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 산다는 것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음 / 호미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데모는 절대 안 하고, 데모 하는 대학생들 반성하게 해야지.’라고 다짐한 저는 불과 3개월 뒤 열혈 운동권이 되었습니다.”라고 정지환 전 월간지<말>기자가 한 말이 떠오르네요.

 

반공정신이 투철하고 데모를 안 하겠다는 대학새내기의 마음은 왜 뒤흔들렸을까요? 바로 ‘진실’때문이었지요. 언론을 통해 광주는 ‘친북좌파’들이 선동한 사태라고 알고 있었던 80년대 학생들은 외신에 보도된 ‘광주진실’들을 대학에서 접하면서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요. 자신이 믿었던 세계가 거짓일 때, 거짓된 세상을 바꾸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기에 386은 5,6공 때 화염병을 들 수밖에 없었다고 정지환 기자는 전하네요.

권언유착, 끝난 줄 알았더니…

 

새로운 매체들이 등장하고 몇 지배언론이 갖고 있던 힘도 줄어들면서 권언유착 세상은 막이 내렸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 눈과 귀를 가리며 권력에 빌붙었던 언론계도 크게 달라지는 게 보였으니까요. 이제 여러 언론이 ‘자기 몫’대로 평가받으면서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정권의 파수꾼이 되는가 싶었지요.

 

그런데 2008년에 힘을 얻은 위정자들은 파수꾼보다는 나팔수를 바라네요. ‘낙하산 특공대’를 내려 보내 골치 아픈 얘기 꺼내는 시사프로그램들을 없애려 하네요.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하는 하는 PD와 기자들을 자르려 하네요.

 

위정자들이야 ‘그때 그 사람들’의 언론 길들이기를 배웠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동아특위’때나 보도지침이 있던 시절이 아니지요. 언론선배들의 피눈물이 담긴 투쟁을 보고 자란 언론인들은 권력에 당당히 맞서네요.

 

언론의 독립 투쟁하는 그들에게 주고 싶은 책

 

언론장악하려는 권력의 시도를 보며 <기자로 산다는 것>[2007. 호미]을 다시 펼쳐보게 되네요. 1989년 창간하여 정통 시사주간지로 자리 잡은 시사저널은 2006년에 파업을 하게 되요. 자본권력에 굴복하여 ‘삼성’기사를 편집장 몰래 시사저널 사장이 삭제했기 때문이죠. 이에 당연히 기자들은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경영진은 기자들은 해직시키고 징계를 내렸지요.

 

어쩌면 이리도 비슷할까요. 특정세력에 속하는 인사가 사장으로 내려오자 당연히 기자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고 경영진은 기자들을 해직시키고 징계를 내리는 요즘, 시사저널파업에 대해 쓴 이 책을 그들에게 주고 싶네요.

 

이 책은 거리로 쫓겨나서 투쟁을 하던 시사저널 기자들의 목소리를 모았어요. 그들이 생각하는 기자관, 언론과 권력의 관계, 보도할 때 뒷이야기가 풍성하게 담긴 이 책은 여러 모로 배울 게 많지요. 무엇보다 내로라하는 글쟁이들이 저마다 맛깔난 글들로 하고 싶은 얘기들을 털어놓아 무척 재미있네요. 고종석, 고재열, 김훈, 서명숙, 장희상 등등 시사저널에 몸을 담았던 24명의 글은 하나하나 ‘뜨거운 화두’네요.

 

시사저널에서 배우는 교훈

 

‘사실과 진실의 등불을 밝히고 이해와 화합의 광장을 넓힌다.’는 시사저널 사시대로 글을 쓰지 못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시사저널 경영진이었지요. 시사저널파업사태를 보면 언론사의 사장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네요.

 

특정세력을 대변하는 인사가 수장으로 있는 언론사에서 제 목소리 내기란 어려운 일이지요. 사장은 자기 집 식구를 비판할 바에는 차라리 진실에 눈감고 자기가 욕을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회사 안에서부터 휘둘린 언론이 세상을 향해 정직하게 말하기란 천부당만부당하지요.



시사저널 기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세상이 알고 있지요. 그들은 시사저널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새롭게 도약한 시사IN이라는 주간지를 만들어 진실이 이긴다는 걸 증명하였지요.

 

‘기자가 고생해야 독자들이 행복하다.’는 언론계의 불문율대로 YTN, KBS, MBC의 고생은 시민들에게 복이에요. 다만, 시민들이 뽑은 권력에 의해서 언론이 고생하고 있으므로 외면해서는 안 되지요. 시민들이 언론을 외면한다면 훗날 시민들이 진실을 알리고자 할 때 언론이 모른 척 하게 되니까요.

 

언론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는 이유

 

“고개의 내리막길 이쪽에는 바리케이트가 쳐져있고 그 동쪽 너머에 무정부 상태의 광주가 있다.”

 

당시 사회부장이던 <조선일보>김대중 주필은 80년 광주에 내려가 이런 기사를 썼지요. 그는 기자로서 ‘동쪽 너머 현장’에 있지 않고 ‘이쪽에서’ 계엄군이 나눠주는 보도자료를 보고 광주에 대한 기사를 썼지요. 언론에서 진실을 쓰지 않았기에 광주를 제외한 한국 사람들은 ‘빨갱이들의 난동’으로 생각하였죠. 광주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했을까요.

 

무엇이 진실인지 언론이 알리지 않으면 사람들의 시선은 흐려지기 쉽죠. 그래서 언론의 독립과 보도의 진실성이 중요하지요. 언론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는 이유는 훗날 누군가 부당한 대우를 당하였을 때 언론이 진실을 보도해줘야 하기 때문이죠. 지금 언론의 독립을 지키지 못하면 80년 광주처럼 진실이 유린당하는 일이 또 발생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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