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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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성석제에 대한 약력을 보니 1994년에 첫 소설을 발표 한 후 20여 년 동안 활발히 활동해온 것으로 기록 되어 있다. 그의 발표작들을 많이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제목만 보아도 한국적인 소설의 향기가 나는 것 같다. 내가 읽게 된 “투명 인간”도 한국적인 시대적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투명인간”은 덮어 두었던 내 이웃의, 나의 삶의 한 시대적 모습이 담겨 있어서 그 옛날을 생각나게 한다. 두메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 소쿠리 하나씩 들고 봄이면 들로 나가 나물을 캐고, 겨울이면 땔감 구하러 산으로 갔던 그 모습들이 나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중학교 때 인가? 다른 도시에서 공부하던 고등학생이던 어떤 오빠는 학생들을 잡아들이는 경찰을 피해 몇 달이고 시골 마을에서 숨어 지냈던 기억도 난다. 돈이 없어 초등학교만 간신히 마치고, 서울 봉제공장에 취업하러 떠났던 동네 언니들도 떠오른다. 자신을 희생해서 가족을 살려내는 만수 같던 엄마도 생각난다. “투명인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참 많은 어려운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다. 이 책속에 다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랬었다. 연탄가스를 마시면 김칫국이 특효라고 했었다. 병원이나 약국을 이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시절 가난한 사람에게는 천국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할아버지 세대에서 아버지 세대로, 그리고 만수세대를 보게 하는 “투명인간”을 읽고 나니 대하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또한 주인공 만수를 가운데 두고 돌아가며 자신이 처한 입장으로 화자의 이야기가 연결된다. 전개되는 모양이 여러 편의 생활수필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묶은 듯 한 느낌이다. “투명인간”에 등장하는 화자들이 처한 상황 묘사가 잘 되어 있어서 만수가 주인공인데도, 주인공에게만 마음의 무게가 기울어지지 않고, 가족, 혹은 이웃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는 소설 이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책임의 굴레를 쓴 만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살았다. 그런데 만수는 그들의 그림자로 살았을 뿐이다. 그것은 그의 목표가 가족 혹은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이 삶의 목표였기 때문일까?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이 그냥 자신의 상황을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한 결과물인 걸까? 그렇지 않으면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그의 삶을 좌우하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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