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 완역본 하서 완역본 시리즈 1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유성인 옮김 / (주)하서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자기 자식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책을 권하나요. 백이면 백, 좋은 책 읽기를 바라실 겁니다. 좋은 책은, 나는 누구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하죠. 따라서 20대에 10억 버는 법, 10대에 5억 버는 법 같은 책보다 고전이나 명작을 가까이 했으면 하죠. 왜냐하면 삶의 지혜가 고전이나 명작에 담겨 있다는 건 식상할 만큼 알려진 얘기니까요.

 

하지만 그 좋은 책을 스스로 읽고 있냐고 되물었을 때, 머쓱하게 뒤통수만 긁는 사람이 많죠. 좋은 책 읽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당장 손이 안 가는 거죠. 일 해야죠, 술 마시고 놀아야죠, 버라이어티에 드라마 봐야죠, 에구, 할 게 너무 많아, 볼 게 너무 많아, 이런 핑계를 대면서 책장 구석으로 고전을 밀어 넣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나이를 먹죠. 늘 그랬듯 일에 치이고, 불콰한 얼굴로 비틀거리고, TV보며 웃다가도 여러 잡생각에 밤을 뒤척이죠. 안 되겠다 싶었죠. 지금 행복하지 못 하면 내일 행복할 수 없고, 지금 읽지 않으면 영영 읽지 않게 될 거라는 생각에 흠칫 놀라 <죄와 벌>을 잡았습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요. 왜, 무려 767쪽에 달하는 이 책을 들고 보면, 팔이 저렸으니까요. 웬만한 책 2권보다 더 두꺼운 이 책을 보면서 솔직하게, 과연 다 읽을 수 있을까, 도중에 지루해서 포기하지는 않을까, 이런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올랐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펼쳐지는 놀라운 이야기에 책 속으로 풍덩, 빨려 들어갑니다.

 

젊은이,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며 고리대금업자를 도끼로 죽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대학교 공부까지 한 지식인입니다. 그러나 가난, 사회부조리, 동생의 결혼이 겹치면서 그는 무척 혼란스러워하죠. 거기다 지식인으로서 오만까지 더해져 고리대금하는 노파를 도끼로 죽입니다. 자신이 판단했을 때, 노파는 세상에 필요 없는 ‘이’같은 존재였으니까요. 계획과 달리 노파의 백치 동생이 나타나자 동생까지도 죽이게 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을 죽이고 나서 주인공은 극심한 신경쇠약에 시달립니다. 수많은 논리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지만 소스라치는 불안감과 바닥 모르는 공포감에 까무러치기를 되풀이 하죠. 곁에 있는 사람들은 라스콜리니코프가 미쳤다며 수군거리고 걱정하지요. 거기에 여러 사건들이 벌어지고, 인물들의 욕망이 섞이면서 이야기의 끈적함이 커지죠.

 

이 소설의 반은 대화, 나머지 반은 인물들의 심리 묘사지요. 그 가운데 심리 묘사는 놀랄 정도로 빼어납니다. 불안, 두려움, 즐거움, 기쁨, 우쭐함, 자기비하 등을 자세하게 펼쳐놓아서 인물이 겪는 감정의 변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지요. 인물의 심장소리가 들릴 듯싶은 표현에 감탄을 하며 책에서 눈길을 못 떼게 됩니다.

 

이렇게 두드러진 심리묘사는 책과 독자 사이에 거리감을 좁혀주죠. 읽다보면, 마치 소설 속 인물이 되는 기분을 들어요.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처럼 그 사람 머릿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죠.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지, 저 인물은 저런 행동을 왜 하는지, 몇 장에 걸쳐 풀어놓는 설명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며 공감이 이뤄지죠.

 

정의를 위한 일이었다고 합리화하던 주인공, 사랑 앞에 무릎을 꿇다

 

사람들 머릿속을 따라 가다보면 다른 사람으로 이어진 긴밀한 끈들을 만나게 되죠. 생각은 타인과 자신의 관계에서 빚어지니까요.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친구, 애인, 경쟁자, 업무 관계 등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관계가 책 속에 있어요.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풍경은 비슷하기에 소설을 보면서 오늘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돌아보게 하네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성매매 노동자 ‘소냐’지요. 소냐는 가족을 먹여 살리고자 몸을 팝니다. 무신론자에다 허무주의자였던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를 만나면서 변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당하면서도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소냐에게 감화되는 거죠. 사람을 죽이고도 정의를 위한 일이었다고 합리화하던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 앞에 무릎을 꿇고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광장에 엎드려 땅에 입을 맞추게 됩니다. 왜냐하면 소냐가 땅에 엎드려 죄를 말한 뒤, 용서를 구하라고 했으니까요. 우울증이 심하고 불안한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를 만나지 않았으면 자살을 했겠죠. 그러나 ‘소냐의 숭고한 사랑에 마음이 흔들린 라스콜리니코프는 깊은 고뇌 끝에 자기 오만을 꺾습니다. 무릎을 꿇고 자기 잘못을 인정한 뒤, 경찰서로 가서 자수를 합니다.

 

탁월한 인물 표현과 사람 밑바닥을 건드리는 주제 의식, 더구나 인물마다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 설정과 짜임새 있는 사건 배치는 <죄와 벌>의 가치를 한껏 높였지요. 개연성 있는 줄거리, 필연성 있는 사건 전개, 가슴 속 울림을 전하는 진실성까지 이 소설은 대단히 완성도가 높으며,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잘 보여주죠.

 

사형 집행 몇 분 전에 살아난 도스토예프스키,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다

 

아시다시피 이 책을 쓴 사람은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그는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몇 분 전, 황제 특사를 받아 죽음에서 벗어나죠. 그렇게 4년 동안 시베리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죄와 벌>이 움틉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억압된 감옥에서 고칠 수 없는 간질병을 앓으며 삶과 죽음, 죄와 벌에 대해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한 끝에 이런 명작을 쓰게 되죠.

 

어리석은 자에게는 그 어리석음 자체가 징계고, 죄를 지은 자에게는 그 죄 자체가 벌이죠. 사람들은 여전히 어리석고 끝없이 죄를 짓지요. 그거 자체가 징계고 벌이죠. 그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남’을 생각해봅니다. 이른바 ‘구원’이죠. 구원은 어려운 게 아니라 사람됨을 지키며 사람답게 사는 걸 이르죠. <죄와 벌>을 보니 사람됨이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모습인지 고민하게 되네요.

 

고전이나 명작을 읽으면 좋겠지만, 읽을 시간이 없다고 사람들은 그럴 듯한 변명을 댑니다. 그리고 몇 시간씩 TV를 보고, 몇 시간씩 인터넷 쇼핑을 합니다. 그리곤 밝아오는 새벽을 두려워하죠. 똑같이 반복되는 일과, 유리벽이 있는 거 같은 사람들, 허겁지겁 시간에 쫓기고 허둥대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보면 어느새 까만 밤이 짙은 외로움과 함께 밀려들죠.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고 싶다면, 오늘보다 더 행복한 내일을 살고자 한다면, 지금 고전과 명작을 손에 들어야 합니다. 이런 거 한가롭게 읽고 있어도 될까 싶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읽어야 되는 이유지요. 자신이 얼마나 불안에 쫓기고 있는지, 그런 강박에 얼마나 길들여졌는지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요, 지금 당장 시급하게 좋은 책을 읽었으면 좋겠네요. 책이 삶을 구원하는 지도가 되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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