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무삭제 개정판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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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을 읽으니 하나의 치마폭 속에 쌓인 지구에 다녀온 느낌이 든다. 그녀의 세계는 만물을 소생시킨다. 봄이 오면 나무의 싹이 돋아 한 철 푸른 잎들을 자랑하듯이 미실의 한 생을 읽는다. 그 생이 훗날 소멸을 하면 다시 누군가는 태어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 여자만을 본 것은 아님을 알겠다. 모든 상황에서 지위가 달라진 지금의 여성을 본 것 같다. 그러나 ‘미실’이라는 여성의 화려한 활약상에 비해 주체적이거나 창의적일 수 없는 신분을 파괴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미실”은 인물이라기보다는 영향을 미치는 사상이나 규율의 한 종류처럼 보인다. 맨 처음 세종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쫓겨난다. 그리고 사다함을 만나 또 사랑을 나누고 헤어진다. 동륜을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진흥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설원과 진평을 만나 사랑을 나눈다. 여러 대를 걸쳐서 남자를 만나고 여러 남자를 통해서 자식을 얻는다. 아버지 같은 왕도 품에 안고, 자식 같은 낭군도 품에 안는다. 현실로 보면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그렇다면 그녀는 인물이 아닌 어떤 다른 것을 상징할 수도 있다. 그녀는 부족을 안정을 시키기 위해 어느 나라에서 정치적으로 여럿의 신부를 둔다는 관습 같은 것이다. 미실의 태어남과 그녀가 궁에서 생활하는 장면에 대한 묘사는 현실적이기 보다는 전래동화 같다. 선조들은 곧잘 전래동화를 통해 자신들의 욕구와 통정하지 않았는가. “묘도가 처음 미실을 낳았을 때, 옥진은 핏덩어리를 감싸 안고 복숭아꽃과 흰 눈으로 세수를 시켰다.” 라는 문장들이 소설의 분위기를 끌고 간다. 사람과 사물을 표현하는 화려한 미사여구가 전반적으로 소설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 특징이 소설이다. 이러한 문장은 현실성과의 괴리라든가, 인물을 통한 허황된 꿈도 꿀 수 있게 한다.


소설도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미실”을 통해 인물의 세밀한 내면보다는 외향의 행동양식에 치우친 현실을 볼 수 있었다. 다시 부활한 성인 동화를 읽는 느낌이다. 꼬집거나 비유하거나 환상적이다. 즉 인터넷에 올라오는 동영상을 통해 우리는 여러 가지 시각적 맛을 느낀다. 그것을 보면서 그 저편에 감추어진 고통이나 갈등은 곧 잊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화려한 것만도 혹은 그렇게 낭만적인 것도 아니므로 오히려 우리들의 본래적인 인간의 속성은 속앓이를 하게 된다. 이 소설은 그런 속앓이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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