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단식 - 머리를 쓰지 않고 발로 뛰지 않는 IT 중독을 벗어나라
엔도 이사오 & 야마모토 다카아키 지음, 김정환 옮김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IT중독은 개인과 조직을 불문하고 심각한 수준으로까지 악화되었다. 지금이야말로 '단식'을 단행해,

IT를 과잉 섭취하고 있는 직장이나 개인이 업무의 진행 방법을 일단 초기화해야 한다.

IT를 끊음으로써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그러나 지금은 잠들어 있는 힘을 깨우고,

정말 필요한 IT만을 골라 섭취함으로써 균형 잡힌 생활을 되찾는 것이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많은 부분을 IT에 의존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활동할 수 있는 힘을 상당부분 잃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기술의 혁신이라며 빠른 일처리와 업무경감을 기대하게 했던 IT 산업이지만, 이제는 사람이 IT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IT 자체에 끌려가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현실을 진단하고, ctrl+C와 ctrl+V로 대변되는 복사하기와 붙이기 수준으로 퇴화되고 있는 현재의 IT 세대를 향해 경각심을 일깨우고 자성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우리는 이미 사무실에 그리고 집에 1인 1PC를 가지고 있으며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발달로 걸어다니면서도 스물네시간 모두 IT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휴대폰을 깜빡 잊고 집에 두고 오거나, 사무실에 두고 퇴근을 하면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어 초조해 하고 불안증세가 나타나는 심각한 디지털 중독 증세를 보이기도 하고, 점점 편리해지고 활용도가 높아지는 기술력을 쓰다 보니, 이전에 IT 기술이라고 여겨졌던 초기 IT 기기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활용하는 방법을 까먹는 디지털 치매 증상도 더 심각해져 가고 있다.

 

정보기술의 발달은 정보의 홍수 시대를 불러왔고, 그 중 유용한 정보를 취사선택하기란 너무나도 어렵고 험난하다. 그래서 쏟아지는 무분별한 정보 홍수에 대응할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이 일단 모든 정보를 받고 거기서 중요한 정보들을 골라내기 위해서는 이전보다도 오히려 더 많은 시간적 노력과 수고들이 들어간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거기에 적합한 대응을 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금새 시간은 지나가고 정작 생산성이 있고, 활동적이고 창조적으로 써야 하는 시간을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보며 지내게 된다. IT 기기가 근처에 없는 삶은 이미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우리의 삶을 자정하고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 IT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IT를 지배하고 주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디지털 단식을 제안하고 있다. 음식을 먹을 때 과도하게 먹다가 살이 찌면, 먹는 음식의 양을 줄이고 적절한 운동을 통해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것처럼 이미 우리 삶에 들어와 있는 디지털 및 IT 기기의 사용과 활용은 고도비만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ICT'와 'BLT'라는 두 가지의 개념을 제시한다. 먼저, ICT는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Flood. 즉, 위에서 말했던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의 홍수를 가리킨다. BLT는 Babo's Long Tail(바보의 롱테일)로 바보들의 비생산적인 활동이 중단없이 계속된다는 현실을 풍자한다. 사실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것이긴 하지만,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려다가도 컴퓨터를 들여다보거나 스마트폰의 새로운 정보를 들여다보고 메신저를 통해 관계를 맺고 SNS로 자신을 드러내다 보면 정말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후루룩 지나가 버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IT가 비즈니스 구석구석까지 침투하게 되면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신의 업무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검색하고 단순히 복사하기와 붙여넣기를 통해 어떤 자료든 내가 조사한 것처럼 편집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며 이전에 다른 이들이 했던, 혹은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료들을 검색하여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확인하고 확보한 것처럼 일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일반 회사와는 다른 직종에 있기 때문에 디지털 단식을 읽으면서 나랑은 먼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 역시 디지털 중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일을 확인하고, 스팸을 걸러내고, 거기에서 필요한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흥미로워 보이는 정보를 확인하고, 또 이렇게 리뷰를 올리고, 메신저로 동료들과 업무에 관련된 연락을 하고, 그 외에 SNS 서비스인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이용해서 개인적 교류를 하고 관계를 맺다 보면 하루가 그렇게 빨리 지나갈 수가 없다. 또한 퇴근시간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SNS 서비스에 접속하고, 집에서는 보지 못했던 TV 프로그램을 실시간 DMB로 시청하거나 다운받아 보다 보니 그전만큼 책을 읽고, 혼자 사유하고, 조용히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시간이 많이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 동료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고 어쩌다가 내려가도 다들 각자의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무언가를 처리하느라 바쁘다. 바로 옆방에 있으면서도 직접 찾아가서 면대면으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핸드폰의 카톡을 이용하거나 메신저를 이용하여 대화를 한다. 급하고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데, 상대가 부재중일 때 메신저로 보내놓거나 메일로 보내놓는 것도 잦아졌고, 다른 사람의 시간에 대해 배려하기보다 그냥 내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일단 메신저를 날리고 보는 식의 일들이, 서로 확인하지 못하는 정보가 수두룩하게 쌓이게 하고, 그 많은 정보를 걸러내기는 점점 더 어렵게 되고 있는 것이다.

