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
렌조 미키히코 지음, 모세종.송수진 옮김 / 어문학사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부터 미스터리 소설이 좋아졌다. 퍼즐조각을 맞추듯 사건의 정황을 추리하다 보면 어느새 한 권의 책을 다 읽기 때문이다. 책 읽는 속도감도 빠르고, 다음 장면을 상상하게 되는 재미가 미스터리물의 매력이다. 이번에는 “미녀”라는 제목에 이끌려 미스터리 소설을 읽게 되었다. 책 설명에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능가하는 작품이라고 해서 더 기대를 하게 된 소설이다.

“미녀”는 총 8편의 단편으로 되어 있다. 슈스께와 부인의 관계가 일종의 성형된 관계로 표현되는 “야광의 입술”을 읽었을 때는 서글퍼졌다. 진실이나 순수한 감정들도 모두 더 아름답게 성형을 해야 한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그러한지도 모른다. 가면 속에 몇 개의 얼굴을 감추어 두고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면 되는 사회.

렌조 미끼히꼬는 이러한 것을 내가 아닌 다른 것을 보여주는 ‘연기’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이 책 속의 각 단편의 등장인물들은 연기를 위해 수없이 가면을 바꾸어 쓴다. 렌조 미끼히꼬의 작품에 의하면 ‘연기’는 곧 인물들의 진실한 삶이다. 성적 자극이 난무하지만 않았다면 좋은 주제를 가진 작품들이라 생각한다.

미녀에서도 자매간의 경쟁심이 부른 내면의 갈등이 묘한 방향으로 흐른다. 부도덕한 현실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러한 작품은 한 편으로 족해야 한다. 그러면 작품이 빛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미녀”에 실린 8편의 단편이 그렇고 그렇다는 느낌을 준다. ‘야광의 입술’에서도 그렇다. 신뢰와 믿음으로 이루어진 가족에 불신으로 덧칠하는 소재를 써야 할 이유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그러한 내용으로 심리 추리를 들어가다가 마치 정당한 행위라는 메시지를 주며 밝지 않은 세상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렌조 미끼히꼬의 작품은 다른 미스터리와는 차별성이 있다. 그것은 살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사람의 양면적인 얼굴이 미스터리의 전반을 끌고 다닌다. 여태 보아왔던 미스터리는 신체의 죽음으로 사람의 궁극적인 심리를 이용하고 있었지만, 렌조 미끼히꼬의 작품은 순수 심성이 죽은 얼굴에 가면을 씌워 이중의 연기를 하는 심리를 이용한다. 사실 제목이 제 값을 하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인 경우가 있다. 이번 작품은 그 반대다. 매혹적인 제목 “미녀”는 나를 유혹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게 맞다. 이만한 독설이면 이 책에 대한 이슈나 토론의 여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