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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평점 :
<작가 박민규>
우선 책 소개에 앞서 지은이 박민규에 대해 말해보자. 젊은 작가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며 자기 길을 개척한 그는 2003년 ‘지구 영웅 전설’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삼미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례문학상을, 2005년 소설집 ‘카스테라’로 신동엽 창작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수상이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책 내용이다. 기존 문학의 엄숙함을 비웃고 문법을 비틀면서 마련한 ‘박민규식 글쓰기’는 신선함을 넘어 충격이었다. 고상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유치하게 보일 정도로 책 내용 전체에 가득한 말장난은 꼼꼼히 따져보면 그저 장난이 아니라 체계와 조리가 있다. 이러한 깊이 있는 말장난은 앞 뒤 문맥을 이어주고 글 읽는 속도를 높여주는 작가의 배려이고 작가의 건방짐을 보여주는 도구다. 물론 작가의 건방짐은 자기 성찰을 전제로 하기에 독자들과 문단에게 아주 유익하다.
박민규 글을 얘기하면서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아주 재미있다. 여기에 그친다면 박민규 책은 ‘재미있는 오락거리’ 였을 거다. 그러나 늘 뼈아픈 문제를 다루고 있고 굳어가는 의식을 깨뜨리며 고민하게 만든다. 핑퐁에서 박민규는 삶의 의미에 물음을 던진다.
<다들, 잘하고 있습니까?>
적응이 안돼요
다들 결국엔 자기 할 말만 하는 거잖아요
얘길 들어보면 누구도 틀렸다고 할 수 없어요
왜 그럴까요, 왜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틀린 곳으로 가는 걸까요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누구의 책임일까요
무엇보다
그걸 용서할 수 없어요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자신이 왜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걸 용서할 수가 없어요 <핑퐁, p117>
왜 사는 걸까? 이 물음을 생각하면 언제나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고민할수록 세상일들은 보잘 것 없어지고 기존 질서는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옆 사람들 눈치를 보며 묻고 싶다. 다들, 잘하고 있습니까?
왕따를 당하는 중학생인 못과 모아이, 두 주인공이 인류소멸과 지속을 결정하는 탁구를 친다. 세상이 깜빡해버린 두 주인공의 상대는 절대로 깜빡할 수 없는 현재 인류의 대표가 나온다. 바로 쥐와 비둘기, 작가가 인류의 대표성격이라고 표현한 이 둘의 상징은 다수성과 잔존성이다. 다수가 되려고 애를 쓰고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인류는 60억이나 인구가 되지만 외롭다. 다수라 수는 많지만 대량 공산품처럼 다른 게 없기에 지루하다. 그리고 똑같기에 의미가 없다. 의미는 차이에서 나오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생존이 아닌 길들여진 방식대로 잔존하는 인류는 작가의 말처럼 이곳에서 너무 오래 잔존해왔다. 늘 그렇듯 되풀이되는 세상사는 의미와 변화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지치게 한다. 마치 ‘핑’하고 강력한 서브를 보내도 어김없이 ‘퐁’하고 돌아오는 리시브처럼.
핑퐁, 핑퐁하며 랠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는 있다. 의학으로 사람 생명을 구하면서도 학살이 일어나고 과학으로 이기를 만들면서도 대량 살상무기를 만들고 지식으로 생각이 깨어나는가 하면 지독한 편견으로 가득차기도 한다. 듀스는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핑’하고 진보를 했다가 반복하는 ‘퐁’에 지쳐 조건반사된 생활을 작가는 파고든다.
결국 지구의 인간은 두 종류다
끝없이 갇혀있는 인간과 잠시 머물러 있는 인간
갇혀 있는 것도
머물러 있는 것도
결국은 당신의 선택이다
이데아(IDEA)는 결국
아이디어(idea)에 불과한 것이니까
같은 이유로
인류의 2교시도 두 갈래 길이 아닐 수 없다
지금과 다른 생물이 되거나
다른 생물에게 바통을 넘기거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문제제기를 한다. 왜 사는가? 조건반사된 생활에 딱딱해진 심장으로는 절대로 답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다른 생물에게 바통을 넘겨야 한다. 지난 날 공룡처럼. 아니면 지금과 다른 생물이 될 수밖에 없다. 심각한 화두를 던지며 책은 끝난다.
다들 잘하고 있습니까? 결국은 당신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