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포트 - 여름 고비에서 겨울 시베리아까지
김경주 지음, 전소연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덥네요. 이마를 씻어주는 산바람과 발바닥을 간질이는 바닷물이 생각나는 여름의 복판으로 가네요. 떠나고 싶지만 일과 식구, 날짜, 돈 등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네요.

 

이런 날은 찬물로 세수하고 여행기 보는 것도 좋은 피서법이에요. 눈으로 입국한 글자들은 상상력이란 비행기를 타고 나를 저 멀리로 출국시키죠. 셀 수없이 쏟아지는 여행기 가운데 패스포트[2007, 랜덤하우스]가 눈에 딱 들어온 것은 이 구절 때문이었어요.


 

이 여행은 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거리인 것입니다. - 책에서

 

이 여행의 끝에는 당신이 있을까? 당신은 누굴까? 저마다 ‘당신’을 떠올리며 지은이와 같이 여행을 떠나자고요. 여행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가장 섬세한 타인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지은이 따라 배낭을 메 볼까요?

 

이 책 지은이 김경주는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2006. 랜덤하우스중앙]로 문단에 주목받은 시인이죠. 그가 사진작가 전소연과 함께 2006년 여름부터 2007년 2월까지 고비와 시베리아를 횡단한 이야기예요. 여름에 고비사막에서는 걷거나 지플 탔고 겨울에 시베리아에서는 기차를 타거나 걸었죠.

 

무더운 여름에 유목의 땅인 고비 사막을, 추운 겨울에 유형의 땅인 시베리아를 여행간 거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릴 분도 계실 거예요. 시인은 일부러 때를 골라 고비와 시베리아를 건너고 이렇게 말하네요.

 

‘고비에서 나는 인간이 지상을 유목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저 스스로 바람 속으로 떠나는 유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유형이란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의 시간을 견디는 빛의 시차라는 걸, 눈에 뒤덮인 나무처럼 빛이 얼어버린 시베리아에서 느낄 수 있었다.’ - 책에서

 

이 책은 시간대별로 자기가 거친 곳이나 경험을 나열하지 않고 순간 묻어나는 감성과 떠오른 시상과 이야기들로 엮었어요. 그래서 책 내용들은 쭉 이어지지 않고 고비와 시베리아로 크게 묶일 뿐, 서로 독립성을 띄며 하나의 작품이 되요.

 

시인은 시인이네요. 단어 연결이 시 같아 글이 참 아름답네요. 기차를 바꿔 타려고 기다리는 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적네요. ‘기억이란 우리가 지나친 생의 정거장이다.’

 

패스포트, 즉 여권은 나그네 문서라는 뜻이죠. 여권을 보면 어디를 거쳐 어디를 여행 했나 알 수 있죠. 삶 역시 긴 여행 같죠. 사람을 보면 어디를 거쳐 어떻게 살고 있나 알 수 있죠. 여행의 끝에는 ‘더 나은 나’라는 ‘당신’이 있죠. 이번 여름에는 더위만 피하지 말고 당신을 만나러 떠나는 건 어떨까요?

 

사는 동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신과 운명을 함께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한 개의 별자리.

자신의 생각을 기록할 수 있는 몇 개의 연필.

지갑 속에 평생 보관할 수 있는 한 장의 사진.

그리고 언제든 돌아가서 다리를 녹일 수 있는

한 개의 욕조로 충분하다. -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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