 

정보 수집이나 처리와 관련된 직종에 있는지라 점점 더 방대해지는 쓰레기 정보가 진짜 필요한 정보를 덮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를 검색한다고 해봐도, 그 검색의 내용에 가장 적합한 자료를 찾아내기까지는 수없이 클릭하고 확인하고 클릭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들어간다. 실제로 필요한 정보를 정확율과 재현율을 생각하여 rank하거나 sort 해 주지 않기 때문에 그런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내가 찾는 것은 2012년의 최신 정보인데 10년 전의 정보가 먼저 튀어나오기도 하고 그럴듯한 정보에 클릭했는데 속 빈 강정인 경우도 예전보다 너무나 많아졌다. 이제 IT중독은 일상이 되었고, 모두가 스스로 중독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만큼 중독된 상태라서 자각증상조차 없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공감하고 자성하게 되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기업의 CEO들이나 관리자급에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디지털 중독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이제는 더 이상 IT에 지배받는 것이 아닌 디지털 단식을 통해 인간의 창의성과 사고의 유연함을 지키면서 IT도 활용하여 업무를 유용하고 원활하게 처리하면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 겠다는 생각이 몹시 들었다.

 

뭔가 두서없이 나열한 것 같은데 디지털 단식이라는 책을 읽으면 그 안에서 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IT 중독이 중독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지금 세대에 가장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알아야 하는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제 나 부터도 스마트폰의 노예로, 또 컴퓨터의 노예로, SNS의 노예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IT 기기들을 주도하고, 유용할 수 있도록 스스로의 디지털 자립심을 길러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p.s 표지 디자인이 심플하고 알기 쉬워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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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라 - 하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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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을 가장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은 유행도 아니고 올바른 것도 아니고 즐겁게 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아름다운 것,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에만 사람은 매료됩니다."

 

<줄거리>

부유한 음악가 집안에서 자란 나는 자연스럽게 첼로를 배우고 음악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교만하고 현학적이라 외톨이였지만 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가면서 음악적인 교류를 나누는 친구도 생기고 오케스트라와 연주회 등에 참여하며 어려운 미션들도 수행해 나간다. 그리고 음악으로 가득차 행복했던 나날들을 더 빛나게 해 준 첫사랑이 찾아온다.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를 협주하면서 사랑은 더욱 깊어가고 미래는 이 아름다운 협주처럼 달콤하기만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미끄럼틀 같은 운명의 내리막길을 굴러 아래에 있던 사람들을 들이박는다.

 

배를 타라 2권부터는 본격적인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껏 들떠 2개월 간의 독일에서의 생활을 마친 사토루.

