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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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젊은이들이 넘칩니다. 그들이 펼쳐놓는 스펙을 뒤적거리다보면 입이 쩍 벌어지곤 하죠. 젊은이라면 세상에 의문을 품고 공부에 집중하는 게 마땅한 일이기에 대견하지만 개운치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똑같은 상품으로 젊은이들이 제조되었으니까요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제품에 감탄하는 것은 초기 산업화 단계에서나 할 일이이죠. 배를 누르면 ‘I love you’만을 외치는 인형처럼 건드리기만 해도 ‘뽑아주세요. 영혼이라고 팔겠습니다’는 젊은이들, ‘득템’을 위해 세상을 헤매고 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과 반대로 점점 부자유해지는 젊은이들, 진리가 아닌 걸 붙들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는 건 많지만 삶이 풍요롭지 않고, 잡동사니 지식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몰라 헉헉댑니다. 걱정은 하지만 고민을 않기 때문에 지식이 지혜로 나아가지 않는 거죠. <고민하는 힘>[2009. 사계절]은 젊은이들에게 말을 겁니다. 고민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책을 쓴 사람은 일본이름을 버리고 강상중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사회에서 살아가는 재일교포 2세입니다.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 대학 정교수가 된 강상중씨는 일본과 한국의 경계인으로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죠. 언제나 삶을 뒤흔들었던 9가지 주제, 나, 돈, 지식, 청춘, 믿음과 구원, 노동, 사랑, 죽음, 늙음에 대해 지은이는 자기 생각을 두런두런 늘어놓습니다.

 

청춘은 나이가 아니다, 발기불능에 걸린 젊은이들이여, 충격이다!

 

청춘은 나이가 아니지요. 자신은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고민을 하고 있기에 젊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젊은이들을 ‘발기불능’상태라고 빗댑니다. 세상에 반응하지 않고 고개를 떨구고 있으니까요. 요즘 젊은이들은 뜨겁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싹 말라서 세상으로 배달되는 사람들이니까요. 토익 900점을 넘지 않으면 취직하기 힘들다며 영어책만 파고 있고, 아직 이십대인데도 “이미 나이가 많아서”라고 되뇌고 있는 대학생들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물론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면 유명 기업에 취직할 수 있고 높은 월급은 받으며 ‘생존’할 수 있겠죠. 하지만 ‘실존’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한 번도 살지 못한 삶이 과연 행복할까요. 자신이 죽을 때 자기가 번 돈이 생각날까요. 덮어두었던 꿈이 생각날까요. 10년 뒤, 이렇게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자기 삶을 돌아보면, 거기에는 삭막함만이 남아있을 거라고 지은이는 안타까워하죠.

 

한 놈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사회, 남들은 다 죽더라도 자기만은 살겠다는 청년들, 그렇게 ‘진흙탕 개싸움’이 펼쳐지고 젊은이들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사는냐고 물으면, 그냥 웃지요. 자기도 왜 이렇게 사는지 잘 모르니까. 얼핏 원숙한 듯 보여 인생의 깊이를 안다고 판단하면, 완전 오산이죠. 어른 흉내만 낼 뿐 막막한 인생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루에도 수백 번 우는 젊은이들이니까.

 

이게 젊은이들만의 문제가 아니지요. 사람을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는 끔찍한 사회제도, 점점 얇아지고 약해지는 사회 안전망, 패자부활전이 없는 경쟁 체제에서 젊은이들이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승자가 되지 못할지언정 패자가 되지 않겠다며 영혼을 팔아넘기는 일이 젊은이들만의 잘못은 아니란 거죠. 얘네들이 어느 날 갑자기 안드로메다에서 날아온 게 아니니까요.

 

젊은이들이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얘기하면, 또 응석이냐, 이제 지겹다며 귀를 막습니다. 아무리 부당하다고 항의하고 삭발을 해도 경찰들 시켜서 끌고 가면 그만, 그래, 너희가 고생이 많다, 바꿔줄게, 하며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 그런데 어쩌라고, 툭 내뱉고 다들 쇼핑하러 골프 치러 갑니다. 우린 땐 밥도 못 먹었어, 편한 줄 알아, 이것들아!

