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3
한윤형 지음 / 텍스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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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형씨는 아흐리만이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정치게시판과 블로그에거 활약하는 20대 논객이죠. 고3 때, <조선일보>와 서울대 공동주최 논술대회에서 대상 수상 뒤, <조선일보> 인터뷰를 거부함으로써 남다른 정치의식을 보여준 그는 또래들과 달리 사회정치를 평론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글을 쓰는 20대죠.

 

한씨가 키보드 하나로 세상과 맞짱을 뜨겠다며 컴퓨터 앞에 앉은 지 어느덧 10년, 그 오랜 시간을 돌아보면서 쓴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2009. 텍스트]는 상당히 재미있는 21세기 초 기록물이네요. 제 2의 진중권을 꿈꾸는 20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엿볼 수 있고, 그가 보는 2000년대 한국 풍경은 어떠한지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안티조선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실은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운동”

 

안티조선일보운동(아래 안티조선)은 한윤형 인생에 크게 자리하고 있지요. 안티조선에 최연소자로 참가하여 학교 선배들뿐만 아니라 나이 많은 누리꾼들, 수많은 지식인들과 만남은 그에게 소중한 경험일 테니까요. 강준만, 홍세화, 진중권, 김규항, 김정란 등등의 지식인들과 술 한 잔 나눌 때, 갓 스무 살 넘은 청년의 눈빛이 얼마나 반짝였을지 상상하면 살며시 흐뭇해지네요.

 

혹시 ‘안티조선’이 뭔지 벌써 잊으신 분들을 위해 짤막하게 돌아보자면, 조선일보는 최장집 교수를 사상 검증하겠다고 덤벼들었고, 여기에 강준만 교수가 반발하고 홍세화, 진중권 등 좌파지식인들이 적극 합류하면서 크게 불거진 언론개혁운동이에요. 2000년 8월 7일에는 조선일보 기고/인터뷰 거부 1차 지식인 서명에 무려 700명이나 참여를 했지요. 한윤형은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한다고 말하는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실은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운동”이라며 10대 때 참여하죠. 조숙하네요.^^

 

사실 ‘해당언론사’는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거에 비해 거쳐 온 역사를 살펴보면 아찔하죠. 멀리 내다보면 친일부역을 했으며, 1980년대는 전두환을 찬양하며 ‘1등 신문’으로 발돋움하고, 1990년대는 정치권력을 대신하여 좌익색출에 눈에 불을 켰고, 지금도 한국사회를 툭하면 냉전시대로 돌아가게 하는 재주를 지녔죠. 해당언론사가 어떤 글들을 썼는지 알만 한 뷴은 다 알게 되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크게 줄지 않았지요. 촛불정국을 겪으면서 뭔가 변화가 보였으나… 참 쓰읍…하죠.

 

안티조선 역시 그들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 했지요. 조선일보라는 게 중요할 뿐 거기에 누가 쓰든 사람들은 중요하게 여기질 않았지요. 읽는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권력은 언론이었지 교수가 아니었으니까요. 유시민이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라는 책을 낼 정도로 해당언론사는 ‘밤의 대통령’이라 스스로를 칭하며 반공과 증오를 오늘도 뱉어내고 있지요. 지은이는 안티조선 역사를 찬찬히 기록하네요.

 

노풍이 불어닥친 2001년, 진보정당 당원들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날선 공방

 

한국 정치사에 2001년은 가장 놀라운 해로 기록될 거예요. 지금은 ‘충청도 대통령’이 되어버린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나와 대통령되는 분위기였으니까요. 바로 그 때, ‘노풍’이 전국을 휩씁니다. 인터넷 정치토론의 중심은 안티조선이 아니라 노무현이 되었고, 때 맞춰 안티조선도 갈라집니다. 정권이 바뀌면 안티조선은 끝장이라며 정권재창출 운동으로 바꿔야 한다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측과 이에 반발하는 민주노동당원은 서로 으르렁거리죠.

 

그때 민주당 쪽은 ‘비판적 지지론’을 다시 내세웠죠.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지지를 부탁했던 논리로 극우에 맞서려면 우선 힘을 모아야하기 한다는 거죠.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노무현을 돕기 위해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김민석을 밀어야 한다는 강준만 쪽과 노무현을 지지하는 그 이유 때문에라도 민주노동당 이문옥을 지지해야 된다는 진중권 쪽으로 나뉩니다. 결국 서울시장은 이명박이 됩니다. 재미있는 건 강준만이 진중권과 진흙탕 싸움을 하면서까지 지켜냈던 민주당 김민석 후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몽준 후보의 심복이 되어 노무현 후보를 끝까지 괴롭혔다는 거죠.

 

지은이는 진보정당 당원으로서 민주당과 한나라당 구도를 해체하려면 민주당 편만 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죠. 그래봤자 한나라당을 결속시키는 결과를 부를 뿐이니까요. 따라서 진보정당이 성장해야 한국정치판도 바뀐다는 논리를 진지하게 펴죠. 지은이는 인터넷에서 수많은 논쟁을 벌이다가 ‘노빠프리존’을 선언할 정도로 ‘노빠’들에게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다고 책에서 털어놓네요. 노무현지지 쪽과 진보정당 쪽 사이 깊은 골이 느껴지네요.