사토루는 일본으로 돌아온 이후, 자신을 대하는 아유카와와 미나미의 태도가 눈에 띄게 변한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미나미가 항상 창백한 얼굴로 자신을 피하는 것도 신경 쓰인다. 그리고 미나미의 집에 전화를 해도 찾아가도 어머니는 냉담한 태도. 사토루는 자신이 없던 두 달 동안 미나미를 너무나 힘들고 외롭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미나미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생각하지만 정작 원인은 다른데 있었다. 결국 그 사건으로 미나미는 학교도 그만두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게 되고, 가슴 아프게 깨진 첫사랑의 고통에 괴로워 하던 사토루는 가장 잘 통하고 좋다고 생각했던 철학담당의 가나쿠보 선생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이 일로 가나쿠보 선생님은 결국 학교에서 해고당하고, 사토루는 자신의 잘못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니 어쩌면 두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변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스스로를 증오하고, 첼로마저도 포기하게 된다.

 

사춘기 때는 예민하기 때문에 어떤 작은 발단에 의해서 모든 것이 걷잡을 수 없을만큼 뒤틀려 버리게 되는 일들이 생긴다. 나는 그 당시 나 스스로의 감정조차 주체할 수 없어서 그냥 아주 작은 일을 했을 뿐인데, 한 마디, 한 순간의 행동으로도 돌이키기 힘든 사고를 치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다. 이 책 속에서의 사토루도 그렇다. 사토루는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를 협주하면서 아름답고 반짝반짝 빛나는 장미빛 미래를 상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별로 길지 않다고 생각했던 두 달 간의 독일행 사이에 미나미와 그의 사이는 크게 어긋났고 사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것이었다. 그리고 상처받은 사토루는 마치 짐승처럼 다른 사람 즉, 가나쿠보 선생님을 들이받고, 본인의 첼로마저도 버리게 되었던 게 아닐까.

사실 인생의 가장 격랑기인 사춘기에 저지른 작은 실수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무겁고 용서받을 만한 것도 아니어서 사토루가 이 글을 써야 했던 동기와 이유가 충분히 짐작가기도 했지만, 글쎄 자신이 했던 일들을 적나라하게 대면한다고 해서 그 고통이 무뎌지고 이제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괜찮아질까?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그것이 괜찮아 지는 것은 아닐 것 같아서, 나는.. 사토루가 이 글을 쓰면서 몹시 가슴이 힘들고 때로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이것을 쓰다가 엉엉 울어버리기라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혹시 엉엉 우는 것조차 너무 그들에게 미안해서 끓어오르는 가슴을 붙잡고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터져라 두드리고 있진 않았을런지.. 나는 사토루의 마지막 고백을 들으며 그런 풍경이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작중 화자인 사토루의 고백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한 사람의 추억 속을 여행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눈부시도록 푸르게 빛났던 지난 날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사토루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어려운 고백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사토루는 어쩌면 세상을 향해 항변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나도 최선을 다했노라고, 나도 내가 겪은, 속한 이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단지 너무나 몰랐고 너무나 어렸을 뿐이라고.. 어리다고 해서 모든 게 용서될 수 없는 것은 알고 있지만 배를 타라..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나는 사토루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생겼다. 모두들 그런 추억 쯤.. 그런 아픈 기억쯤은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한다면 나 역시 그렇기에 사토루를 무조건 비난할 수도, 아니면 마냥 동정할 수도 없었다.

 

언제나 쉬운 길은 없다. 죽을만큼 노력해도 뭔가가 이뤄질 듯 이뤄지지 않기도 하고, 그냥 포기한 것처럼 손 놓고 최소한도 할 수 있는 것만 했는데도 의외로 일이 잘 풀리는 경우도 생긴다. 결국 돌고 돌고 돌아 마지막에 깨닫게 되는건 이 책에서의 비유처럼 우리가 이제는 더 이상 뱃멀미를 하지 않는다고 할 지라도. 여전히 우리 생의 배는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고. 한순간 우리는 내가 뱃멀미를 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배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배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고, 또 언제 큰 폭풍이 몰아닥쳐 안전하다고 생각한 나를 배 갑판으로 내동댕이쳐 버리는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배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라보고 꿈꾸는 그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는 적어도 방심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삶을 붙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속에서..>

p.145

거기에는 마음을 위로할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난 그것에 매달렸다.

