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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스웨터 - 부유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 사이에 다리 놓기
재클린 노보그라츠 지음, 김훈 옮김 / 이른아침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돈, 돈, 돈, 어느새 돈은 사람들의 목표이자 꿈이 되어버렸습니다. 돈은 거래를 원활하게 돕는 도구이자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인데, 스스로 폭군이 되어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죠. 신이 되어버린 돈을 우러르며 사람들은 머리를 조아립니다. 돈님, 제발 저희를 불쌍히 여기고 저희 곁으로 내려와 주세요!
돈만 많다고 행복하느냐? 수많은 부자들이 마음의 가난으로 불행하게 살고 있습니다. 신경학,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행복은 가지고 있는 부와 비례하지 않습니다. 먹고 살만큼만 되면 돈은 행복에 영향을 주지 못 하는 거죠. 타인과 공감하고 세상에 도움을 주면서 삶의 의미가 피어날 때, 행복감이 깊고 오래 간다는 것, 과학으로 이미 다 밝혀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정말 자신이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원치 않은 일을 하기에 먹고는 살지만 행복하지 않은 거죠. 괴롭게 출근을 하여 주말만 기다리는 거죠. 딱히 다른 대안은 없고, 그저 흘러가는 젊음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블루 스웨터>[2009. 이른 아침]는 더 행복한 일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심장을 뜨겁게 달굴 책입니다.
돈과 성공이 보장되었던 스물다섯 국제은행가, 아프리가 개발 사업에 뛰어들다
모든 사람이 안정된 직장과 출세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따뜻한 이상을 가슴에 품고 삶의 의미를 구하고자 오늘도 묵묵히 땀을 흘리는 젊은이들이 있죠. 지은이 재클린 노보그라츠도 그런 젊은이었죠. 권력과 돈, 성공이 보장되었던 국제은행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스물다섯 살에 비영리기구 아프리카 개발은행으로 일자리를 옮깁니다.
그녀가 바보라서 탄탄대로였던 직장을 걷어찬 것일까요? 사람은 결코 빵만을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기에 용기를 냈던 거죠. 지금 의미 있는 일을 하지 못하면 나이 들어서도 못 한다며 백인이자 미국인으로서 편하게 살았던 재클린은 아프리카로 떠나게 됩니다. 가난과 절망만이 맴도는 절망의 대륙으로.
재클린은 아프리카 여성들의 텃세에 마음고생도 하고, 자신의 노력을 무시하는 사람들 때문에 지치기도 했으며, 원만하지 않은 소통에 울기도 합니다. 낯선 이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물건들을 도둑맞기도 했으며 무릎에 얼굴을 묻고 외로워하기도 했죠. 그럼에도 그녀는 아프리카에 남아 ‘행복한 변화’를 일으킵니다.
엄청난 돈이 들어갔고 지금도 쏟아 부어지고 있지만 아프리카는 여전히 가난합니다. 원조가 실패하는 이유는 도우러 간 사람들이 현지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기 때문이죠. 자기네만이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듯 가르치려 들죠. 그렇기에 돈만 많이 들어갔지 공장이 텅 비거나 판로가 없는 물건들만 만들어대곤 하였죠.
가난한 이들을 돕는 비영리 벤처자본 어큐먼펀드, 세계에 변화를 일으키다
재클린은 그저 돈을 주면서 느끼는 ‘값싼 동정’에 취하지 않고 냉철하게 문제점을 파고 들어가 사업을 바꿔놓으려 하죠. 의식과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원조에 길들여져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걸 느끼고,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변화를 시도하죠. 수익이 오래 날 수 있도록 멀리 내다보면서, 자신들이 책임감을 갖고 경영을 할 수 있도록 곁에서 밑그림을 그려주죠.
그렇게 소액융자은행 ‘두테림베레’를 설립합니다. 일반 상업 은행들은 돈을 떼일까봐 외면하는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곳이죠. 그저 돈만 빌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사업을 꾸려갈 수 있도록 경영 지도까지 해주죠. 현지인들과 오해도 생기고 좌충우돌하면서 ‘블루 베이커리’를 열어서 비혼모 스무 명이 스스로 일어서도록 돕습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2001년에 비영리 벤처자본 어큐먼펀드를 세웁니다. 이윤만 쫓는 펀드 회사도 아니고 그냥 돈을 퍼 주는 자선 단체를 넘어서 새로운 회사를 만든 거죠. 어큐먼펀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하는 회사들을 돕습니다. 인도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맑은 물을 공급해주는 기업이나 탄자니아에서 말라리아 예방용 모기장을 만드는 기업에게 돈을 빌려주고 사업이 잘 되도록 경영자문까지 해주죠.
어큐먼펀드는 2008년까지 4,000만 달러 이상을 40개 기업체에 투자하였고, 2만 3천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냈지요. 수천 만 명이 맑은 물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해마다 3,000만 명의 사람들이 모기장을 얻으면서 말라리아로 죽는 사람이 줄어들었죠. 이런 대단한 업적은 스물 다섯 먹은 젊은이의 심장에서 시작된 것들이며, 누구라도 마음먹으면 이룰 수 있는 성과들이라는데 의미가 크죠.
