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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 영화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10년 전에 왔었지요. 영화산업으로 돈과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수많은 한국영화들이 쏟아져 나왔지요. 그와 함께 영화평론가들이 나타났지요. 영화를 이리저리 짚어보고 설명해주는 그들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지요. 오, 이렇게도 영화를 보는 구나, 새로운데~
그.러.나. 영화평론과 영화흥행이 어긋나기 시작하였지요. 평론가들이 마구 씹어댄 영화에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고, 강추한 영화에 대중은 지루하다며 꿈나라로 가는 일이 빚어졌죠. 대중취향에 맞춰서는 안 되겠지만 민심과 너무 동떨어진 영화비평에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버린 거고, 계몽하듯 읊어대는 영화분석에 넌더리가 난 거죠.
영화비평가와 관객 사이 벌어진 큰 틈과 뜨거웠던 디워논란
이 년 전에, 앗, 뜨거, 뜨거웠던 ‘디 워 논란’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하지요. 우선, 더 이상 사람들이 지식인들의 권위에 굽실거리지 않는 건 한 걸음 나아간 현상이죠. 그러나 지식인들이 펼치던 ‘논리의 권위’까지 사라지게 되었지요. 이것은 양날의 검이죠. 반지성이거나 다중지성이거나. 다행히(?) ‘조폭마누라’같은 영화들이 더 이상 흥행하지 않는 걸 보지 떼지성으로 가는 흐름입니다.
그러면서 새롭게 나타난 물결이 나타났죠. 사람들은 전문가들이 먼저 풀어놓은 영화평을 참고만 할 뿐 거기에 매달리지 않죠. 그렇지만 사람들 마음을 크게 뒤흔들며 지식인이 있던 권좌에 올라간 녀석이 있죠. 바로, 입소문이죠. 추격자가 그랬고 원스가 그랬으며 워낭소리가 덕을 봤죠.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걸러져서 퍼지는 입소문은 다중시대에 새롭게 권위를 얻지요.
이렇게 영화판이 달라졌지요. 그에 맞게 영화평론도 달라졌지요. 진중권씨가 쓴 <이매진>[씨네21북스]은 ‘영화담론에 새로운 시각을 도입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요. 영화판이 달라진 만큼 영화제작이나 영화 자체도 너무 달라졌지요. 날카롭고 예민한 ‘지식인 진중권’은 변화한 영화를 파고들어서 읽어내지요. 그리고 자기 입담으로 재미있게 풀어놓아요. 지금까지 지식인들이 해오던 영화비평과는 많이 다르네요.
영화비평이 아니라 새로운 담론의 놀이다!
본인도 ‘이것은 영화비평이 아니다. 새로운 담론의 놀이’라고 명토박아두죠.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우연히 주어진 소재들을 가지고 담론의 놀이 펼치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래서 영화를 자기 식대로 헤쳐 놓고 다시 이야기를 기워내죠. 철학과 미학을 바탕으로 영화를 뜯어보는 글이 무척 신선하네요. ‘쓸 데 없이 어렵다’거나 ‘이게 무슨 영화평이냐’는 볼멘소리도 들려오지만, 여러 이론들을 끌어와서 영화에 엮어내는 솜씨가 대단해요.
대중에게 친숙한 <슈렉>, <스파이더 맨>, <매트릭스>, <터미네이터>같은 영화를 익숙지 않는 문법으로 말을 하기에 솔깃하죠. 이렇게도 영화를 분석할 수도 있구나, 이런 소재를 이렇게 따져볼 수 있구나, 느끼게 되죠. 또한, <이레이저 헤드>, <파렌하이트>, <필로우 북>처럼 잘 모르는 영화 얘기에도, 이렇게도 영화를 만나게 되는 구나, 이런 독특한 영화도 있구나, 알게 되죠,
디지털 기술은 이미 영화의 내용과 형식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있지요. 스크린에 비치는 이미지, 줄거리 구성, 제재와 소재, 제작 방식과 수용 모형, 나아가 해석과 비평의 준거까지 달라지고 있죠. 그 낌새들을 지은이가 살펴보네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거나 영화에 들여오는 과학기술에 흥미 있는 사람들이라면, 관심 가질 책이네요. 영화와 과학기술을 인문학으로 담아낸 글 읽는 맛이 쏠쏠하네요.
디빠들은 여전히 디워를 대단한 영화라고 여기고 있을까
다시 디워 얘기를 꺼내보죠. 디 워 논란 때, 진중권씨는 이른바 ‘디빠’과 논쟁을 벌였지요. 수많은 악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식인은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가 아니라 들어야 하는 얘기를 해야 한다’며 자기 목소리를 냈지요. 그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도 ‘디까’에 참여하면서 한국은 디워를 경계로 ‘디빠’와 ‘디까’로 갈렸지요.
여전히 ‘디빠’들은 디워를 대단한 영화라고 여기고 있을까요. 진중권씨는 “이번 일로 한국 관객의 수준도 폭로됐다. 서사에 개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다 배웠던 얘기. 한국의 대학원생이 방송에 나와 <300>과 <디 워>의 차이가 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 하겠다’고 말할 때, 미국의 초등학생은 인터넷에 UCC를 올려 한국의 어른들에게 두 영화의 서사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고 디빠들을 비판하였죠.
한번 칼을 들면 다시 칼집에 넣기 민망했던지 디빠들은 미국의 초등학생에게 찾아가 인종 차별하는 폭언을 퍼부었죠. 그러자 소년은 “나는 한국을 비판한 것도 아니고, 한국 사람을 비판한 것도 아니고, 한국 영화 전체를 비판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이 영화를 비판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흥분하는지 모르겠다”고 대꾸를 하였지요.
영화비평을 한 줌 피도 없이 기계처럼 할 수는 없겠지만, 디워를 치켜세웠던 사람들에게는 지나친 애국심과 국가주의가 배어있어서 불편하였죠. 모든지 한 가지에 너무 빠져들면 멀리, 넓게 못 보게 되죠. 이 책을 읽으며,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신이 아는 지식으로 남을 누르거나 자신만 높이는 수단이 되지 않는다면, 널리 깊게 알아야 다른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도 휩쓸리지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