왜냐하면 그때 내가 무엇보다 두려워하고 피하고 있었던 것이 스스로를 용서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p.207

그런데도 나는 예전처럼 가능한 한 변한 게 없는 것처럼 수업을 받고 레슨을 받으러 다니고,

누군가의 농담에 웃기도 하고 스스로 농담을 하기도 하면서 지냈다.

 

p.307

나에게는 생각해야 할 것, 느껴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음악은 그 어느 것 하나 해결해주거나 없던 일로 해주지 않았다.

더 좋은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지도 않았다. 그래도 음악은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 밝음으로, 활력과 율동감으로,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음악은 우리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우리는 그런 음악을 만났다. 음악을 공유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느꼈다고 나는 믿는다.

 

p.361

배를 타라!

살아가고 사유하는 나름의 방식에 대한 전체적인 철학적 정당화가 각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다시 말해 온기와 축복과 결실의 빛을 내려주는 태양처럼, 칭찬과 비난에 초연한 채 자족적이고, 풍요롭고,

관대하게 행복과 호의를 만들어 내려면 철학은 어떠해야 하는가

.

.

도덕의 지구도 둥글다! 도덕의 지구도 양 극점을 가지고 있다! 양 극점도 실존의 권리를 지니고 있다!

발견해야 할 하나의 세계가 있다! 하나 이상의 세계가 있다! 배를 타라, 철학자들이여!

-니체의 글 인용문 중에서.

 

p.362

뱃멀미를 하는 건 괴롭다. 그래서 파도가 잦아들길 바라지만 파도는 잦아들지 않는다. 파도가 잦아들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바다가 평온해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뱃멀미는 언젠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흔들림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뱃멀미가 사라졌을 때 배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른들의 거짓말이다. 어른들은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한다. 그것도 자신보다 젊은 사람에게. 뱃멀미가 가벼워졌다고 해서 배가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해도 잊어서는 안된다.

 

p.368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파도에 흔들리면서 항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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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라 - 상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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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의 나라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음악이라고.

의미도 없고, 누군가를 위해서도 아니고, 단지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내는 여러가지의 음.

그것이 음악이다."

 

  요코야마 혼모쿠에서 음악을 하는 가족들 사이에 둘러싸여 태어난 쓰시마 사토루 군. 여러가지 어려운 책을 읽고, 겉으로 아는 지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스스로 굉장히 뛰어나다고 여기며 살았던 그런 아이. 이 작품의 화자는 현재 나이가 어느 정도 되었지만 여전히 아이 때의 기억을 간직한 진정한 어른이 아니라고 스스로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킨 한 사건을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직면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그런 사토루의 초등, 중등, 고교시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음악이 익숙한 집안의 분위기에 따라 피아노를 배우다가 첼로를 시작하게 되었고, 니체의 철학에 심취해 있는 중학 3학년생 사토루.

첼로로 예고에 시험을 쳤으나 떨어진 후, 할아버지가 학장으로 있는 신세이 대학교의 부속 고등학교이자, 일반계와 예술계를 모두 뽑는 신세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생애 첫 좌절이라 할 수 있는 예고 탈락이었지만 신세이 고교에서 새로운 삶의 서막을 경험하는 사토루. 원래 신세이는 여학생 중심의 학교였기에 같은 학년에 남학생은 달랑 6명뿐. 여학생은 200명 가까이 되는 학교.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그 사건..에 핵심이 되는 첫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자신의 연주를 잘하고 싶어하는 미나미 에리코.

