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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루티드
나오미 노빅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에서 공군이 용 여러마리를 활용하여 두 나라가 전투를 벌였다" 이라는 재미있는 상상으로 탄생했던 책 테메레르. 놀랍게도 그 책은 작가의 처녀작이었다. 처녀작으로 엄청난 이야기를 들고 왔던 그 작가, 나오미 노빅의 새로운 책이 나온다고 해서 또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를 들려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벤트에 응모! 아직 편집도 끝나지 않은 새 책을 가장 먼저 만나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업루티드는 평범했던 한 소녀의 삶을 따라가며 그녀의 생에서 일어난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들에 대해 보여준다. 책의 첫 페이지를 펼쳐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단숨에 읽어내려 갔는데, 책을 읽은 시간은 2~3시간 남짓이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까 내가 그동안 그 소녀와 함께 생을 살아낸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알수 없는 전율과 감정이 느껴졌다. 그만큼 업루티드는 서사가 뛰어나고 묘사가 생생해서 내가 이야기 속으로 완전히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무시무시한 숲 우드, 그 옆의 골짜기에 살고 있는 소녀 니에슈카. 그녀의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특별한 의식이 하나 있다. '우드' 로부터 마을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마법사 드래곤이 10년에 한 번, '우드' 근처 마을에서 소녀를 뽑아 그의 성으로 데려간다. 그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10년 후에 드래곤의 탑에서 나온 소녀들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그들은 지나치게 좋은 옷을 입고, 왕의 조신들이 쓰는 말투를 쓰며, 이전엔 고향이었던 골짜기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도시로 떠나버린다. 마법사 드래곤에게 딸을 내주는 건 누군가 수군거리듯 제물로 바치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렇다고 기분 좋은 일도 아니다. 골짜기에 있는 마을은 그리 많지 않아도 자신의 딸을 내주게 될 확률은 언제나 있었고 드래곤은 어느 해 시월에서 다음해 시월 사이에 태어난 열일곱살 소녀 하나만을 데려갔다. 게다가 드래곤이 데려가는 소녀들은 가장 예쁜 소녀이거나 가장 특별한 소녀들이었다. 니에슈카가 열일곱살이 되던 해는 니에슈카의 마을에서 소녀가 차출되는 때였는데, 모든 사람이 이 마을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리하고 친절한 카시아가 드래곤이 선택하는 소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데 지금.. 이 상황은 뭐지? 드래곤은 귀찮다는 듯이 니에슈카에게 공을 건넸고, 니에슈카는 더이상 어떤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카시아가 아니라 나라고? 도대체 왜?' 이해할 수 없어하는 니에슈카를 아랑곳하지 않고 작별인사를 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드래곤은 자신의 탑으로 니에슈카를 데려간다.
드래곤의 탑에서 생활하고 성장해 가면서 니에슈카는 '우드'가 그냥 숲이 아니며 이제까지 드래곤이 마법으로 '우드'의 확장을 막아왔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된 소녀가 된 이유가 무엇인지도 깨달아가기 시작한다. 이전과는 다르게 '우드'의 세력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골짜기 마을들에서는 각종 사건들이 일어난다. 드래곤이 다른 사건을 처리하러 간 사이, 니에슈카의 고향마을에도 사건이 일어나고 니에슈카는 고향마을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탑을 나서면서 놀라운 일들이 시작되는데... 과연 '우드'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곳에 잠들어있는 존재인 '워커'는..? 니에슈카는 과연 골짜기 마을과 더 나아가 이 나라를 '우드'의 끔찍한 위협으로부터 드래곤과 함께 지켜낼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어떤 때는 온몸이 저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고, 미칠듯한 두려움에 심장이 쿵쿵대기도 했으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기도 했다. 테메레르 때도 대단한 작가라고 느꼈지만, 특히 이번 업루티드를 통해 작가는 우리를 특별한 세계로 초대한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나는 때로 니에슈카가 되고, 때론 드래곤이 되고, 때로는 워커에 의해 '우드'의 나무에 영혼이 묶여버린 한 이름없는 자가 되기도 한다. 모든 생명의 근원인 아름다운 숲, 그리고 그 숲속에 숨겨진 잔인하고 무섭고도 슬픈 비밀. 무언가를 알게 되고 나면 그 후에 보이는 것은 이전과 같지 않다는 말이 있다. 업루티드 속의 그 깊은 이야기에 빠져 정신없이 책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야 큰 숨을 내쉴 수 있었던 나는, 이제는 업루티드를 몰랐던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나왔던 수많은 소설의 공간과는 또다른 새로운 세계, 그 속에서 숨쉬고 움직이고 최선을 다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니에슈카를 보면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나는 그저 그런 보잘 것 없는 사람일 뿐인데', '그렇게 대단한 건 뭔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거지'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세상을 뒤집어 놓을만한 재능이나 마법은 아니더라도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않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니에슈카처럼 자신을 믿고, 나만의 특별함을 발견하여 가는 과정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아끼는 소중한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기를. 내가 그 일에 나 자신을 던질 수 있기를.
무엇보다 그 어느 누구도 내게 주어진 삶을 포기하지 않고, 평범하고 모자라기까지 할 수 있지만 나만의 '특별함'을 발견하는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