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이 있다 - 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
강곤 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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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릴 때, 장자연씨가 홀로 목을 맬 때,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까… 차마 눈을 뜰 수 없습니다. 한국은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살률 1위. 저출산 1위, 살고 싶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낳을 수 없는 곳, 경제대국이라는 21세기 한국의 속살입니다. 그 속살에 불이 붙었습니다. 용산참사라는 너무 뜨거워 가슴 아린 불이.

 

오늘로 용산참사 150일이 되었습니다. 멀쩡한 사람이 여섯 명이나 죽임을 당했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통령이나 장관, 하다못해 경찰청장의 입에라도 단 한마디 진심 어린 위로와 사과의 말이 없습니다. 오로지 법질서 확립과 떼잡이들을 근절시키겠다며 으르렁거리기만 합니다. 시신은 아직 장례를 치르지도 못한 채 순천향병원 차가운 냉동고에 있습니다. 이 냉동고에 한국의 인권이 갇혀 있습니다. 우리의 앞날이 얼어있습니다.

 

폭도로 몰린 너무나도 평범한 우리 이웃들 이야기, ‘여기 사람이 있다’

 

피해자들은 폭도도, 이익집단도, 테러리스트도, 브로커도 아닙니다. 350만 원짜리 무허가 판잣집을 ‘내 궁전’이라 여기고, 12평짜리 전셋집에서 네 식구가 함께 사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소박한 이웃이었습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2009. 삶이 보이는 창]는 그들 역시 처음부터 철거민이 아니라 바로 ‘내 이웃’이었고, 자신도 언제고 철거민 처지가 될 수 있음을 생생하게 일깨워주는 글입니다.

 

지난 1월 20일, 짐승보다 못하게 내몰린 사람들은 살고자 망루에 올라갔다 끝내 죽어서 내려왔습니다. 국민을 위한다는 공권력은 “저 안에 사람이 있어요! 저 안에 사람이 있어요!”라는 울부짖음도 외면한 채 살인진압을 강행합니다. 불이 났는데도 진압은 이어졌습니다. 만약 불이 났을 때, 잠깐이라도 진압을 그만두고 구호 조치를 한 뒤 다시 작전을 했다면 철거민들이 숯주검 되었을까요? 그 숯주검조차 가족들을 따돌리고 12시간 만에 강제 부검 당했습니다.

 

폭도라고 몰아붙이며 죽은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피해자들이 너무나도 평범해 오히려 ‘테러리스트라고 손가락질하는 그 손’을 추악하게 만듭니다. 35년째 세입자로 살던 일흔 둘 할아버지, 식당을 하던 동네 아저씨, 노점상을 하던 가난한 철거민, 건설노동자 등 소박하게 일하면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강제철거 전에 임시로 살 곳을 마련해달라고 대화를 요구했을 뿐입니다.

 

당연한 권리입니다. 숟가락을 하나를 누가 집어가도 발끈하는 세상에 삶을 송두리째 앗아버리겠다는데, 어느 누가 가만히 있을까요? 나무 한그루를 옮기더라도 갖은 정성을 들입니다. 물건도 아니고 사람을 옮기는데, 어찌 힘으로 내쫓을 수 있나요. 그러나 어느 지역이든 용역 깡패들이 주먹질을 할 때, 불러도, 불러도 경찰은 오지 않습니다. 칠순 노인이 젊은 깡패들에게 욕먹고 얻어맞을 때에도 나이든 여성이 건장한 남성들에게 머리채를 휘둘리며 죽도록 맞아도 철거민들만이 업무방해와 공무집행방해로 입건될 뿐입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건 경찰과 용역 깡패들이 ‘나쁜 놈’이라서가 아니라 그 뒤에서 그들을 조종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죠. 법치와 권력이란 이름으로 자본에만 철저히 봉사하는 그들에게 철거민들의 피눈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보통의 이웃들은 ‘사람의 권리’를 지키고자 폭력에 대항하고, 견디다 못해 망루에 오르게 됩니다. 그 과정이 너무 애달파 미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게 됩니다. 그리고 무참히 짓밟힐 때…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됩니다.

 

MB정부는 용산참사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유족대표들과 공식대화를 하지 않았다!

 

소통을 그렇게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는 용산참사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유족 대표들과 공식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특공대 투입 결정과 진압작전이 ‘적법한 법 집행이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용산참사를 덮기 위해 연쇄살인범 사건을 키우라는 ‘신 보도지침’을 내려 보내기도 했지요. 지난 4월 말 행정안전부와 경찰 정보 계통 쪽에서 용산 문제를 풀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대화는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청와대 반대로 해결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것은 국민을 섬기겠다는 모습이 아닙니다. 참여정부를 살펴보면, 그 때도 시민사회와 격렬한 대립들이 많았습니다. 문제는 태도가 딴판이라는 거죠.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운동이 한창이었던 2005~2006년, 당시 국무총리실·국방부의 ‘공식 라인’은 물론이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민정수석 등 ‘비공식 라인’이 주민 대책위 등과 수많은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당시 한명숙 국무총리는 주민들에게 수모를 당해가며 평택을 찾았고 대국민담화도 발표할 정도였지요.