 

  1권은 사토루가 학교에 적응하고, 미나미를 알게 되고, 둘이 관계를 맺어가는 내용이 담겨 있다. 둘 다 악기를 연주하는 학생들이고, 음악에 대한 관심(조예)이 깊기 때문에 책의 전반에 걸쳐 각종 음악과 오페라, 그리고 오케스트라에 관련된 내용들이 나오고 거의 모든 대화들이 음악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았을 때 어렵게 느낄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지만.. 개인적으로는 음악적인 대화들이 흐르면서도 전혀 문체 자체에는 음악적인 부분이 없달까.. 해서 조금 아쉬운 면이 있었다. (예를 들어, 국내 작가 중 김중혁의 글을 보면 전반적으로 음악이 흐르는 느낌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사토루의 고민과 또 그가 사춘기를 겪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고 첫사랑을 하고 그런 내용들이 평범하면서도 좀 독특한 분위기 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책에 빠져서 읽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후지타니 오사무 작가의 작품은 처음으로 만나보는데, 요시모토 바나나가 최근에 출간한 <안녕, 시모키타자와>라는 책에서의 픽셔네스가 바로 이 작가의 가게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하니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일본작가가 쓰는 작품들을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뭔가 함축된 의미들을 많이 담고 있는 경우가 있고, 무라카미 류처럼 대놓고 솔직하게 다 까발리는 느낌도 있고, 요시모토 바나나라던가 에쿠니 가오리처럼 문장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깔끔함 그리고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들이 많다. 그런데 이 후지타니 오사무의 작품은 좀 더.. 한국적이라고 해야 하나?..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세세하면서도 함축된 의미들이 있고, 또 한국작가들의 책처럼 문맥과 어간 사이의 의미들이 더 생각해 보아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고.. 이제까지의 일본 작가가 줬던 느낌과는 조금 다른 면이 많아서 책을 읽는 동안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지명이 아니면 다른 어떤 곳에서 씌여진 책이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아직 1권밖에 읽지 못해서 결론이 어떻게 날지 굉장히 궁금한 상태인데 도대체, 사토루가 나이가 든 지금에 회고하고 있는 그 때의 부끄러운 자신의 행동과 모습은 무엇일까. 그의 인생을 완전히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다는 그 사건은 무엇일까..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나의 생애에서 일어난 사건을 되돌아보면서 읽게 되는 책이어서 좋았다. 일본 소설들은 대체적으로 너무 가볍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는데 진지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새로운 일본소설의 느낌을 원한다면 읽어보길 권해주고 싶다.

 

p.s : 그런데 왜 제목이 <배를 타라> 일까?.. 무슨 의미가 있는지 2권을 읽으면 알 수 있으려나. 2권을 읽으러 가야겠다~

 

<책 속에서..>

p.8

사람은 성인식을 통해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취직을 하거나 결혼을 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건 마치 교통사고처럼 어떤 시기에 하나의 경험을 하면서 누군가에 의해 떠밀리듯 어른이 되어 버린다. '좋아, 어른이 되어야지' 먼저 결심을 하고, 그 다음에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인간은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다.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어도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나도 그런 어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p.95

언제 어디서나 밝고 즐겁게 살지 않으면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인가. 그런 건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면 밝은 기분일 때는 밝게, 슬플 때는 슬프게 사는 것이 좋을까. 그것은 즉 기분대로 살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것은 좋은 것일까. 행복한 삶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기분대로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면, 왜 행복이 아닌 걸까. 행복이라면 왜 행복인 걸까. 여러분, 이것이 바로 철학이다.

내가 말하면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렇다. 즉, 생각하는 것, 끝없이 계속 생각하는 것. 이것이 철학이다.

 

p.101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크리톤 중에서

 

p.131

역시 그렇게 연습해서 모두의 소리가 딱 맞을 때 오케스트라는 정말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된다. 어떤 솔로 악기보다도 다이내믹하고 섬세해서 다채로운 소리를 낼 수 있다. 모두 힘을 합하여 그 소리를 만들어냈을 때의 기쁨, 그것을 나는 음악의 진정한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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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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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마지막으로 해 주실 충고는 없어요? / 살아남아라."

