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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한두 줄만 쓰다 지친 당신을 위한 필살기 ㅣ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09년 5월
평점 :
말과 글 없는 곳이 없죠. 회사에서 발표할 때도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언어가 필요합니다. 친구와 얘기할 때도 인터넷에서 영상을 볼 때도 언어가 필요하죠.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감각하고 사유하고 상상하고 표현합니다. 문화는 언어 없이 존재할 수 없고, 사람은 언어를 익히면서 비로소 사람다운 존재가 됩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언어를 잘 쓰고자 하죠. 언어의 영역,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중에서 인류가 온 힘을 기울여 다듬어 온 분야가 쓰기입니다. 글쓰기는 언어 감수성과 피나는 노력이 맞물려야 제대로 할 수 있기에 그 누구라도 글쓰기 연습을 하지 않았다면 한두 줄 쓰다가 지쳐버리기 일쑤죠. 좋은 글은 예술과 노동이 참된 만남을 할 때 피어나는 언어의 꽃입니다.
그럼에도 글쓰기가 뭔지 아직 느낌이 안 오고, 막막한 분들이 많이 계시죠. 그런 분들을 위해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쓴 작가 이만교씨가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2009. 그린비]에서 글쓰기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들을 풀어놓네요. 수십 년 쌓여온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글을 잘 쓰고 싶은 누군가에게는 ‘필살기’가 되겠네요.
글쓰기란 무엇인가? 왜 글을 쓰려 할까? 마음으로 밑줄 쳐 놓은 씨앗문장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진실이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쓰는지 나도 모른다’는 사실 뿐이었다고 지은이는 정직하게 얘기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뭘 좀 안다고 착각을 했었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하죠.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을 자신이 잘 모른다는 절급한 자각이야말로 글쓰기를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밑천이었다고 지난날을 털어놓습니다.
자만하지 않고 사뭇 조심스럽게 평생 해온 글쓰기를 다시 짚어보죠.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 ‘연구 공간 수유 + 너머’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글쓰기란 무엇인지? 나는 왜 글을 쓰려 하는지? 글쓰기를 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사람들을 만나서 같이 고민하고 함께 공부합니다. 선생으로서, 같은 학생으로서.
사람은 누구나 새롭게 감각하고, 깊이 있게 사유하고, 자유로이 상상하고, 새로운 각도로 삶을 인식하고, 용기 있게 살고 싶어 하죠. 글쓰기는 자신의 인생이 배어나오는 작업으로 평생 익혀나가야 하는 과정이죠. 자기 삶이 녹아나기 때문에 글이 좋으려면 삶이 좋아야죠. 그만큼 더딜 수밖에 없고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지요. 좋은 글을 쓴다는 건 매력 있긴 하지만 지극히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죠.
그럼에도 우리가 글을 쓰고자 하는 건 씨앗 문장 때문이죠. 모든 글쓰기는 바야흐로 씨앗문장에서 비롯되었으며 마침내 씨앗문장으로 돌아가게 되니까요. 씨앗문장이란 마음으로 밑줄 쳐 놓은 문장을 말해요.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하게 만들고, 나아가 자신도 그런 글을 써보고 싶게 만든 문장들이죠. 이러한 씨앗문장이 글을 쓰게 부추기는 가장 기본 동인이 되죠. 어떻게 이렇게 좋은 문장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겸허한 경탄과 더불어 자기도 바로 이러한 문장과 이러한 사유를 펼치고 싶다는 즐거운 질투를 느끼게 하는 문장이죠.
누구에게나 씨앗문장이 있을 겁니다. 그 문장을 만났을 때, 온 세상이 떨렸으며 눈이 동그랗게 커지면서 가슴이 콩닥거리게 되죠. 이러한 씨앗문장에서 느꼈던 감동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글쓰기를 하는 거죠. 또한 그러한 씨앗문장을 일구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는 거죠. 한 사람의 삶과 세계를 뒤흔드는 씨앗문장이 쉽게 생기지 않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죠. 거저 주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오직 정진과 전념뿐이죠.
스스로 언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 언어감수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의 결과
악기를 다뤄본 사람은 압니다. 악기란 미묘하죠. 조금만 소홀히 다루어도 그 음색이 기운을 잃죠. 다루는 사람의 성정을 그대로 드러내줍니다. 악기뿐이 아니죠. 미술이든 사진이든 모든 예술 매체들은 다루는 방법, 기술과 집중력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됩니다. 자신이 다루는 악기가 또는 붓이, 또는 사진기가 얼마나 예민한 친구들인지 수없이 절감했을 터이죠. 그 도구를 다루는 기초기술 익히는 데만도 3, 4년은 족히 투자해야 하죠.