 

지도자는 이곳에서 사람들 갈등을 풀어주어 저곳을 꿈꿀 수 있도록 챙겨주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온몸으로 냉정하게 품되 아름다운 내일을 그릴 줄 알아야 하는 거죠. 인류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세상을 수많은 작가, 정치가, 저술가들이 썼습니다. 오바마는 그 모든 책들을 거의 읽었다고 합니다. 법과 경제 같은 실물과 인류의 이상향을 같이 공부한 사람이라는 거죠. 현실과 이상이 만나고 끝없이 소통함으로써 지금의 오바마가 있는 겁니다.

 

지금 한국을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봅니다. <난쟁이를 쏘아올린 작은공>을 쓴 조세희 작가는 “무력을 행사하고 동족을 죽여 놓고도 자기들이 법대로 잘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독서량을 얼말까. 그 머릿속에는 뭣이 들어가 있을까. 이런 거 생각하면 끔찍하”다며 탄식을 합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습니다. MB정부는 법치,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말만 내걸면서 도대체 귀를 열지 않습니다.

 

원래 나쁜 일을 저지를 거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아요. 나쁜 일들은 언제나 선한 목적을 위해 악한 방법을 정당화함으로써 만들어지죠. 권력자들은 흔히 경제 번영, 국가 전통성, 법치주의 확립, 선진화 따위를 내세우며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불평등과 불공정을 부추깁니다. 자유민주주의란 이름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언론의 독립성을 목 조르죠. 법치란 명분으로 인권에 침을 뱉고, 국가 안보를 내세워 평화를 찢습니다.

 

민주주의가 가파르게 추락하는 한국, 이것은 MB정부만의 책임인가?

 

한국 사회 민주주의는 가파르게 추락하고 있고,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사할 때는 하나하나 언론에 흘리던 검찰, 용산참사는 수사기록 3천여 쪽을 비공개하면서 진실을 덮으려 합니다. 지난 3월 말부터 참사 현장에서 ‘거리 미사’를 열고 있는 문정현 신부는 “이명박 정부는 용산 유족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닫고 이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며 “이는 정부의 무능이거나 엄청난 직무유기”라고 말을 합니다.

 

문제가 이렇게 된 데는 MB정부 책임이 크죠. 정부정책 비판은 하되 MB정부만을 탓해선 안 됩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변해야 합니다. 폭력은 경찰곤봉이나 군대의 총만이 아닙니다. 우리 시대 어느 아이 하나가 배고파 밤에 울면, 그 아이 울음소리가 그치도록 애쓰지 않는 거 역시 폭력입니다. 하물며 사람이 떼죽음을 당한 어마어마한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눈감고 지나간다면 자기 안에 살아있는 양심에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비록 철거민들을 두드려 패거나 그들을 죽일 때 힘을 보탠 건 아니지만 그 범죄행위와 학살행위에 무관심했던 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조세희 작가가 “미래에는 이러한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는 <난쏘공> 나온 지 31년이 지났지만 똑같은 일은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조 작가는 “한국에서 행복해하는 자는 다음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바보다”고 합니다. 편안함은 언제나 누군가의 피눈물을 머금고 있으니까요.

 

사람이 무려 6명이나 죽는 참사를 겪고도 한국 사회는 여전합니다.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습니다. 용산 4구역에서 재개발이 다시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울 시내 260곳, 전국 600여곳에서 이런 강제철거가 재개발이나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모든 곳에서 가난한 이들은 얻어터지고 쫓겨나고 있습니다. 중산층이라고 해도 하루아침에 철거민이 되고, 가옥주가 세입자로 전락하고, 상가 세입자는 권리금도 못 받고 쫓겨날 판입니다. ‘제 2용산참사’는 예고되어 있습니다.

 

또한 가슴 아픈 게 경찰들입니다. 그들은 힘없고, 빽 없는 20대 청년들로 병역 때문에 거기에 있을 뿐입니다.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온 젊은 친구들이 국민을 꽉 눌러야 되는 상황, 비극입니다. 철거민도 희생자고, 경찰도 희생자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희생을 자꾸 만들어내는 걸까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라고 하고 누가 팔짱끼고 뒤에서 돈을 세고 있는 걸까요? 용산에서 일어난 불길은 한국을 제대로 보라며 5개월째 타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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