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마잡담
마광수 지음 / 해냄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마광수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시대를 앞서 나간 사람이라는 평과 글로 본인의 변태성욕을 푸는 저급한 사람, 그 간격은 화해를 모른 채 평행성을 긋는다. 그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기 위해 ‘즐거운 사라’로 필화사건을 겪고 논문대필사건으로 또 곤욕을 치른 마광수 소설을 읽었다.
‘광마잡담’[2005, 해냄]은 속된 표현을 하면서 적나라한 성적 환상과 성욕망을 적었기에 처음에는 상당히 놀랐고 당황했다. 보기로 그나마 점잖은 걸 골라봤다.

‘모든 이빨 한 가운데에 박혀있는 작은 다이아몬드가 나의 성감대를 다시금 긴장시켰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껴안고 엎드려져 그녀의 온 몸뚱아리에 미칠 듯한 키스를 퍼부었다. 염희 역시 완전한 기운을 되찾아가지고 내 온몸을 미칠 듯 핥고 빨아주었다. 그녀의 혓바닥 한가운데 박아넣은 뾰족한 보석이 주는 날카로운 마찰감 때문에 나는 더욱 넋이 나가는듯하다.’
-본문에서-

성욕은 저마다 다른 꼴로 자리잡고 있기에 소설주인공으로 본인이 직접 등장하거나 분신같은 남자 주인공들이 나와 10대 후반의 엄청 아름답고 긴 손톱을 지닌 야한 여자와 벌이는 섹스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별 볼일 없고 불편하기만 하다. 하지만 책은 크게 두가지를 고민하게 하며 다 읽게 한다.

먼저, 성 이중성에 대한 반란과 성욕에 대한 고찰이다. 밤거리를 걸어본 사람은 안다. 낮과 달라진 질퍽거리는 풍경, 배설에 급급한 얼굴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아침에 돌변하여 다시 교양인 연기를 하는 사람은 안다. 성욕이란 게 얼마나 사회에서 이중 잣대로 작동하는지.
헐거벗은 여성들 사진이 널린 거리에서 순결과 금욕을 가르치는 사회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이중성을 마광수는 깨뜨린다. 본인의 욕망을 솔직하게 얘기하면서 감추고 숨긴 성을 공론의 장으로 끌고 온다. 본인 성환상을 까발리기 때문에 그 솔직함에 독자도 스스로 자기 성욕망과 환상을 돌이켜 보게 된다. 그리고 마광수책이 갖는 노골적인 표현에 불편을 느끼게 하는 본인의 윤리의식을 다시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인터넷에 쏟아지는 야동과 포르노 앞에서 어디까지 성표현을 허용해야 하고 성과 개인, 사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두 번째로, 책에 마광수가 심어놓은 문학적 의도들이다. 마광수 수필이나 다른 글들을 읽어보면 그가 상당히 글을 잘 쓰고 생각있는 작가란 걸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천박한 글을 썼다면 뭔가 일부러 하면서 의도한 게 있지 않나 따져보면, 그는 다들 어렵고 무겁게 글을 써야 할 거 같은 ‘문학 엄숙주의에’에 반기를 든 셈이다. 표현이야 저속할 지 몰라도 속도감있는 이야기전개, 환상을 이용하는 전기傳奇소설 차용, 본인이 직접 등장하여 현실감을 주는 사소설 기법은 단순히 음란서적으로 몰아붙일 수 없게 한다. 똑똑한 작가가 왜 이런 글을 쓰는지 현상만 보지 말고 원인을 살펴보게 한다.

9편의 단편을 모은 책인데 떡하니 마광수 장편소설이란 제목을 표지에 단 게 조금 흠이지만 읽으면서 자기 욕망을 헤아리는 기회로 삼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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