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소리 - 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120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그럴 때가 있다. 괜히 투정부리고 떼쓰고 싶은 때, 막연하게 현실이 불만스럽고 나몰라라 내팽겨치고 싶은 때, 이런 때 달아나는 마음을 어떻게 붙잡아 둘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따끔하게 혼이 나는 건 어떨까? 내 어리석음을 꾸짖어주는, 당장은 써도 훗날 약이 될 보약 같은, 어른들이 필요하다. 어른들이 사라진 오늘 날, 훈장선생님이 허리를 꼿꼿히 세운 채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는 듯한 문장들을 모은 죽비소리를 소개한다.(2005, 마음산책)


옛 선비들의 글이라하면 고리타분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 말만 앞세우는 양반들의 이중성과 겹쳐지면서 그들의 글도 진실이 담기지 않은 강정같다고 섣불리 단정짓고 있었다. 그러나 선비가 무엇인가? 군자가 되려고 수양하는 사람이다. 수많은 거짓 선비들 가운데 진짜 선비는 있기 마련이다. 그 선비들은 기교가 아닌 가슴으로 글을 썼기에 읽는 사람들 가슴에 전해진다.


죽비소리는 우직한 선비들의 글을 추려 묶었다. 1년 열두달의 의미를 따와 열두장으로 나뉘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번역되어 있다. 몇 백년 전 사람들의 글은 한문으로 쓰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 한문을 먼저 직역해서 풀고 그 다음 해석을 곁들인 맛깔난 글이 이어진다. 보기를 들면 이렇다.


자세(姿勢)

집안 사람인 이광석은 길을 갈 때 그림자를 밟지 않았다. 아침 나절에는 길 왼쪽으로 갔고, 저녁에는 길 오른편으로 갔다. 갈 때는 반드시 두 손을 모두어 잡고 척추를 곧추세웠다. 일찍이 함께 3,40리를 가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宗人復初 行影, 朝日卽行路左 夕日卽行路右, 行必拱手卽脊嘗與之同行三四十里 諦視之, 無少改焉
-이덕무 (德懋, 1741~1793), {사소절 士小節}

옛 그림을 보면 절대로 그림자를 그리는 법이 없다. 구름도 그리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허상이기 때문이다. 항상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은 참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집안 사람 이광석은 제 그림자조차도 밟지 않는다. 그림자를 밟는 것은 결국은 저 자신을 밟는 것이고, 저 자신을 거리낌없이 밟는다면 남도 서슴지 않고 밟을 수 있겠기 때문이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길 왼편으로 들고, 해가 뉘엿해지면 또 오른편으로 들어, 그림자를 그늘에 숨기거나 뒤따라 오게 한다. 길을 걸으면서도 척추를 곧추세우고, 두손을 맞잡아 성(誠)과 경(敬)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았다. 내가 그 독실한 사람됨을 사랑한다. 일거수일투족에도 바른 자세를 잃지 않는 그를 보며, 오늘의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한자 공부도 할 수 있지만 정민선생님이 번역한 글의 단아함에 눈이 먼저 가고 풀이한 수려한 글에 마음이 따라간다. 비록 읽는 내내 찔리는 구절과 맞닥뜨리면 얼굴이 빨개졌지만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곁에 둔 책이 되었다. 명랑하지는 않지만 우직한 벗 같다. 처음엔 바른 소리에 뜨끔하여 편치 않으나 귀감이 되고 더 ‘된 사람’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말씀, 죽비소리, 흐트러지고 게을러져 자극이 필요할 때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정성이 가득 담긴 책을 읽으며 지은이의 유명세가 헛되지 않은 것도 알 수 있다. 탐나는 구절을 적으며 마무리 하겠다.


지극히 오묘한 말은 오래되어야 맛을 알게 되고, 낮고 가벼운 작품은 언뜻 보기에는 좋아 보인다. 배우는 사람은 책을 볼 때, 마땅히 되풀이 해 읽고 깊이 생각하여 글쓴이의 뜻을 얻으려고 기약해야 한다.
이제현(1287~1367),{보한집}

첫눈에 반해버리는 사랑을 믿지 마라, 뒤따르는 실망이 크다. 설탕참외는 싫다. 처음엔 떨떠름해도 길게 뒷맛을 남기는 감람 같은 과일이 되고 싶다. 곱씹어 음미할수록 깊은 울림을 남기는 말, 글쓴이의 마음자락이 느껴질 듯 말듯한 그런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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