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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의 발달
문태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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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8월 1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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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8 04: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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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3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3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4 0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당신을 뒤흔드는 소설

 



과거의 흔적들을 뒤적이다 보면

내가 지금 떠올리고 있는

기억의 정확한 생성연도를 산출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기 따위의 연대기를 기록해 두는 인간은 아니며

더욱이 삶의 사실에 관계된 것들에

그닥 집착하며 살아가는 타입의 인간도 아니다.

 

사실이란 문득 또 하나의 환영에 불과한 것이어서

사소한 기억들도 때로는 피처럼 생생하면서도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공간은 무너져 있기 일쑤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들이란

내게 있어선 대개가 그렇게 새벽녘의 창에

형체 없이 어른거리는 물상처럼 보일 뿐이다.

과거에 있었던 일은 물론이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앞으로 생길 일도 내겐 모두가 그렇게 생각된다.

 

때로는 무엇에 집착하고 매달려도 보았지만,

오직 나의 이름을 부르며 내게 다가왔던 것들조차

얼마후면 한결같이 나를 외면하고 멀어져 갔으며

곧이어 또다른 일이 밀어닥치곤 했다.

 

나는 당장에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추스리는데 급급하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닥이 뚫린 배에서 정신없이 물을 퍼내듯이 말이다.

 

그리하여 내 가난한 젊은날의 책상 위에는

매양 밀린 숙제들이 잔뜩 쌓여 있어,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아무도 내 모습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윤대녕, [지나가는 자의 초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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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스무살 무렵에 이 책은 출간되었다.

맨처음 작가의 책을 읽은 것은

[은어낚시통신]이었나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였나.

그 후로 오랫동안 윤대녕이란 작가는

내가 가지고 있는 어둠을 스스로 보이는 사람이 되었다.

 

오랜만에 꺼내 본 책에는 굵게 표시한 곳에

연필로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 문장들이 당시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여전히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음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윤대녕은 아직도 내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림 : Van Gogh, "S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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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9 0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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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9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깜짝태그 : []








 

‘화려한 휴가’라는 표현이

그 날의 광주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1980년 5월 18일, 그 날의 작전명 "화려한 휴가"

 

광주 5·18은 나에게는 언제나

제주 4·3과 함께 연상되는 사건이다.

국가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무차별 학살.

정치나 권력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똑같이 매도되어 버리는

이 나라의 대표 불온색.

피를 상징하는 붉은 계열의 것들은 언제나 불편하다.

 

역사의 광풍 속에서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린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기구한 것인지, 나는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불행(?)하지 않은 시대에 평화롭게 자라난

내 세대의 사람들에게 있어

5·18이나 4·3은

그저 숫자로 기억되는 지나간 역사일 뿐이다.

아무리 지금에 와서 모두가 다함께

명예회복을 진상규명을 외친다 하더라도,

‘나’라는 주체가 빠진 그저 ‘그들’의 이야기로 회자된다.

그래서 어쩌면 더 냉정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어쩌면 더

영화의 멜로로 그들의 이야기를 덮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그 전개가 답답하기만 했다.

영화관 곳곳에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훌쩍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자극적인 장면들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내 눈은

머리채를 휘어잡히고, 두드려 맞고,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건 영화잖아라는 안도를 만들어냈다.

역사를 영화로 소설로 어떤 작품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이 영화에 공감하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우리가 외면한 채 지나온 역사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이야기되어야 된다고 믿는다.

 

그 이야기하기라는 행위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든,

후세들에게 당시의 사건들을

그저 역사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학살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다시 그런 일이

또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야기는 계속 되어야 한다.

 

그들이 마지막까지 외친

“사랑하는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우리의 형제자매가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기억해 주세요.”처럼

그들을 기억하는 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앞으로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만들어 나갈 것인가가 

 

결정지어질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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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극복하면 사랑은 사라질까요? 더 심화될까요?”

어느 날 미홍이 말했다.

“더 심화되겠지.”

