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영어공용화가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거센 반발에 흐지부지 되었으나 경기도에 생긴 영어마을, 대학 내 영어로 수업하기, 영어 발음을 위한 혀수술 같은 소식들은 한국에서 영어가 갖고 있는 위치와 힘을 새삼 느끼게 한다. 영어가 계급이 된 사회라 영어교육을 위해 막대한 사교육비지출을 감내하고 영어교육을 목적으로 출국하는 사람이 연간 12 만 명을 넘는다.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영어공용화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영어공용화는 결국에 영어의 모국어화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어가 사라진다면’[2003, 한겨레신문사]는 영어공용화 뒤 미래를 가상하여 쓴 책이다. 책은 지은이 5명이 영어공용화 시행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변화과정을 나누어 썼다. 미래의 변화과정을 크게 다섯 시기로 나누었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대상으로 논쟁이 되는 주제를 다루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그리고 허구를 지껄이는 걸로 치부될 수도 있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부담감 때문에 지은이들은 사실에 근거하여 미래의 일을 가정한다. 역사에서 이미 경험했던 사건들에서 문제의 단서를 뽑아냈고 여기에 미래의 상황을 첨부하여 이야기를 꾸민다. 예를 들면 영어공용화가 실시된 뒤 모국어를 상실해 가는 과정을 일제 침략시대 모국어가 쇠퇴하는 과정과 대응시키고 훗날 중국이 세계주도권을 가질 때, 중국어공용화 주장과 사회분위기를 현재 영어공용화 주장과 사회분위기에 대응시켜 미래모습을 추측해간다. 이 책을 읽으면 영어라는 거울을 통해 한국 사회의 안목과 의식수준을 비춰볼 수 있고 지난날의 변화들을 돌이켜보아 앞날을 가늠할 수 있다. 지은이들이 부지런히 모은 자료들을 보면서 언어와 문화, 나아가 역사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으며 책 마지막 부분에 모아놓은 영어공용화 논쟁이 된 글들을 읽으면서 한국 지식인들의 인식 태도를 알 수 있게 한다. 한글은 더 이상 국경일이 아니다. 이 사실을 보더라도 한글에 대한 공직자들의 인식 수준을 엿볼 수 있다. 한국어가 사라진다면‥‥‥ 책을 읽으면서 체험하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