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벵이의 노래
황원교 지음 / 바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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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타인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요. 자기 몸은 타인에게로 가는 출발지이기보다 자신을 가두는 테두리이기 쉽습니다. 눈은 뜨고 있으나 세상의 아픔을 보지 못하고 귀는 열려 있으나 이웃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 정작 상황이 달라져 자신이 고통스러워할 때, 세상은 침묵합니다. 그렇기에 지금 세상은 비극이고,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세상에는 아시다시피 장애인 편견이란 굳건한 벽이 있습니다. ‘장애인 먼저,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구호는 요란하기만 하고, 행동은커녕 생각을 하지 못할 때가 많죠. 날로 각박해지는 사회에서 장애인 차별은 날로 심해집니다. 그들이 어떠한 심정인지, 무슨 불편이 있는지 사람들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바움출판사에서 나온 <굼벵이의 노래>를 읽으며, 새삼 장애인 문제를 생각해봅니다.

 

결혼 1주일을 앞둔 젊은 남자, 일을 하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그에게 갑자기 일어난 교통사고, 전신마비 영구장애, 느닷없이 찾아온 불행은 한 사람을 삼켜버립니다. 이 사람은 온갖 후유증과 합병증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습니다. 극심한 공황상태를 넘어서고자 입에다 마우스 스틱을 물고 컴퓨터 자판을 한자 한자씩 치며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 사람이 바로 황원교 시인입니다. 타인의 손길에 기댈 수밖에 없기에 스스로를 ‘숨 쉬는 시체’라고 일컫는 황시인, 그가 지난날을 가슴 속에서 꺼내어 어렵게 써내려갔고, 그 글들이 묶여 이렇게 산문집으로 나왔지요. 가족들의 피땀 어린 보살핌과 자신의 눈물겨운 의지로 전신마비 위기를 받아들이는 찡한 이야기가 책갈피 마다 담겨있네요.

 

갑자기 쓰러진 어머니, 아무것도 못한 채 울부짖은 전신마비 아들

 

글 가운데 무척 마음 아린 내용이 있지요. 어머니 얘기입니다. 큰 아들은 전신마비가 되었고, 막내아들마저 ‘재생불량성 빈혈’이란 희소난치병에 걸리게 되었을 때 어머니 심정은 어떨까요. 어머니는 온 몸으로 울면서 거의 뜬 눈으로 철야기도를 드립니다. 오로지 십자가와 성모상 앞에서 자비와 은총을 바라며.

 

어느 날 아침, 어머니는 막둥이를 챙기러 나가십니다. 그러다 저기 현관에서 “쿵”! 하는 짧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연이어 “으음, 으음……”신음소리만이 들려옵니다. 어머니가 정신을 갑자기 잃고 차가운 콘크리트 현관바닥에 쓰러지신 거죠. 전신마비 황시인은 “어머니, 어머니……”하고 계속해 소리쳐 불렀지만 어머니는 끝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 하십니다.

 

정말 가슴 저미는 순간입니다. 황시인은 “나는 그 순간부터 정말 짐승처럼 포효했고, 잠결에 놀라 깬 쌍둥이조카들도 소리쳐 울기 시작했다.”며 그 순간을 털어놓습니다. 어머니가 쓰러졌으나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울부짖을 수밖에 없던 황시인이 떠오르며 목이 멥니다. 조카들을 진정시키고 119에 신고한 뒤, 그는 자기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 채 피울음을 흘립니다.

 

그렇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다보니, 지은이를 더욱 가슴 치게 하는 유품이 있었지요. 그것은 밀려드는 잠을 쫓아버리기 위해 가족들 몰래 숨겨놓고 어머니가 드시던 각성제였습니다. 시인은 “이 못난 불구자식을 밤낮으로 수발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에 쏟아지는 졸음과 피로를 각성제로 달래며 버텨온 그 혹독한 7년의 세월은 어머니에게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리게 했을까.”며 울고 또 웁니다.

 

종이학 1,000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을 듣고, 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길 바라며 종이학을 접던 어머니, 1,000마리를 접던 날 소녀처럼 기뻐하시던 그 분의 모습을 지은이는 잊을 수 없지요. 그렇게 사랑이 담뿍 밴 종이학은 유품정리와 함께 불탑니다. 그렇게 불 속에서 종이학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하늘나라로 날아갑니다.

