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창 스님의 유라시아 대륙 자전거 횡단기
행창 지음 / 민음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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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생기면 모두들 떠날 계획으로 골몰하는 듯하다. 해외여행으로 돈이 빠져나간다고 위정자들은 아우성이다. 들뢰즈의 노마드(유목민)시대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난다.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떠났다 돌아온 사람들 얘기에 귀 기울인다. 수많은 여행기들 중에 눈에 띈 책이 있다. ‘행창스님의 유라시아 대륙 자전거 횡단기’[민음사, 2006]는 스님이 자전거로 횡단한 이야기를 담았기에 관심이 더 갔다.

행창스님은 이미 이스탄불에서 카이로까지 자전거로 여행한 경험이 있다. 중동횡단을 석달동안 하면서 인감감각 한계의 극을 충분히 경험하고 두 번 다시는 자전거로 여행을 안하리라고 다짐한 그지만 다시 유라시아 횡단에 나선다. 그것도 1년동안.
‘그토록 힘든 여정에서 겨우 목숨만을 부지하고 돌아온 지 꼭 반년. 단순히 망각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다시 길을 나서게 했다.’ -본문에서-
어떤 바람이 스님 가슴에 스며들어 그의 발걸음을 띄웠는지 무척 궁금하게 했다.

스님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서울 남대문까지 자전거로 1년 여행(수행)을 한다. 자전거를 타 본 사람은 안다. 피할 수 없는 자신의 무게와 정직한 이동거리를. 오로지 자기가 페달 밟은 만큼 움직이는 정직한 이동수단인 자전거를 타고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는 것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허벅지가 터질 거 같다. 하지만 스님은 묵묵히 침낭을 뒤에 싣고 자전거와 떠난다.

책을 읽는 내내 스님의 자전거 뒷좌석에 앉아서 여행가는 기분이었다. 차를 타서는 느낄 수 없는, 자전거로 만나는 풍경들의 속내와 사람들의 고운 마음결은 고독한 자전거 여행을 격려한다. 실크로드를 지나가며 사막과 산맥들을 넘어가며 겪었을 괴로움이 불 보듯 뻔한데 이 여행기에는 자세히 나타나지 않는다. 늘 고마운 귀한 인연과 새로운 세상을 만난 감격을  소개하는데도 지면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하나, 아쉬운 점은 중국에서 인천으로 배를 타고 들어온 점이다. 자전거로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수 있는 상황에서 한국인이 통과하지 못하는 한반도는 무척 안타깝다. 그가 자전거를 타고 한반도 종단하는 날을 그려본다. 그리고 사진은 여행기에서 필수지만 워낙 좋은 화질 사진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이 책에 실린 사진들에 초라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흑백에 가까운 사진들은 담백하게 책 꼭지마다 자리 잡는다. 글쓴이가 스님인 까닭에 오히려 소박한 사진들이 더 여운이 남으며 절절하게 그의 글들과 어울린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기에.

예정된 계획없는 여행에서, 나 자신이 자유로워지는 길은 오직 하나. 달리는 자전거 앞 2m 이상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필요치 않은 번뇌를 괜스레 만들 필요가 없다. 집착이 없는 한 번뇌도 없는 법이기에……. -본문에서-

그는 자전거 앞 2m이상은 집착하지 않고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또 횡단한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떠나게 하는가. 무엇이 떠난 그를 부럽게 하는가. 많은 여행기를 만나면서 이 물음에 답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삼장법사처럼 유라시아를 가로지른 그. 삼장법사와 같이 길을 나선 손오공처럼 그의 곁을 지킬 수는 없지만 멀리서나마 스님과 자전거의 안녕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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