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지면 유독 책이 좋아진다. 특히 지금 읽는 “킬리만자로의 눈”은 씹을 수록 맛이 나는 오징어 다리같다. 세계 전쟁을 두 번이나 겪은 헤밍웨이가 종군 기자 였다고 하니, 삶과 죽음의 깊이에 얼마나 많은 관여를 하였는지 알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잘 알려진 소설들을 옆구리에 끼고 한 때의 청춘을 보냈을 것이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등은 많은 사랑을 받은 그의 소설이다. 그에 반해 행운인지 불운인지 결혼을 네 번씩이나 한다. 그의 삶 마지막은 우울증과 알코올중독과 고혈압과 편집증으로 시달렸고, 결국 자택에서 엽총에 의해 자살로 보이는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그의 삶 자체만으로도 그의 소설을 읽게 하는 호기심을 일으킨다.
이 책은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 “두 심장을 가진 큰 강 1부와 2부”, “살인 청부업자들”, “어느 다른 나라에서”, “깨끗하고 환한 곳” 등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주로 대화체여서 단숨에 다 읽었다. 헤밍웨이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킬리만자로의 눈>을 써서 발표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사랑을 받는다. 사랑을 미끼로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던 작가 지망생인 해리. 쓰고 싶은 작품 구상만 머릿속에 몇 권씩이나 담아 놓고선, 한 권도 못쓰고 죽은 해리. 그가 맞이하는 죽음은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두 심장을 가진 큰 강”은 군더더기 없는 묘사가 돋보였다. 이미지를 떠올리며 닉의 생각과 행동을 따라 읽으니 좋았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에세이 같다. 나머지 단편들은 단숨에 읽기 편하도록 구어체여서 좋았다. 미디어 시대에 살다 보니, 이상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문체가 지루함을 없애 준다. “깨끗하고 환한 곳” 이라는 작품에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20세기 초의 사상을 접하고 보니 지금의 실존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됐다. 이 책은 영문판이 있어서 자신의 언어로 읽어낼 수도 있고, 다른 이의 번역을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도 있다. 번역본에 익숙한 나의 습관을 수정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클래식이라는 출판사에서 고전을 한글 번역본과 영어본을 묶어서 한 세트로 출간 했다. 어떻게 보면 모험 같지만, 꽤 시대에 맞는 발상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영어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자리 잡고 있다. 이 시대의 청소년들은 이제 번역본만 읽는 것 보다는 영어판과 번역판을 같이 읽게 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 된 것이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이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나는 그의 유명한 장편 소설들 보다는 단편인 “킬리만자로의 눈”을 사랑한다. 그 동기가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