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설에 빠지다 - 금오신화에서 호질까지 맛있게 읽기
조혜란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포스트 모던이니 신자유주의니 하면서 쏟아지는 책들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숨이 턱 막혀요. 한가득 쌓여있는 책들 앞에서, 저걸 언제 다 읽나, 라는 초조함과 함께 책을 읽어야 된다는 압박감이 밀려들죠.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보면, 아무래도 시의성 있는 책들에게 먼저 손이 가더군요. 고전이나 명작들은, 꽝, 다음 기회에~ 라는 말과 함께 잠시 눈 밖으로 밀쳐두게 되죠.

 

옛 소설? 요즘 같은 때, 구닥다리 뒤적거릴 시간도 있나요? 10억 만들기에 미쳐라~ 토익에 미쳐라~ 다이어트에 미쳐라~ 눈에 보이는 숫자들에만 미치라고 윽박지르는 사회에서 ‘호질’을 보며 양반의 위선이 어떻다는 둥 열녀가 어떻다는 둥 얘기하는 사람은, 쓰읍, 이상하겠죠. 왜 ‘쓸 데 없는 책’을 읽을까, 그 시간에 토익 1점이라도 올려야지, 쓰읍.

 

토익에 미친 사람과 옛 소설을 보는 사람 가운데 누가 이상한 사람인지 따지는 건 저마다 몫이지만, 사람은 지난날을 뒤돌아봐야 앞날을 그리게 되죠. 할머니 곁에서 옛날이야기를 두런두런 들으며 어린이들 꿈이 영글어가듯이 어른들도 뒤를 살피면서 살아야겠죠. <옛 소설에 빠지다>[2009. 마음산책]는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입니다. 책장을 여는 순간, 피융~~ 500년 전, 300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 책장을 여는 순간 피융~~ 조선시대로

 

이 책은 김시습의 ‘금오신화’부터 허균의 ‘남궁선생전’까지 옛 소설 열 세편을 실었어요. 열 세편은 네 가지 주제로 나뉘었는데, 먼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 흥분지수를 높여주는 남녀 사랑이야기, 조선 시대에 민초들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끔찍한 전쟁 이야기, 그리고 고전 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남성들의 판타지 세계,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허균과 박지원의 작품을 실었지요.

 

요약본이라지만 친절하게 현대 말로 바꾸어서 충실하게 담으려고 한 노력이 돋보이네요.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다채로운 이야기들에, 옛날 사람들도 지금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 괜스레 감동이 생깁니다. 임금의 명도 거절하면서 지극히 아내를 사랑하는 ‘윤지경전’, 병자호란 때 죽어간 여자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목소리를 내는 ‘강도몽유록’ 말 그대로 금방울이 살아가는 이야기 ‘금방울전’까지 알지 못했던 옛 소설 재미에 푹 빠지게 되네요.

 

옛 소설은 끽해야 교과서에서 잠깐 만나는 정도지요. 청산에 살어리랏다, 삑, 청산은 이상향, 학창시절, 옛 이야기를 짧게 읽으며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청산을 불태우고 싶었을까요. 암기위주로 재미없게 박제된 옛 이야기를 성적 때문에 억지로 봅니다. 고전에 대한 청소년들 호기심은 입시 때문에 학창시절만 방부처리 되어 버틸 뿐, 이미 유통기한이 지났고, 대학가는 순간, 폐기처분 되는 실정이죠.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체온은 36.5℃, 옛 소설에 빠져 오늘을 돌아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다보니 옛 소설을 제대로 만나면, 정신이 번쩍 들죠. 이렇게 귀한 이야기가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는데, 몰랐다니. 뒤늦게 탄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책을 통해 만나는 옛날이야기는 지난 시절 사람들의 생활을 고스란히 보여주죠. 물론, 이 책도 요약본을 모아 놓다보니, 이야기가 통째로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옛 소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겠네요.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옛 소설 입문서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디지털이다 나노다 뭐다 하면서 과학이 발전하고 기술들이 달라져도 사람 체온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36.5℃이고, 사람 사는 냄새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죠. 사는 동네가 달라져도 삶의 질을 좌우하는 건 사람 관계니까요. 옛 소설을 읽으면서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으며 어떤 고민을 갖고 한 시대를 일구어갔는지 엿볼 수 있네요. 그걸 바탕으로 지금 우리는 그들보다 더 잘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네요.

 

고전을 읽고 명작을 봐야겠죠. 옛 소설에 빠지는 일은 신나는 여행이니까요. 그 여행은 다이어트로 1kg빼는 것보다 삶을 더 행복하게 살찌우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하죠. ‘폭풍의 언덕’, ‘오만과 편견’ 같은 서구 고전도 좋겠지만 그동안 너무 소홀하였던 한국 고전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영화를 본 뒤 친구들과 그 내용을 곱씹으며 감상을 나누는 것처럼, 고전 소설에 대해서도 수다를 실컷 떨 수 있으면 좋겠네요. 옛 소설에 빠져보시렵니까? 빠져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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