 

지은이는 밥 한 끼를 먹을 때마다 자기 마음대로 반찬을 골라먹는 재미는커녕 어미니를 대신하여 늙고 병든 아버지의 떨리는 손을 통해 밥숟갈을 날름날름 받아먹는다며 자신의 ‘한심한 꼴’을 탓합니다. 게다가 배설할 때도 도움을 받아야 하죠. 계속 한쪽으로만 있으면 욕창이 생겨 몸을 자꾸 바꿔줘야 하는 지은이. 깊은 밤에 아버지를 부를 때 느끼는 참담함을 어느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에 그는 죽고 싶었지요. 그러나 손가락 하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기에 죽지 못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공황증세를 보이고 극심한 혼란에 빠지다가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다잡게 된 지은이, 그는 ‘굼벵이의 노래’를 합니다. 지금 비록 한 마리의 굼벵이처럼 어둠 속에서 창밖의 햇빛을 그리워할 지라도, 굼벵이처럼 온 몸으로 기어서 가고, 그것도 안 되면 굴러서라도 찬란한 햇빛 속으로 당당하게 가겠다며.



장애인의 날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눈물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눈물을 흘립니다. 홀트 요양원에서 장애인 합창단의 공연 도중 감동에 젖었기 때문이죠. 이대통령은 “위로하러 왔는데 오히려 위로를 받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됐다”, “성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다”고 말을 합니다.

 

이 대통령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되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한 사람들’이 ‘진짜 성한 사람들’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성한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지금 보니, ‘마음이 아픈 장애인’들이 성한 사람들이라고 우기는 모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함께 하지 않는 사람들을 성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성한 사람’ 타령 하기 앞서 이미 ‘성한 정부’가 아닙니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는 장애인의 날 4월 20일에 올해 복지 관련 추가경정예산을 대폭 잘라버립니다. 저소득층 지원예산을 1200억 원 줄였고, 기초생활수급자의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경상보조 예산도 1093억 원을 줄여서 통과시켰습니다. 한반대 대운하의 짝퉁으로 의심되는 “경기도 강변 살자” 기획에 22조 8800억 원을 쏟아 붓는 거와는 딴판입니다.

 

경제가 어렵습니다. 언제나 고통은 가장 빨리 그리고 제일 오래 ‘사회 약자들’에게 넘겨집니다. 복지부에 따르면 200여 만 명 되는 전체 장애인 가운데 59만 여 명이 ‘절대 빈곤’ 상태라고 합니다. 장애수당은 중증장애인이라야 월 13만원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장애인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느냐, 이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요.

 

지금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눈물 흘려주는 게 아닙니다. 장애인의 고통에 대한 동감이고, 장애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정책지원입니다. 가락시장 아주머니에게 목도리를 둘러준다고 서민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게 아니듯이 눈물을 흘려준다고 장애인들의 흘리고 있는 눈물이 줄어드는 건 아닙니다.

 

이 대통령은 “올해부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을 2%에서 3%로 늘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말 한마디에 출근복을 바꿔 입는 장관과 달리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지엄한 대통령 얘기에 못 따라가고 있죠. 2008년 공공부문 장애인 의무 고용률은 1.76%에 그쳤습니다. 대통령실 1.7%, 외교통상부는 0.65%밖에 안 되었습니다.

 

상대 아픔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세태에서 약자를 위로하려는 마음씀씀이는 훌륭한 행동입니다. 더구나 눈물까지. 그러나 진심이 담겨 있지 않으면, 정책지원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저 ‘쇼맨십’으로 비칠 뿐입니다. 20일에 열린 ‘장애인차별 철폐투쟁 결의대회’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이 대통령의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 비판한 이유를 ‘성한 사람들’은 곱씹어야 합니다.

 

타인을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으로 여겨지지 않고, 경쟁자 하나가 떨어져 나갔으니 좋아하라는 사회에서 ‘살아남기’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성한 사람들’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성한 사람들의 설레발에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눈물이 해마다 이때쯤이면, 으레 치러지는 의례행사가 아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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