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편 읽고 이미 고개 끄덕이면서 허공을 향해 엄지 오백번 발사한 책

인간들 이야기
이스카리 유바 지음, 천감재 옮김 / 리드비 / 2024년 10월

일본 작가의 sf소설은 처음인데, 한국 sf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서 순식간에 재밌게 읽었다.

단편소설의 장점이 극대화되어있는 책. 짧은 분량으로 충분히 상상력도 자극하고, 여운도 준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스쳤던 여섯개의 세계가 자꾸 머리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앞으로도 일상 속에서 종종 떠오를 것 같다. 눈이 올 때, 라멘을 먹을 때…

제목인 <인간들 이야기>는 표제작인 『인간들 이야기』에서 따온 줄 알았는데, 그것도 맞지만 – 결국 이 단편들이 모두 보여주고자 하는 게 ‘인간’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결국 허구이기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동시에 우리 ‘인간’들의 이야기이기에,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유쾌하기도 하고, 동시에 다크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한데, 동시에 예리하기도 한 sf 단편집.

첫번째 단편인 <겨울 시대>가 내겐 임팩트가 컸다. 원래 눈이 오는 날이나 설원이 배경인 소설을 좋아하는데, 등장인물들의 상황이 합쳐져서 저 기억 속에 머물던 <설국>의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인 것 같다. 드넓게 펼쳐진 눈밭과 햇살을 만날 때면 시리지만 아름답게 반짝이는 얼음들…봄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

그리고 <중유맛 우주 라멘>. 일본소설 특유의 익살스러움이 도드라져서 즐겁게 읽었다. 우주 + 라멘…? 한 문장 안에 공존할거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던 단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건 역시 sf구나, 라는 걸 느꼈다.

아직도 여섯개의 세계가 아른거린다. 단편의 맛 중 하나는 시원섭섭함. 뒷이야기가 더 있었으면 싶다가도 여기서 끝나는 게 맞을 것 같다 싶은 어떤 단호함. 그래서 더욱 남는 여운이 아닐까…그런 기분좋은 시원섭섭함을 남기는 단편소설집이다.

조선시대 법정 추리극

조선 변호사 홍랑
정명섭 지음 / 머메이드 / 2024년 8월

역사 추리소설이라니…진짜 재밌게 읽었다. 

안그래도 요즘 추리소설에 관심이 있었는데 조선이라는 독특한 배경이 주는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실제 사건을 비틀어 구성한 이야기라는 점, 송사 절차와 과정이 실제와 유사하다는 점이 나를 조선시대로 데려다 놓기에 충분했고 법정 배경인 이야기들을 원래 좋아해서 그런지 정말 재밌었다.

시대극+추리+법정소설+실화바탕 이 모든 요소가 있는 책.

물론 나는 사실성을 판단하기엔 역사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지만, 간혹 사극에서 읭?스러운 장면을 만나는 것과 같은…그런 몰입이 깨지는 장면은 전혀 없었다. 시대극, 법정 배경의 소설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한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약한 자들을 대변해 싸워주는 변호사의 내용이라는 점이…인상적이었다. 

신과함께에 나오는 진기한 변호사가 약간 생각나면서~홍길동전이 믹스된 듯한 느낌도 들고. 요즘시대에도 억울한 약자들은 여전히 있고, 그런 사건들에 관심 갖는 걸 좋아하는 나로선 사이다 같은 부분들이 특별히 더 와닿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후기입니다.

삶의 수많은 고민들에 대한 철학의 시선

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8월

삶의 수많은 고민들에 대해 철학자들이 대답해주는 책이다.

나는 철학…줄곧 관심은 있어왔지만 사실은 철학에 대해 잘 모른다. (〃⌒▽⌒〃)ゝ

학창시절에도 기를 쓰고 사회과목을 피했어서 그런지…철학은 멀게만 느껴졌었는데 오히려 다 크고 나니 이제서야 교양철학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나와 같이 철학과 친하지는 않지만 철학이 하는 얘기들에는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내가 평소에 살면서 가지는 고민들을 철학자들이 해결해준다~!는 컨셉이어서 꼭 정독하지 않더라도, 평소 답을 얻고 싶었던 부분들을 골라 읽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사랑과 관련된 부분을 읽을 땐 문학이 얘기하는 사랑과 철학이 얘기하는 철학이 거리가 멀어서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보는 내내 철학자들, 너 T야?를 외치긴 했지만...오히려 철학이 뼈때리는 말을 더 많이 해주는 것 같다. 순간 문학소녀 자아가 나타나서 철학자들의 말에 맘속으로 반박하며 읽었는데 그래서 더 가볍게,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멀게만 느껴졌던 철학과 한발짝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후기입니다.

어렸을적, 나니야 연대기에 마음을 빼앗겨본 사람이라면 무조건 좋아할만한 책.

재뉴어리의 푸른 문
앨릭스 E. 해로우 지음, 노진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6월

문을 열면 또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판타지적인 설정과 함께 시작된다. 누구나 한번쯤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마법같은 환상의 세계로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충족시켜주는 책.

스스로의 앞길을 개척해나가는 여성의 이야기는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 모험과 마법이 더해진다면 그게 바로 이 책이다. 모험이 가득한 세계로 향하는 강인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 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나만의 푸른 문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 또한 나의 푸른 문인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책 자체가 모험을 부르는 푸른 문이 아닐까. 직접 경험해보지 못할 세계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푸른 문.
가끔은 이렇게 마법같은 책이 일상에 들어오는 것도 멋진 일인 것 같다.


(도서 제공 : 밝은 세상)

조선 여성들의 쌍방구원 서사

꽃이 부서지는 봄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35
한켠 지음 / 안전가옥 / 2024년 4월

조선 여성들의 쌍방구원 서사라니...심지어 세자빈과 궁녀의 사랑이야기라니~! 설정부터 너무 흥미가 생기더라구요. 그리고 읽는 내내 '휘몰아친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계속해서 사건이 휘몰아치는데, 그 속에서 또 갈등 관계는 첨예하게 드러나는 게 정말...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어요. 시대극은 정말 오랜만인데 잠은 오지 않고 자극이 필요했던 이 여름날 밤을 순삭시켜준 책이에요. 평범하고 흔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