 

사회 비판은 하되 자기에게 물음을 던져라, 난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제까지 불평과 푸념으로 젊음을 갉아먹을 수 없지요. 사회비판은 하되 자기에게 물음을 던져야 합니다. 난 누구이고, 삶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야 합니다. 고민하지 않은 자는 ‘자기만의 성’안에 갇히게 되고 반드시 파멸하게 되니까요.

 

사랑은 어떤 의미인가, 돈은 얼마나 중요한가, 일이란 무엇이고, 늙음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답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질문들을 괄호 안에 넣고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버리기 일쑤죠. 독에 넣고 파묻은 김장김치는 맛있게 익기라도 하건만, 이런 물음들은 손톱 밑 가시처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두더지게임처럼, “여보세요 잠깐만요”를 외치며 끝없이 사람 마음을 휘저으니까요.

 

지은이는 ‘해답이 없는 물음’을 고민하라고 얘기합니다. 그런 고민은 젊기 때문에 가능하니까요. 이미 늙어버린 어른들은 애초에 그런 고민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청춘이란 한 점 의혹도 없을 때까지 본질의 의미를 묻는 것이라며, 그것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든 그렇지 않든 사회에 이익이 되든 그렇지 않든 ‘알고 싶다’는 자기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갈망에 솔직하게 따르라며 은근슬쩍 500원을 넣어줍니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망치를 들게 됩니다.

 

얍, 얍, 아무리 때려도 두더지들은 계속해서 올라오죠. 고민할수록 더 많은 의문들이 올라옵니다. 종교가 필요한가, 인간이란 존재는 짐승과 다른가, 자유란 무엇인가, 민주주의에서 나는 주인인가, 망치로 두더지들을 두드리다보면 자기 안에서 맴돌던 갈증들이 조금은 풀리게 되죠. 그리고 눈을 돌려 세상을 보면 이전과 다르게 보입니다. 자신이 달라졌으니까요.

 

고민은 자신에게서 시작하지만 결국 타자와 세상으로 뻗어 나갑니다. 자신은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얻고 존재할 뿐이니까요.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세상과 나의 관계는 어떠하고 나와 남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자고 지은이는 권합니다. 청춘은 고민하는 사람이니까요. 자기도 5학년 6반이지만 끝없이 고민을 하기에 청춘이라고 윙크를 합니다.

 

뿅망치의 달인, 5학년 6반이어도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고민과 젊음을 얘기하다

 

여기서 잠깐, 뭔가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거리가 느껴지는 겉장의 지은이 얼굴만 보고 이 책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섣부른 판단입니다. 지은이는 태어나면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해서 56년째 고민을 하는 ‘뿅망치의 달인’이니까요. 이제는 책 곳곳에 솔직하게 자기 얘기를 적으면서 능청도 떨 줄 아는데, 무척 재밌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게 배우랍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합니다. ‘고민하는 힘을 거쳐 최강이 된 뮤지컬 스타’라고 편집자가 지은이를 놀리자, 환상 같은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루고 싶은 바람을 털어놓는데, 할리데이비슨을 몰고 일본과 한반도를 종단하는 거라네요. 이런 꿈을 꿀 수 있게 된 것은, 고민을 통해 두려움이 사라진 것과 비슷하다고 얘기하네요. 달인 가라사대, 두려움은 죽지 않는다, 고민을 하면 사라질 뿐!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친 뒤, 무지개가 뜨고 아름다운 하늘이 보이듯이 고민 끝에는 자신감을 얻고 당당해질 수 있고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게 되죠. 지금 세상은 고민 하지 말고 그저 몸뚱이가 바라는 대로만 살라고 부추기기에 늘 불안하고 걱정이 많습니다. 잡념만 많지 그것을 깊게 고민해서 꿰뚫거나 불안의 뿌리를 찾으려는 시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적당히 살아갑니다. 타인과 두루뭉술한 관계를 맺고, 대가가 확실하지 않은 도전은 피하려고 하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별로 휘말리지 않으면서 요령 있게 삽니다. 이렇게 살아도 행복하다면 계속 그렇게 사시면 됩니다. 다만, 지금 삶이 불만족스럽다면, 발기불능한 삶에서 스스로 우뚝 서고 싶다면, 당장 망치를 드세요.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가죽바지를 입은 강상중씨가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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