100만 명이 학살당한 르완다, 짙은 절망에서 희망을 잃지 않다
지은이는 아프리카 여려 나라에서 활동을 했지만 르완다와 가장 친밀합니다.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 ‘블루베이커리’를 열었을 정도니까요. 그런 르완다에서 3개 월동안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학살을 당합니다. 인구 800만 명의 나라에서 1/8이 죽은 거죠. 바로 1994년에 있었던 르완다 대학살 사건입니다.
이 비극의 씨앗은 제국주의와 맞물려 있습니다. 벨기에는 콧구멍이 좁다는 희한한 이유로. 투치족(10%)을 마름삼아 르완다를 식민지배 하였습니다. 벨기에가 떠나버린 뒤, 후투족(90%)은 불만을 터뜨리고 투치족은 반발하면서 갈등이 빚어왔지요. 1994년 4월, 두 종족 사이 평화협정을 맺게 되는 분위기에서 후투족 출신 대통령이 암살당합니다. 그리고 광기의 폭풍이 불어 닥칩니다.
후투요? 투치요? 어떻게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목숨이 왔다갔다 하였지요. 투치족뿐 아니라 학살을 반대하는 융화파 후투족도 무참하게 살해당합니다. 대학살 때, 미국에 있던 재클린은 큰 충격을 받고, 르완다로 갑니다. 이미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였고, ‘블루 베이커리’는 건물에 파란색만 덩그러니 남아있었고, '두테림베레'에 있던 모든 자료들은 사라졌죠.
더 큰 충격을 준 건 두테림베레에서 같이 일을 하였던 아그네스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거죠. 사회정의를 위해 같이 일한 여성운동의 선구자로 르완다 최초의 여성판자이자 최초의 국회의원이었던 아그네스, 어느 누구도 용서해줘서는 안 된다며 대학살을 부추기고 다그친 주동자로 잡혀있던 거죠. 아그네스를 면회 가서 말을 잇지 못하는 재클린은 그녀가 권력에 삼켜졌다며 마음 아파하죠.
자기가 이룬 모든 게 사라져버린 르완다를 보면서 절망할 수도 있으나 재클린은 오히려 희망을 얻습니다. 사람들을 바퀴벌레 취급하면서 죽였던 대학살 현장에서 자기 목숨을 걸고 수많은 생명을 살린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복수와 앙갚음이 되풀이되었던 끔찍하였던 살육 현장에서도 무엇보다 생명을 중요시하고 사람답게 살고자 한 이야기가 긴박하게 그려져 있네요.
소유냐 존재냐, 밥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행복 하고 싶다면 존재를 골라야
오늘 날 이 세계는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으며 인간은 외로이 떨어진 섬들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존재들이죠. 친구들이 놀려서 반품한 자신의 파란색 스웨터를 아프리카 소년이 입고 있는걸 보고 재클린은 깜짝 놀랍니다. 옷에는 자기 이름까지 적혀있지요. 자신이 버린 블루 스웨터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옷이 된다는 사실, 세계는 가깝게 이어져 있다는 진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얘기합니다.
시장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사랑만으로 세상이 달라지지 않기에 돈이라는 도구가 필요합니다. 사랑 없는 돈은 가치가 없지만, 돈 없는 사랑은 무기력하죠. 그런 고민 끝에 재클린은 사랑과 돈이 같이 어울리는 사업을 일으킨 거죠. 새로운 모습의 자선 사업으로 무엇이 정말 타인을 돕는 일인지 돌아보게 하는 회사죠.
요즘 사회적기업도 많이 생겨났고, 일반 기업들의 사회공헌과 사회책임이 많이 얘기되고 있습니다. 기업은 주주에게 이득을 돌리는 게 최우선이어야 한다고 큰소리쳤던 제너럴 일렉트릭(GE) 전 회장 잭 웰치도 “주주가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며 자기주장을 뒤집었지요. 그만큼 세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게 밥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존재욕이란 게 있습니다. 존재욕이란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고자 하는 욕망이죠. 스웨덴 교과서에는 존재욕을 희생하여 소유욕을 채우려한다면 병든 사회라고 가르칩니다. 소유욕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사회가 돕고,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아이들 때부터 가르치기에 존재욕을 실현할 가능성이 더 높은 거죠.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떤가요? 모든 사람들이 빨간 눈이 되어 소유욕을 채우고자 허겁지겁 살아가고 있습니다. ‘속물’로 살아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죠.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나는 바닷물처럼 아무리 쥐어도 행복하지 않기에 뭔가 이상하지만 다른 길을 못 보죠. 그러나 가슴 속 깊이에는 누구나 존재욕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자신이 정말로 행복 하고 싶다면, 잠깐이라도 ‘밥벌이의 공포’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