 

폐허가 된 북미 대륙에 건설된 독재국가 판엠. 판엠의 중심부에는 판엠의 모든 부가 집중된 캐피톨이라는 이름의 수도가 있다.

캐피톨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12개의 구역은 캐피톨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그때부터 판엠의 공포정치가 시작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헝거 게임'은 해마다 12구역에서 각기 두 명씩의 십대 소년, 소녀를 추첨으로 뽑은 후, 한 명만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 죽고 죽이게 하는 잔인한 게임. 지만 캐피톨 사람들에게는 24시간 리얼리티 TV쇼로 생중계 되는 일종의 신나는 유희다.

12구역에서 뽑힌 24명의 십대 소년 소녀들은 드디어 어떤 위험이 도사리는지도 모르는 경기장에 던져진다. 죽지 않으려면 먼저 죽여야 한다.

흡사 일본의 만화 배틀 로얄이나 잔인한 생존게임의 실시간TV중계로 논란을 일으켰던 미국의 모 영화의 내용과 흡사한 듯도 하지만 설명에서 씌여 있는 만큼 잔인하거나 끔찍하거나 슬래셔 하거나 하드코어는 아니라는 것을 일단 얘기해 두고 싶다.

상황은 충분히 잔인하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청소년들이 읽어도 무리 없을 정도로 온건한 편이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책을 받은 날 다 읽기는 했는데 리뷰를 쓸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거의 일주일이 되어 가는 지금에서야 리뷰를 쓰게 되었다. 처음에 책을 읽었던 그 흥분되고 두근두근한 느낌은 지금은 많이 줄어든 상태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조금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이 작품에 대해 평가하고 이야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을 혹은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한 판타지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매력의 조건은 바로 캐릭터 자체가 지니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헝거게임은 매력적인 그리고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사람의 목소리가 살아서 들릴 것 같은 명확한 캐릭터 표현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겠다.

 

주인공인 캣니스 에버딘(별명 캣닙)은 광부로 일하던 아버지의 사망 후 넋이 나가버린 엄마와 어린 여동생 프림과 함께 살고 있다. 엄마가 엄마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캣니스는 살아남기 위해서 금지된 숲에서 사냥을 하고 사냥감을 음식과 물물교환해서 엄마와 프림의 생활을 가능하게 했다. 캐피톨이 아닌 총 12개의 구역들 중에서도 가장 변두리에 속하는 12구역에 사는 캣니스는 헝거게임에 대해 마을 사람 모두가 그렇지만 애써 외면하려 하고, 추첨날 이외에는 그 날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어쨌든 지금 당장 먹을 게 없고 지금 당장 생활을 이어나가야 하니까 말이다. 캣니스는 몸이 민첩하고 가벼운 편이고, 활을 잘 쓴다. 그리고 운명의 그 날,

 

헝거게임의 참여대상자는 12세에서 18세까지의 십대청소년. 가족을 먹여살릴 배급표를 타기 위해 이름을 여러번 적어넣은 탓에 그녀의 이름 캣니스 에버딘이 적힌 쪽지는 스무개가 넘게 있다. 여동생인 프림 에버딘은 이제 12살이고, 추첨함에 처음으로 이름을 넣는 나이가 되어 이제 한 장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정말 이건 무슨 일인지 하필이면 프림의 이름이 호명된다. 캣니스는 생각할 틈도 없이 손을 들어 동생 대신 자원하고 사람들은 그녀에게 응원의, 그리고 안쓰러움이 섞인 시선들을 보낸다. 무대 위로 올라간 캣니스 다음으로 호명된 남자아이. 캣니스가 배고파할 때 엄마 몰래 빵을 태워 그녀가 가져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빵집아들 피타 멜라크.  

12구역에서 헝거게임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승리자였던 술주정뱅이 헤이미치의 지원을 받으며 캐피톨로 향하는 캣니스와 피타.