진성이 대답했다.

“하지만 사랑을 극복하면 다른 모든 극복과 마찬가지로 점점 느낄 수 없어지고 유예되는 것이지. 그러다가 너무 깊어지면 사랑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잃어버리고 말야. 제 속에 있겠지만 실종되어 버리는 거야. 극복이란 그런 거야. 왜 사랑을 극복해야 하지?”

미홍은 자신의 위태로움을 말할 수는 없었다. 사랑을 어떻게 두려워하거나 귀찮아하거나, 거부할 것인가. 더구나 극복하려 하다니.

“사랑은 집착하는 거야. 두려움 없이 집착을 키우고 만에 하나 잃어야 할 때는 태산 같은 집착의 고통을 순순히 치르는 거야. 그게 사랑이지. 사랑을 절약하고 집착의 고통에 빠질까 봐 두려워하는 건 진짜 사랑이 아니야. 난 지금과 같은 사랑을 원해. 마음껏 사랑하는 사랑을. 만질 수 있고 당신 가랑이 속에 파고들 수 있고, 수없이 혀를 감고 당길 수 있는 이런 사랑을, 행위가 분명히 존재하는 매우 성적인 사랑을.”

“일주일에 두 번만 와요. 새벽엔 안 돼요. 밤 10시 이전에 올 수 있을 때만 내 방에 와요. 그리고 전화는 하루에 두 번만 하도록 해요. 저도 이제 일을 해야 해요. 사람을 만나러 다녀야 하고, 자료를 수집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죠. 그러니까 생활을 해야만 하는 거예요.”

 




진성이 말이 없었다. 그는 실은 바쁜 사람이었다. 그는 대체로 일주일에 두세 번쯤 11시경에 돌아오고 다른 날은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진성은 일주일 내내 미홍을 방문했다. 늦게 들어온 날은 눈을 붙인 뒤 새벽에 미홍의 벨을 누르곤 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심장이 칼에 베이는 듯 내 목에서 피 냄새가 올라와······. 난 실은 너무 바빠.”

그는 어린 남자애처럼 거의 울먹거렸다. 미홍은 이내 그 말을 취소했다. 심장이 베인 듯한 피 냄새가 그녀의 목 안에서도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일 같은 건 차차 어떻게 되겠지. 당분간 그를 사랑하고 남는 만큼만 하는 것이다. 사랑이 삶의 예외가 되는 때도 그저 시작의 한 시기일 뿐일 테니까. 어떤 사랑도 결국 일상의 틈 속에 스며들고 생활이 될 테니까. 그때엔 더 많은 일을 감당할 능력이 저절로 생길 테니까.



- 전경린, <열정의 습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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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많은 이들이 '연애시대'에 빠져 있을 때,

난 다른 세계에서 다른 것에 열광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열광이라는 말과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

꾸준히 무언가를 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나다.

 

올해 유난히 많은 것들이 변하고,

스스로 많은 장애에 부딪칠 때마다

나는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음을 원망했다.

모든 것이 시간 탓이고,

모든 것은 시간 때문에 벌어진 것이며,

시간만 있다면 이 모든 것은 평화로워 질 것이라고 말이다.

 

과연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그 '시간'을 만들어내는

'나'라는 존재를

외면한

시간 속에 '나'는 없었다는

그 '사실'을

인정할 '나'는 이미

너무 먼 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그 '달라짐'을 달리 볼 수 있었던 것은

'연애시대' 덕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의 드라마가 내가 고민하고 있었던 많은 것들을

함유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그 캐릭터들 속에서, 그 상황들 속에서

나는 상상하고, 이입하고,

열애에 빠져들었다.

 



뒤늦게 알게 된 이 드라마를 보느라

밤을 새면서, 나는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연애시대와의 열애가

나라는 인간을 다시 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면 과장일까.

 

모든 사랑은 지나가고, 아프고, 행복하지만,

우리는 매번 사랑에 빠진다.

그것은 삶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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