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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기억의 파괴 - 흙먼지가 되어 사라진 세계 건축 유산의 운명을 추적한다
로버트 베번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는 도로 공사 중이거나 아파트 재건축 공사장을 무심코 지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건축물이나 그 밖의 자연물에 대해 새로운 관심이 생긴다. 비로소 건물들만의 기호와 지형만의 상징이 우리의 혼을 많이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집단 기억의 파괴”라는 책의 위력이다.
사람의 사기를 꺾는 데는 그 사람의 집을 파괴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집을 파괴하면 그 사람의 속성을 파괴하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1940년 12월 당시의 성당모습 사진을 만날 수 있었는데, 둥근 지붕 위로 솟아있는 꼭대기의 모습이 귀공자의 모자처럼 각인된다. 세월이 지나서 오래된 건축물을 답사하는 일은 신비롭다. 건축물로부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영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여행객의 블로그에 방문해 보니 세인폴대성당 앞에서 찍은 사진이 게제 되어 있었다. 영국의 세인폴대성당은 폭파된 후 현재는 한쪽 벽만 남아 있었다. 영국의 정신을 파괴하고 싶은 이가 세인폴대성당을 폭격하였음을 짐작케 했다. 또 역사적인 베를린장벽이 철거되었던 때를 우리는 기억한다. 장벽 안에는 19세기 후반 고딕 복고 양식의 “화해의 교회”가 있었는데 자신들의 건재함을 과시하려 동독에 의해 붕괴되었다고 한다. 그 교회가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면 상징성과 역사성을 한 몸에 저장한 채 국익을 위해 관광명소로 꼽힐 수도 있었을 뻔 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구조물의 일부만 흉물스럽게 남았다고 하니, 장벽의 사연도 역사 속으로 묻혀버리는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이미 파괴되거나 철거되는 건물을 다시 복원을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대로 두거나 깨끗이 청소해 버려야 하는 걸까? 서로의 입장으로만 논란이 끊이지 않을 숙제로 보인다.
911테러사건을 사람들은 기억한다.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는 장면은 전 세계가 경악한 최대의 사건이다. 그 건물에 있었던 사람들은 아직도 악몽을 꾸는 듯 괴로울 것이다. 그런데 9월 11일에 베를린장벽이 무너졌고 또 크로아티아의 포격으로 모스타르의 역사적인 다리인 스타리 모스트가 무너졌다고 한다. 우연히 9월 11일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 조작적으로 9월 11일을 테러의 날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건물은 무너지면 차츰차츰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져간다. 그러나 911이라는 무형의 숫자는 더 선명하게 악몽의 숫자가 된다. 우리의 기억은 911의 숫자 보다는 그날 부서져 내리던 건물의 모습이 남아있다. 건물은 이미 그 지역을, 지역의 사람을, 대신해서 전 세계에 자신을 알리는 살아있는 이념이다. 그렇기에 집단의 이념을 세우거나 무너뜨리거나 위해 건물은 지어지고, 파괴된다. “집단 기억의 파괴”는 우리의 문화유산과 언어를 왜 지켜야 하는지 그 목적을 뚜렷하게 해 만들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