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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사진사 - 철학도에서 최고의 사진사가 된 도밍고가 전하는 삶의 9가지 지혜
정원준 지음 / 울림사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류시화씨는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란 시모음집을 내면서 시가 갖고 있는 치유력을 얘기하였다. 그 시모음집을 읽으니 시큰거리는 마음 한구석 고민이 낫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말이 갖고 있는 치유력을 알게 되었다. 시란 정성과 뜻으로 맺어서 어우러진 말들이다. 그 안에 담긴 정성과 뜻이 사람들을 치유한다. 다쳤을 때 바르는 빨간약처럼 마음의 상처를 낫게 한다.
호호 불어주는 양호선생님의 입김 같은 글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 책을 만났을 때 상처가 있었나보다. 산다는 게 상처의 연속이기에. 처음엔 흐려진 눈으로 책을 펼쳤다. 가볍게 볼 생각이었는데 책은 한 겨울에 손난로처럼 문장들이 따뜻하게 다가와 마음을 데웠다. 그 책이 달과 사진사(울림사, 2005)다.
<상처를 얘기하기>
삶은 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P22)
지금 힘든 일이 나중에는 별 거 아니라서 기억도 안날 거라는 거, 안다. 그런데도 이렇게 힘들고 외로울까. 자신이 갖고 있는 기대와 욕심이 현실과 거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 자신의 욕심을 그려 넣을수록 자신은 초라해진다. 욕심은 끝이 없고 내가 닿을 수 있는 범위는 끝이 있기에.
현실이란 ‘나와 타인의 관계’다. 현실에 불만족하다는 것은 타인과 관계에서 삐거덕거리는 게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곰곰이 따져보면 자신이 스스로에게 불만스럽다. 이러한 불만을 바꾸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데, 용기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지혜다. ‘지혜는 지식과 달리 세월에서 오기에’ 아직 여물지 못한 나는 어리석고 불만에 차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난 마음의 렌즈를 통해 타인을 바라다본다. 그래서 타인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욕심이 낀 눈으로 보면 욕심쟁이들 밖에 안 보인다. 언제쯤 지난 상처를 딛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세월에 조금 더 흘러야 하나.
<치유>
책 줄거리를 짧게 말하면, 지난 날 충격과 아픔에 묶여 있는 주인공이 치유하는 얘기다. 주인공은 직업이 사진사다. 하지만 일에 흥미를 못 느끼고 지난 날 상처에 매어있다. 주인공의 상처는 사건만 다르지 보통사람들이 갖고 있는 상처와 비슷하다. 사람 사는 모습은 닮았으므로 그의 상처와 치유하는 과정에 공감이 간다.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얘기를 들어주고 도움말 주는 멘토는 신기하게도 ‘달’이다. 늘 우리 곁을 맴돌면서 있어주지만 요란한 불빛들에 현대인들은 잊고 사는 달. 그 달이 위로를 해준다. 주인공이 털어 놓는 아픔만큼 그는 과거에서 벗어난다. 그가 털어내는 만큼 읽는 이도 같이 과거를 털을 수 있는 위로를 얻는다. 이렇게 치유하는 힘을 지닌 문장이 책 곳곳에 묻혀 있다.
주머니 속 구슬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때
비로소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밤하늘의 별을 빛나게 만들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이의 볼에 예쁜 보조개를 피게 할 수는 있다.
이 세상에는 남을 돕지 못할 만큼 가난한 이도 없고
남의 도움을 받지 못할 만큼 부요한 자도 없습니다.
더 많은 보물들이 숨어 있다. 읽는 사람이 캐서 마음에 새길 때 빛나는 말들. 책 읽는 속도를 늦춰 며칠에 걸쳐 나눠 읽었다. 겨울날 따뜻한 차를 마시듯.
<수용 그리고 소망>
떠날 때는 모두 다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는 거예요.
왜, 모두들 주려고 할 때쯤 떠나는 것일까.
나비가 되어 훌훌 날아가기엔 너무 짊어지고 움켜쥐고 있는 게 많다. 후회할 걸 알면서도 탐하고 성내는 일상, 밤이 되면 미안함으로 채워지는 낮, 그리고 다시 세상사에 휩쓸리는 약한 나, ‘죽음이 꽃가루 날리는 장례식을 기다리지 않을 걸’ 알면서도 어제와 비슷하게 오늘을 산다. 내게 주어진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그렇다고 세상에 대해 비관하거나 허무에 빠지지 않는다. 지금은 어리석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에. 이렇게 둔한 존재로 세상에 던져놓은 신을 원망하지 않는다. - 이 세상 여행을 마치는 날, 신은 무엇을 했냐고 묻지 않고 다만 이 말을 해주며 감싸안아줄 것이므로.
'많이 아팠지......’
‘당신이 누군가에게 희망을 말하기 전에는 결코 희망은 다가오지 않는다. 절망도 희망도 결국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나온다.’ 희망을 얘기하고 사랑을 노래하자. 그렇게 남을 만나고 나를 아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기에,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기에.
사람은 날개를 잃고 지상에 내려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고통을 극복하고 더 많은 쾌락을 얻기 위해 문명을 발달해 왔으나 사람 존재에 배어있는 고통은 어떤 편리한 문명도 낫게 한 적이 없다. ‘고통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 깊이 품을 때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이기에 자신의 몫이다. 자신의 고통을 감당하는 이만이 남의 아픔에 귀 기울 수 있다. 몸이 더 편한 세상이 아닌 아픈 마음에 손 내밀 수 있는 세상이 되어 가슴마다 녹아내린 고통을 벗 삼아 사랑이 피어나길 바라며.
신은 우리에게 날개를 빼앗은 대신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우리들의 가슴에 옮길 수 있는 두 팔을 주셨던 거야(P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