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우울 - 김영찬 비평집
김영찬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는 날은 눈물이 났다.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는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는 날은 감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꿈을 향해 질주하게 되었다.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는 날은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는 날은 또 만날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기를 희망한다.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고 온 날은 책 속의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음을 공감하고, 위로를 받는다. 그것이 책을 읽는 이유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소설을 쓴다는 것과 그 소설을 비평한다는 것은 은밀히 문학을 통해 소설가와 비평가가 인간의 내면을 공유하는 행위가 된다. 그들의 은밀한 공유를 나는 “비평의 우울”이라는 책 속에서 만났다.

발상과 문법의 반복은 죽은 상징이다. 관습화 되어 한국 소설은 자기도 몰래 자기 충족적 자율성을 만들어 가는, 부정적으로 부각되는 스펙터클이다. 사실 말을 근사하게 풀어 놓았을 뿐 이 말의 의미는 비슷한 기법으로 쏟아져 나오는 2000년대 문학 현상에 대한 충고이다. 김영찬 평론가의 2000년대 문학에 대한 정리는 상당한 공감을 준다. 즉, 그는 “그들의 문학은 모든 것을 모른 체하거나, 비켜가거나, 그래서 이곳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 훌쩍 비약해버리거나, 그러지 않으면 속으로 삭이고 체념해 버린다. 그것은 가혹한 근대의 마성에 대한 대타의식을 내면의 자양으로 눌러 담기보다 그것을 내면의 바깥으로 느슨하게 유희적으로 풀어헤쳐버리는 문학적 태도다. 그것이야말로 2000년대의 무력하고 왜소화된 주체가 폐쇄적인 세계의 우울로부터 자기를 방어하는 방법인 동시에 그 자기 방어를 거꾸로 문학적 창조의 원천으로 돌려세우는 방법이다”라고 한다.

추상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는 박민규의 소설을 읽어내는 그의 평에서는 지금 살고 있는 세대의 원형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김영찬 평론가는 2000대의 최대 유행이 되어버린 상상화 된 자아의 모습을 김애란, 이기호, 김중혁, 박형서 등의 소설 속에서 발견하여 들려주는데, 변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상상의 세계는 작가의 내부를 비추는 거울이라 말한다. 부풀려진 듯 한 동시대와 떨어진 작가의 작품에 대한 평을 읽을 때는 지루했다. 그러나, 가장 동시대에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 작가들에 대한 김영찬의 “비평의 우울”은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

이 시대를 우울한 시대로 본다? 그럼 이 시대의 우울은 어떠한가? 김영찬은 그러한 우울의 전후를 박민규의 [아침의 문]으로 들려준다. 나는 “비평의 우울” 속의 우울 종결자 같은 종이에 쓰인 유서가 기억에 남는다. 우울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부정으로 가득차 있어서 희망이 없는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 어느 시대, 어떤 모습으로든 문학은 저 나름의 우울을 앓기 때문이다. 우울이나 어둠은 빛과 희망이 있기에 가능한 표현임을 나는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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