 

지은이는 하도 시달린 나머지 이문열 홍위병 발언이 어떤 의미에서는 적절했다고 할 정도지요. MB정부가 워낙 경제정책과 정치능력이 한심해 참여정부가 파스텔풍으로 그리워지는 때지만, 이전 정부 때도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다는 것을 지은이는 떠올리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분위기가 확 바뀌었지만, 그때만 해도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쪽과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거센 공방이 오고갔으니까요. 지은이의 글을 읽으며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네요.

 

88만원 세대, 이제는 정직하게 아무리 일해도 그럭저럭 살 수 있는 세상이 끝났다!

 

아무리 게시판에서 논리정연한 논객이라도 그는 20대지요. 아직 완전한 독립을 못하고 부모 눈치를 보며, 언론사라도 들어가서 생계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88만원 세대 일원이라는 거죠. 좌파도 우파도 모범생이 되어버린 시대에 자신은 게으름뱅이라서 버벅거리고 있다며 자책을 읽다보면 슬쩍 마음이 쓰려오네요.

 

사실, 유럽에서 1,000유로 세대나 700유로 세대라며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20대가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일 수 있기 때문이죠. 유럽은 어느 정도 사회복지체계를 갖췄기 때문에 20대만큼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적으니까요. 하지만 한국은, 으악, 자살률 1위, 꺄악, 출산율 꼴찌답게 사람이 살 수 없는 사회지요. 여기저기서 죽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어서 젊은이들에게 눈길 돌리기가 쉽지 않네요.

 

눈높이를 낮추라고 위정자들은 말하나 젊은이들은 알고 있죠. 이제는 정직하게 아무리 일해도 그럭저럭 살 수 있는 세상이 끝났다는 것을, 어떻게든 한방을 터뜨려야 하는 세상이 되었으며 열심히만 해서는 희망이 없다는 걸 온 몸으로 느끼고 있죠. 따라서 공무원 열풍이 부는 거죠. 평생을 경쟁만 하며 살아왔어도 희망이 안 보이는 이들이 해직의 걱정이 덜한 안정된 직장을 찾는 건 당연하죠.

 

젊은이들이 자기 상황을 그대로 ‘서사화’해야 한다고 한씨는 목소리 높이죠. 자신들이 어떠한 환경에 놓여있으며 어찌 살고 있는지 세상에 말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상황이 풀린다며 20대 후반의 88만원 세대로서 끔찍한 현실을 안타까워하죠. 모든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신통한 MB정부’를 맞아 젊은이들이 앞으로 무슨 말을 할지 지켜보게 되네요.

 

스물일곱의 질풍노도를 겪고 있는 ‘아흐리만’, 진중권을 넘어 더 뜨거운 논객이 되길!

 

한윤형의 ‘아주 주관적이고도 사소한 연대기’를 보면 진중권을 중심으로 풀어져 있을 정도로 한씨는 ‘진빠’죠. 1998년 진중권, 세기말의 명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출간. 1999년 ‘강준만 - 진중권 1차 논쟁’ (지식인혐오증 논쟁), 2000년 진중권, <월간조선> 편집장 조갑제의 홈페이지 난입, 2001년 진중권, <조선일보>독자마당(조독마) 난입, 조독마에서 네티즌들의 청유로 ‘밤의 주필’이 됨을 선언하다. 2002년, ‘강준만 - 진중권 2차 논쟁’(옥석논쟁)을 기록할 정도로 지은이는 진중권에게 큰 영향을 받았죠.

 

사실 <디워>사태와 촛불 정국에서 진중권씨가 활약하며 ‘대중 지식인’이 되었지만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10년 전에도 유명한 지식인이었지요. 조선일보는 진중권을 막기 위해 조독마의 주소를 몇 번이나 옮겼으며, 게시판을 회원제로 만들었고, 최후에는 회원의 글쓰기 권한을 1일 5회로 제한할 정도로 진씨를 싫어했죠. 2008년, 촛불시위 현장에서 진중권이 “칼라TV 들어갑니다”라고 말하면 시위대가 절반으로 갈라지는 ‘기적’을 연출한 ‘진모세’는 이미 10년 전에도 사람을 반으로 나눴죠.

 

지금과 마찬가지로 진중권하면, 질색하는 사람들이 그때도 많았지만 그 반대편에는 진중권 글을 읽으며 무릎을 치는 사람들도 많았지요. 한윤형은 진중권 글을 읽으며 감탄하는 쪽이었죠. 진중권을 알게 되면서 고등학생 한윤형은 대중문화 세계에서 정치세계로 발걸음을 옮겼다고 적네요. 진중권의 글을 보며 자란 청년은 20대 대표 논객이 되어 오늘도 매서운 글을 쓰며 사람들의 굳어진 고개들을 건드리네요.

 

이번 봄학기를 끝으로 대학을 졸업한 지은이는 취업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하네요. 스물일곱이지만 질풍노도를 겪고 있다면서 진중권과 이택광 사이 글쓰기를 목표한다고 하네요. 그게 과연 가능할지 자신 없어 하는 그의 글을 읽다보면, 청출어람이라는 말처럼 진중권을 넘어 더 뜨겁고 품 넓은 논객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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