두 사람은 생존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결국 두 사람이 남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되는 생존을 위한 잔인한 게임. 그들은 이제 정글같은 경기장에서 스스로의 목숨을 끝까지 안전하게 지키면서 다른 사람을 공격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캣니스와 피타, 그리고 11구역에서 뽑힌 작은 12살 여자아이 루, 헝거게임 전문 격투사로 키워진 카토 등 각각 살아있는 캐릭터들이 작품을 더욱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주인공급 외에도 조연에 가까운 혀가 잘린 빨간 옷의 여자아이라던가, 캣니스와 피타의 의상을 담당하는 시나 등..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아서 더욱 재미있는 헝거게임.

 

책을 덮자마자 다음 권 내놔!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 버럭..ㅎ

캣칭파이어와 모킹제이도 어떤 내용일지 너무 궁금해서 다음권을 구입해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판타지 소설이란 모름지기 이 정도로 배경이 되는 시대나 장소에 대한 사회관과 가치관이 명확한 경우가 가장 재미있다.

자신이 쓰려는 내용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받아들인 후에 쓴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나서 읽는 독자로서도 굉장히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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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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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때는 늦었다. 이미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에는 울긋불긋 요란하던 간판들도 춥고 흐린 날씨 때문인지

모두 다 회색으로 보였다. 그건 마치 이 도시의 색깔인 것만 같았다." 

 

일종의 역설이라고 보면 될까.. 제목에서 느껴졌던 활기차고 희망찬 느낌과 달리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음울하고

출구라고는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저 종교를 통해 위안을 얻으며(사슈카이-불교의 한 종파), 불륜과 섹스를 통해 욕망을 해소하고(공무원),

자신의 환상 속으로 여고생을 납치하며, 퇴임 후에도 권리를 주장하는 지역의원의 심장마비를 방치하는 등

각자 주어진 상황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보다는 무엇을 하기를 포기하는 삶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마치 옴니버스처럼, 그냥 병렬식으로 이어지던 각자의 이야기는 마지막 지점에서 조우한다.

커다란 자동차 추돌 사고의 현장에서 각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또 애쓰게 된다.

그리고 그 노력은 커다란 회색의 도시에서 아무런 의미 없이 버려지는 또 하나의 헛수고가 된다.

 

오쿠다 히데오는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문제를 건드리고 그것들을 재미있게 혹은 기발하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는 작가다.

한국 내에서 그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킨 문제작 공중그네를 통해서 그랬고 공중그네의 후속인 인 더 풀이나

그의 생각이 잘 반영된 것처럼 보이는 남쪽으로 튀어, 그리고 다양한 욕망의 군상들을 다룬 Girl, 마돈나 등을 통해서도 보여져왔다.

그런데 이 책은 평소의 오쿠다 히데오와는 사뭇 다르다. 그만의 재기발랄하고 쓴웃음을 짓게 하는 인간 군상들은 없으며

각자 독특함으로 무장한 캐릭터들도 평소와 달리 조금 더 현실에 가까운 느낌이어서

현실을 벗어난 어떤 카타르시스를 원하고 그의 책을 선택한 독자들에게 일종의 당황스러움을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는 여전히 변함없는 듯 하다. 커다란 도시 각자의 특징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어려움과 노고와 배신과 치정과 살기 위한 각자의 의미 없는 혹은 잉여적인 노력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 책의 제목인 꿈의 도시가 역설임을 깨닫게 된다.

꿈의 도시라기 보다는 꿈을 잃게 하는 도시? 꿈을 잃은 도시 정도의 제목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책.

 

최근 책을 집중해서 잘 읽지 못해서 읽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곱씹어야 할 거리들이 많았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3월 1일.. 드디어 오쿠다 히데오의 꿈의 도시를 다 읽으면서

내일을 위해 나의 미래를 위해 내가 지금 이 회색 도시에서 어떤 실제적 노력을 해야 할지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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