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 - 몸에 관한 詩적 몽상
김경주 지음, 전소연 사진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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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에서 몸은 온 몸이 시 이며 시는 몸의 속사정이다. 시인은 몸을 몽환적으로 만들어서 독자가 혼미한 상태가 되도록 한다. 시작하는 선을 따라가 보면 끝나는 지점은 다르기도 하다. 그러니 독자는 첫 장을 열면서부터 끝 페이지를 닫을 때까지 헤맨다. 저자는 집요하게 몸을 탐독하여 세상 삼라만상이 어느 부분에 고여 있는 지를 찾아내고 발견된 경이를 독자와 나누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가죽으로 막혀 있는 몸속을 보기 보다는 툭 터진 공간을 응시하고 하나의 개체로 존재하는 나무며, 건물이며, 동물이며, 들판에 길들여져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좁아터진 몸을 응시하려니 답답하고 불편할 수 있겠다. 그것이 몸을 보는 시인과 시인이 아닌 사람의 시선이다. 그것을 감수하고 시인 김경주는 왜 두꺼운 한 권 분량의 몸을 독자 앞에 툭 내민 걸까?


‘눈동자’ 부분 “눈동자는 스스로의 생명성을 잃어갈 때조차도 자신의 피난처를 신체에게서 찾지 않는다.”를 읽으며 나의 시선이 끊임없이 밖으로 열려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시선일 때 밖으로 열려 있을 뿐 시선이 아닐 때는 눈 역시도 신체 안으로 난 길을 걷고 있음도 말하고 싶다. “쇄골에 빗물이 고이는 사람이 있다.”라는 문장을 읽을 때는 즐겁다. 인체가 가지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건축물의 감추어진 골격과 선의 비율로서 설명하고 있다. 이렇듯 신체에 속하는 뺨이며, 무릎이며, 날개뼈, 목선, 핏줄, 아랫배, 배꼽, 머리카락, 가슴…… 등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몰입해 있을 때의 마음으로 읽어 나가야 한다.


 “밀어”를 읽으며 독자와 공감과 소통을 이끌어 내려는 시인의 그림자가 보인다. “밀어”가 몸의 선과 몸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것처럼, 문장의 맞춤이 왼쪽 맞춤으로 되어 있어서 마치 몸의 선을 연상케 한다. 내면의 내용도 중요 하지만, 외향의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을 때의 느낌도 몸의 할 일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난해한 ‘시’가 논란이 된지 오래다. 난해성으로 인해 머리를 싸매는 독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시인의 시를 자기만의 혼잣말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혼잣말이 되지 않게 하려면 그것에 상응할 만한 철학이 군중의 심리 속에 카펫처럼 깔려 있어야 한다. ‘시’가 표류하게 둘 수 없다는 것도 시인들은 인지하기 때문에 문학 행사를 하기도 하고 시화전을 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들은 시인들만의 축제로 끝나버리기도 한다. 군중의 살 속으로 가장 쉽게 파고들 수 있는 문장은 어디 없을까? 그러한 문장은 바로 산문에 있다. 산문은 편하게 군중과 마주칠 수 있다. “밀어”로 인해 군중의 철학적 성향이 서서히 ‘시’적 언어의 난해성을 지울 수 있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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