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5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아버지와 아들”은 청년성장소설이다. 스물세 살의 주인공이 그 당시 사회의 젊고 확고한 신세대적인 사고와 아버지의 구세대 사고와 논쟁을 벌인다. 우리 가족들 간에도 흔히 있는 갈등이지만 소설 속에서 읽으니 더 새로웠다. 주인공의 성장을 통해 독자에게도 사고의 성장을 주는 소설이 문학작품의 주류를 이루는데, 이것 역시 그러한 부류의 문학소설이다. 문학소설을 읽는 다는 것은 내 머릿속에, 내 심장 속에 비타민을 먹이는 일과 같다.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하고 아르카디는 친구 바자로프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다. 바자로프는 ‘아무것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인 니힐리스트이고, 아르카디는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니힐리스트인 그를 존중한다.

이 책 속에서 바자로프는 계속해서 실험하고 연구하는 인물이다. 구세대를 향해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마치 세상으로 나아가는 융합점을 찾기 위해 탐구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바자로프가 개구리를 잡는 걸 보고 아이들이 무엇에 쓸 것인지 묻는다. 그는 개구리의 배를 째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거라고 대답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을 아직 경험하지 않아서 아들들은 작은 두려움이나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바자로프와 아르카디의 큰아버지가 논쟁을 벌인 부분은 그 당시 러시아의 문제점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하찮은 일에 몰두하면서 예술이니 무의식적 창조니 의회제도니 변호사 협회니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떠들어대는 동안, 한편에서는 일용할 양식 문제가 제기되고 조잡한 미신이 우리를 질식시키고 있으며, 주식회사들은 정직한 인간이 부족하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파산하는 걸 보았습니다. 정부가 신경 쓰고 있는 그 자유라는 것도 우리에게 이롭지만은 않을 겁니다.” 불신과 부패가 가득한 사회를 비판하지만 그것을 바꿀 힘이 없음을 인정하는 젊은 바자로프. 당시 러시아의 그런 문제점들을 비판은 하지만, 어찌해 볼 수 없다는 무기력함을 느끼게 한다. 이 소설로 당시 러시아에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두 젊은이가 어두운 그늘 속에서 헤매지만은 않는다. 아르카디와 바자로프는 오딘초바라는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된다. 그것으로 인해 둘의 사이는 점점 어긋나게 된다. 결국 아르카디는 오딘초바가 아닌 오딘초바의 동생인 카챠와 사랑하게 되어 결혼한다. 그리고 바자로프는 니힐리스트답게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인정하지 않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바자로프는 장티푸스에 걸려 죽은 시체를 해부하다 상처에 균이 옮아서 앓다가 죽는다. 삶에 순응하고 아르카디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데, 그의 젊은 반항적 기질과 갈등은 바자로프의 죽음으로서 사라지게 된다.

작년 말이었다. 툭하면 언성이 높아지며 아이와의 대화가 매끄럽지 않다고 느꼈었다. 뭔가 큰 잘못이나, 혹은 말실수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논쟁이 벌어졌다. 나는 될 수 있으면 부딪히는 걸 피하려고 대화가 민감하게 흐르면 적당하게 얼버무렸다. 아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또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아이의 생각을 읽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니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끝까지 내 주장을 고집하지 않는 것은 부모로서 나의 의무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심정과 비슷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책 한권을 읽고 나니 헛 헛웃음이 나왔다. 이 책 속에서 벌어지는 세대 간의 작은 갈등을 엿보고 나니 이것도 성장의 한 과정이구나 싶었다. 시대적 환경에 따라 조금씩 생각은 다르겠지만, 인간 삶의 구조는 비슷한 행태의 세대 간의 갈등을 겪는 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학작품을 통해서 3월의 둘째 주말은 나와 아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