그런데 그 어떤 악기나 그 어떤 매체보다도 예민하고 섬세하고 복잡한 성능을 지닌 것이 바로 사람의 언어예요. 아 다르고 어 다르죠.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생활에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언어를 잘 다룬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언치라고 하죠. 언치가 쓰는 문장들은 음치가 부르는 노래이며, 두터운 장갑을 끼고 세공을 한 사람의 도자기이고, 비염 환자가 킁킁 거리며 냄새 맡는 꼴입니다.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언치라는 것을 모른다는 거죠. 자기가 쓰는 언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잘 알지 못하고 그러한 인식조차 없이 살아가죠. 언어는 존재의 집이고, 삶과 겹쳐있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함부로 말을 하고 글을 쓰면서 살아가죠. 그만큼 자기 삶은 망가지죠. 자기 편한 대로 거칠게 언어 쓰는 사람들의 삶은 세상 편한 대로 거칠 수밖에 없죠. 언어감수성이 둔한 이의 사람 관계 역시 둔할 수밖에 없어요. 언어에 대해 고민이 없는 사람은 삶에 대해 고민이 없으니까요.
미감이 둔한 요리사가 있을 수 없듯이 글쓰기에 있어서 언어 감수성은 가장 기초이며 반드시 필요한 요건입니다. 글쓰기는 오로지 100% 언어로만 의사소통하는 작업이어서 글을 쓰려면 반드시 언어에 대해 주의가 남달라야 하고, 언어에 대한 자극과 느낌 또한 예민하고 정확하고 풍부해야 하죠. 그러려면 언어를 많이 겪어봐야 합니다. 커피를 많이 마셔본 사람이 그 맛에 예민하고 정확해지듯 개를 키워 본 사람이 개의 반응을 누구보다 올바르게 읽어내듯.
자신에게 언어감수성이 없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지요. 감수성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훈련의 결과이니까요. 커피 맛은 처음에 다 쓰기 마련이고 개의 반응은 처음에 무조건 귀엽게 보일 뿐이죠. 시간과 정력을 들여 공부하고 배워야하죠. 천재들이란 자기 일에 전념한 사람들일 뿐이죠. 다시 말하면, 자기 일이 좋아서 하루 열 시간씩 십년 쯤 몰두한 사람이 천재에요. 세상에 천재가 드문 건 자기가 하는 일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희귀하기 때문이죠.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아, 함께 삶을 쓰고 글처럼 살아야
안타까운 것은 천재는커녕 자기가 뭘 해야 되는지 뭘 바라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거죠.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산다는 건 얼마나 놀랍고 끔찍한 노릇인가요?! 언어를 잘 모르는 만큼 삶도 잘 모르는 거죠. 그런 뜻에서 글쓰기는 자기 삶을 들춰내며 ‘참나’를 찾아가는 소중한 길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 열심히 갈고 닦으면 반드시 자기 글과 삶은 변하게 됩니다. 변화는 언제나 애쓴 만큼 그 순간 그 순간 일어나고 있죠. 다만 아직 인식하는 틀이 갖춰지지 않아 인지하지 못할 뿐이죠. 땀 흘리는 만큼 분명히 삶은 달라집니다. 만약 정말로 무엇인가를 꿈꾸며 온 삶을 쏟아 붓는 사람이라면, 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변화는 당연히, 반드시, 그리고 자연스럽게, 되도록 가장 빠른 속도로 현실에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와 ‘조급히’를 헷갈리고, ‘최선을 다해’와 ‘욕심을 다해’를 구별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생각’과 ‘자기만의 고집’을 뒤섞어서 생각하고, 독특한 생각과 독선적인 생각을 혼동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것이 아니라 ‘혼자뿐인 시간’을 가지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아니라 고지식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부려 살고 있죠. 자기 경계가 어떠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알아야 하는데, 이때 글쓰기가 도움이 되죠.
이만큼 나이 먹어서 뭔 글쓰기냐, 이러는 분들도 많이 계시죠. 하지만, 모든 행동은 미래에 견주면 절대 늦는 법이 없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 못마땅하거나 불만족스러운 자기 삶을 가장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마음을 바꾸는 겁니다. 그 마음을 변하게 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읽고 쓰고 생각하는 공부를 시작하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현실을 변화할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위대한 순간이죠.
삶은 짧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인생은 저뭅니다. 지금 이 순간 깨어서 온전하게 살아야 합니다. 미안한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깊은 사랑을 전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죠. 이 책 제목을 보면, 공작은 工作이 아니라 共作입니다. 삶은 홀로 만드는 게 아니라 같이 만든다는 거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삶을 쓰고 글처럼 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