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 - 이지누의 우리땅 밟기 - 첫번째
이지누 지음 / 샘터사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책을 알리고 팔려고 얼마나 말들이 넘치는지 서점에 가서 책 표지를 둘러보면 안다. 당연하게 써있는 추천사들과 휘랑 찬란한 소개는 그 책에 끌리게 하지만 책 내용이 기대에 못 미치면 왠지 속은 느낌이 든다. 책 겉보다는 안을 읽으려고 애를 써도 너무 많은 책 숲에서 바라는 책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매체에서 소개되는 좋은 책에 관심이 가게 되고 책 내용에 앞서 꾸민 겉에 눈이 갈 수 밖에 없다. 사람의 첫인상이 그 사람 가늠에 도움이 되듯이.

이토록 정갈한 사진과 깊은 사유로 담금질한 기행산문집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홀연히 그의 걸음을 따라가 보라. 어느새 풍경은 간 데 없고 당신의 내면을 걷고 있는 자신을 만날 것이다. -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샘터, 2004] 뒷표지-

책 뒷면에 적혀있는 이러한 소개를 먼저 봤다면 과장된 미사여구라 여기고 괜한 반감에 손이 안 갔을 수도 있겠다. 그냥 손이 닿아 보다가 다 읽게 되고 뒷표지에 글귀를 봤을 때,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정말, 체험을 거쳐 나온 깊은 사유와 절절한 표현, 한글자마다 정성을 다한 글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아래 구절을 천천히, 찬찬히 읽어보길.

그대, 스산한 풍경의 염전을 거닐다가 눈부시도록 하얀 소금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가. 유리창마저 깨져 을씨년스럽기만 한 염전사무실에서 검게 그을린 늙은 염부와 깡소주를 마시며 굵은 소금을 안주 삼은 적은 있는가. 썩어도 좋을 것과 썩히지 말아야 할 것들의 가치에 대하여 그와 잔을 부딪혀보았는가 - 곰소 염전에서 -

이 책은 이지누씨가 찍고 쓴 변산반도 기행산문집이다. 지은이가 변산반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만난 풍경에 감성을 담아 빼어난 글 솜씨로 엮었다. 이색장소와 낯선 경치에 짧은 감상과 잠깐의 도취를 적은 숱한 여행 책들에 지쳤다면 지은이가 오랜 시간 들르고 머문 익숙한 장소에 묵힌 감정이 발효된 이 책 만나보길 권한다. 콩이 하루아침에 된장 되는 게 아니듯, 그의 필치와 생각의 깊이는 그가 치열하게 외로웠고 괴롭게 탐구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글귀를 읽어보자.

모항, 팥죽바위 앞에는 바다로 떠나지 못하는 배가 있다. 날이 갈수록 이끼가 돋아나고 사람들이 두어 병 소주와 함께 버리고 간 모진 그리움의 무게로 침몰한 배, 나는 그 배를 보며 주머니 속 애틋한 그리움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살면서 그리움 서넛 지니고 사는 것 또한 아름다운 일이니까. - 모항에서 -

이지누씨를 소개하면 우리 삶의 풍경과 원형을 찾으려고 우리 땅을 골골샅샅, 잼처 밟아 나가며, 우리 땅 서정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뭇사람들의 지혜를 만나려고 스무 해 동안 멈추지 않은 땀방울이 눅진하게 베인 작가다. 그리고 ‘우리 땅 밟기’라는 단체를 이끌어 오고 있으며 우리 주변의 모습을 섬세한 눈으로 탐구해온 다큐멘터리안이다.
그가 찍고 쓴 사진과 글 모음,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을 자주 꺼내보련다. 이토록 정갈한 사진과 깊은 사유로 담금질한 글은 드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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