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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생각보다 맛있다 - 재미있고 유쾌하며 도발적인 그녀들의 안티에이징
김혜경 지음 / 글담출판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눈주름 자글자글한 거봐, 나이 먹는 건 정말 끔찍해, 여성들은 거울을 자꾸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쉽니다. 괜찮아, 얼마나 예쁜데, 이런 위로는 씨알도 안 먹히고, 여성들은 깊은 내면세계로 들어가 ‘거울과 대화’를 되풀이 합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소녀시대요, 흑, 거울아, 나 아직 젊지? 아니요. 흑흑, 거울아, 내가 에스테틱 얼마나 많이 받는데,
늙음은 죽음의 낌새이기에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은 늙어가는 몸을 보면서 불안을 느끼죠. 특히, 외모에 가치를 많이 두고, ‘젊은 여성의 몸’만을 아름다움으로 삼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느끼는 늙음에 대한 공포는 남성보다 훨씬 심하죠. 늙음이 곧 자기 존재가치 상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여성들이 벌이는 ‘외모 가꾸기’는 생존권 투쟁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젊음=예쁨=좋음 > 늙음=안 예쁨=나쁨, 딱 부러지게 나뉜 경계를 넘나드는 여성들이 나타나고 있죠. 나이 들어서도 아름다운, 나이 들었기에 더 멋진 여성들은 언제나 감탄을 자아내죠. <나이는 생각보다 맛있다>[2009. 글담출판사]는 어떻게든 노화방지 하려는 여성들을 다독이며, 나이 듦에 대해 담박하게 술술 풀어놓는 책이네요.
글도 그림도, 나아가 인생도 똑같다. 꾸미고 덧칠할수록 추해진다
광고 만드는 일만 25년 째 하고 있는 광고회사 김혜경 상무와 여성 8인이 나이 듦을 털어놓는 이 책은, ‘나이 듦에 대한 어떤 강박증도 없으며, 늙어간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기에 꾸미지 않아도 그것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는 여성부터, ‘글도 그림도, 더 나아가 인생도 똑같다. 꾸미고 덧칠할수록 추해진다’는 여성까지 다채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네요.
아무래도 ‘광고장이’가 책을 만들다보니 내용 꾸밈도 색다르네요. 중요 문구를 커다랗게 강조하면서 광고에 나올 법한 예쁜 사진들을 적절하게 버무려서 담았네요. 통통 감각이 튀는 지면에 녹아있는 이야기도 산뜻하네요. 늙음을 고뇌하거나 진지하게 사색하기보다는 소소한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나이 듦을 보듬고 가네요.
이렇게 늙음을 끌어안을 수 있는 건 그들이 뜨겁기 때문이죠.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열정이 배어있죠. 책갈피를 넘길 때마다 그 열정에 감염되네요. 이들이 활짝 웃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느껴지며 그 눈물을 연료로 삼는 마음가짐에 잔잔한 울림이 생겨납니다. 가볍게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에 광고에 홀리듯 책으로 빨려 들어가네요.
애초부터 거창한 목적 같은 거 없기에,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책을! 같은 반응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혀요. 스스로 “이 책을 왜 쓰는 거지?”중얼거리면서 마음 편히 썼다고 하네요. 홈런을 노리며 잔뜩 긴장 하는 것보다 어깨에 힘을 쭉 빼고 방망이를 휘둘러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오듯 자연스럽게 자기 생각을 드러냈기에 오히려 볼거리, 생각거리가 많네요.
25년 광고장이가 자기 멋대로 쓴, 말랑말랑 사뿐사뿐 소소한 이야기
여기서 잠깐, 처음부터 대단한 책을 낼 생각이 없던 지은이였던 만큼 책이 나온 과정이 되게 재미있어서 소개해요.
따르릉! “책을 한번 써주시면 어떨까요? 성공한 여자의 나이 드는 법, 뭐 그런 주제로……”
“저는 성공한 여자가 아닙니다.” 뚝.
따르릉! “저, 그래도 상무님이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여자들에게 힘이 될 수 있고……”
“나는 이렇게 살았다. 그러니 너도 이렇게 살아라, 뭐 이런 책을 제일 싫어합니다.”뚝.
따르릉! “그럼 내 멋대로 써도 되죠?”
“그러세요.”
이렇게 해서 ‘자기 멋대로’ 쓴 책이 나온 거죠. 그럼에도 25년 광고장이가 허투루 썼을 리 없겠죠. 편하게 썼다지만 자기 멋이 걸려있는 만큼 문장에서부터 글씨색깔, 화려한 종이, 거기에 사진까지 신경 쓴 티가 팍팍 나네요. 25초 안팎에 모든 걸 거는 광고장이답게 눈에 띄는 여러 문장들과 눈길을 머물게 하는 지면 구성을 보여주네요.
나이가 든다는 건 인생이 주는 작은 시련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만큼 여유가 생기고 막히거나 힘들면 돌아갈 줄 아는 지혜가 생긴다는 지은이 말을 되뇌어 봅니다. 나이 들수록 쉽게 무너지지 않고 금세 지치지 않기 위해 마음의 근육을 튼튼히 키워야겠죠. 말랑말랑하고 사뿐사뿐 경쾌하게 걸어가는 여성들 수다에 봄기운이 실려 오네요. 세상의 진리들은 작고 평범한 이야기에 있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