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작가의 소설책은 항상 나에게 평점을 제대로 받질 못했다. 그래서 이 책도 그러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누마타 마호카루는 일본 소설의 재미를 살려주었다. “유리고코로”라는 소설에 빠지다 보니 작가의 연보에도 관심이 간다. 대단하다. 56세에 늦깎이 작가로 등단했다. 책 읽는 나를 완성도가 높고 표현하기 어려운 슬픔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소설의 시작에는 평범한 한 남자가 등장한다. 소설이 전개 되면서 평범하지 않은 피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족에게 여자 친구를 소개시킨 다음날 여자 친구가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사건으로 독자를 긴장감의 도가니로 끌어 들인다. 연이어 독자가 책 읽기를 그만 두지 못하도록 그를 곤경의 상태에 배치한다.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고 얼마 안 되어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아버지의 비밀 장소에서 충격적인 내용이 담긴 일기를 발견한다. 그가 일기를 읽는 동안 일기속의 인물이 살아 움직인다. 우연히 친구가 죽어가는 데도 도와주지 않고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마치 자신이 가지고 놀던 인형처럼 감정이 없다. 관심 없이 점점 메말라가는 도시의 사람들만 같다. 그렇게 친구의 죽음이 있은 후로 미사코는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런 죄책감이나 고통이 없는 그런 텅 빈 머리의 인형처럼 살아간다. 자해 중독에 빠진 친구와 만나면서 자신은 ‘탁한 연못 밑바닥에 사는 추한 메기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컷트 칼로 친구 손목을 긋고서는 숨을 거둘 때까지 바라보는 모습이 강하게 인상에 남는다. 작가는 아주 세밀한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한 장면으로 보여준다. 장면을 연상케 하는 소설의 기법이 참 세련되어 보인다. 거추장스럽게 변명하려 하지도 않고, 살인 이라는 금지된 단어가 이 책에서는 ‘아름다운슬픔’이라 명명하고 싶어진다. 한 번의 살인이 더 일어난 다음 그녀는 자신이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사코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자신의 속죄이고 운명으로 알고 받아들인다. 살인 자체를 긍정적으로 덮어주고 싶지는 않지만 그제야 아이를 낳은 그녀에게서 사람다운 사람의 냄새가 난다. ……급기야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자신의 새끼를 보호하려고 상대와 물어뜯고 으르렁 거리는 짐승의 본능을 보여준다.


  “유리고코로”는 잘 된 구성과 잘 된 내용과 잘 된 표지와 제목으로 읽는 이를 감동시킨다. 여름의 더위를 순식간에 날려 버린다. 그러나 심장 약한 사람은 조심하라. 어디선가 유리고코로는 당신을 노릴테니까. 여러분! 잔인하지만 일본 소설로 등골이 서늘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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