’하며 조금만 더 양심에 눈길을 돌렸더라면 어땠을까요? “나 어떡해”라는 노래를 부르며, 철길 위에서 “나 돌아갈래”라고 외치지는 않았을 거 같습니다.
모든 게 거꾸로 돌아가는 현실, 갈수록 거칠어지는 사람들의 영혼, 행복이란 무엇인가?
영화는 20년이라는 세월을 여섯 번에 걸쳐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법을 쓰죠. 모든 게 거꾸로 돌아가는 현실에서 박하사탕은 여전히 의미심장하네요. 갈수록 사람들의 영혼은 더할 수 없이 거칠어지고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2시간도 하지 않은 채 평생을 ‘돈과 섹스’만 생각하고 있죠. 돈을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도, 섹스를 왜 해야 하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무조건 돈을 많이 벌고, 어떻게든 섹스를 많이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쾌락기술들과 전문지식들을 갖고 있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주인이기보다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감각만을 문질러대는 물질문명과 도구화된 정신문명 속에서 지독히도 고통스러우며 거짓되고 무가치한 삶을 살아갑니다. 더욱 더 관능과 쾌락, 소유와 소비, 그리고 얄팍한 상대주의와 저속한 대중문화를 새로운 아편으로 삼아 하루하루 스스로를 위로하고 ‘별 생각 없이’ 살아갈 뿐이죠.
그러나 아무리 질퍽한 밤도 아침햇살 아래 허무하듯 누구에게나 한번쯤 ‘깨어나는 시간’이 다가옵니다. 자신의 삶이 비참하고 헛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보통은 눈을 질끈 다시 감고, 쾌락으로 몸을 던집니다. 쳇바퀴 돌 듯 각성의 시간은 끊임없이 찾아오고, 양심은 쉼 없이 문을 두드립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낀 기름기와 뱃살지방을 걱정하며 귀에 돈을 쑤셔 넣고, 눈에 공구리를 바르면서 사람 같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김영호처럼.
한국은 행복한 사람이 별로 없는 이상한 나라입니다.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기건만 모두들 ‘가난한 영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너무 늦게 돌아가고 싶다고 절규해봤자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은 지금 소리쳐야 합니다. 다시 깨끗해지고 싶다는 절실한 영혼의 소리, 잠시만이라도 숭고해주고 싶다는 삶의 소망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마음 한 구석에는 가엾은 양심이 눈물 흘리며 아직 남아있으니까요.
그 양심을 다독이며 다시금 일으켜 세워주는 일이 철학입니다. 이제 철학의 역할은 새로운 철학 체계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과거의 사상들에서 가치 있는 철학들을 찾아 지금-여기에서 실천하게끔 하는 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지금도 뜨거운 철학자들의 고민들을 만나서, 양심의 눈을 떠야 합니다. 귀를 열어야 합니다.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그제와 어제가 그렇듯,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 행복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