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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비밀
틸만 뢰리히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가슴 저린 한 예술인의 삶 때문에 나는 일주일을 끙끙 앓았다. 카라바조. 로마에 사는 빈민을 모델로 성모와 성자를 그렸다고 한다. 책의 앞에 첨부된 그의 그림을 먼저 감상 했다.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그림속의 인물을 사실감 있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병든 바쿠스>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나약함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또 <음악 연주자들>에 나오는 소년들은 때 묻지 않고 순수한 세계를 보여주는데, 주인공들의 모습 보다는 뒷 배경으로 나오는 소년의 눈빛은 <병든 바쿠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비드>는 강하게 인상에 남는다. 화가가 살 던 시대에는 잔인한 참수가 많았던 혼란한 시대였음을 엿보게 한다. 그의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특징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캔버스 속의 인물들이 정면을 응시하지 않는다. 화가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어떤 것에 인물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빛과 그림자의 선명한 대비를 이용하는 것도 돋보이지만, 캔버스 속의 시선처리로 비밀스럽게 말하는 것이 일품인 예술가다.
카라바조는 미켈란젤로와 동명이라서 그의 고향 이름을 따 미술계에서는 카라바조라 불린다. “카라바조의 비밀”은 책 두 권 분량의 아주 두꺼운 전기적 성격을 가진 카라바조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다. 5살에 흑사병으로 아버지를 잃은 카라바조는 외할아버지 댁에서 처음 미술을 접한다. 흑사병은 중세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페스트다. 그것을 계기로 미켈레는 페테르차노의 도제로 4년간 그림을 배우기로 한다. 그곳에서 프란체스코에게 비정상적인 성을 강요받는다. 자유분방한 카라바조에게 4년은 프란체스코 때문에 치욕스럽기도 했지만, 훌륭하게 미술 수업을 마쳤다. 스승 페테르차노는 미켈레에게 그곳에 남아서 예술의 길을 가자고 권했으나 거절하고 로마로 갔다. 미켈레에게 로마는 생각보다 훨씬 살벌하고 고통스런 생활이었다. 그곳에서 병에 걸려 죽을 고비도 몇 번씩 넘겼고, 술과 폭력과 참지 못하는 성질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예술적 광기는 어느 누구도 따라오지 못해서 그의 작품은 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생활은 엉망이었지만 결국 그림에서는 성공을 한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시작 되지 않았다. 또 다시 그를 배반한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러다 젊은 화가는 서른아홉이라는 나이로 죽는다. 줄거리를 짧고 간단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의 이야기는 아주 강렬한 느낌이어서 지금도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나는 짧고 굵게 살기를 꿈꾼다. 그러나 아주 평범하게, 아주 일반적으로 살고 있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명예를 가지고 사는 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이렇게 가슴을 후비는 아픔으로 다가오는 예술인도 있다. 카라바조가 만약 밀라노에 남아서 스승과 함께 했다면 이렇게 바로크 미술에 한 획을 긋는 화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그냥 평범하게 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천재니까 스승 아래서도 명성이 자자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지 확률이니까. 파올라에게 돌을 던진 사건으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미켈레는 원래 태생이 자유분방하고 장난기가 심하다. 그러나 프란체스코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역으로 생각하면 프란체스코를 만나서 그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성장을 했지만, 불안을 견디기 위해 이를 악물고 그림에 더 매달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밀라노를 떠났으면서도 프란체스코의 영향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게이가 된다. 그리고 그 생활에 더 깊이 빠져들어서 예술이라는 핑계로 허우적댄다. 그러나 그의 문제아적 삶은 오히려 그가 추구했던 세속적이고 사실적인 그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했다. 평범한 생활인으로서는 낙오자였지만, 예술가로서는 행복했을 것이다. 이것은 소설이기에 어느 부분은 미켈레의 생과 같을 것이고, 어느 부분은 꾸며낸 이야기이다. 책을 다 읽었지만 아직도 그 소설 속에 있는 것 같은 흥분감이 든다. 아무나 살아내기 어려운 미켈레의 삶에 살을 덧붙인 이 소설이 영화화 된다면 꼭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