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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라 - 하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을 가장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은 유행도 아니고 올바른 것도 아니고 즐겁게 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아름다운 것,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에만 사람은 매료됩니다."
<줄거리>
부유한 음악가 집안에서 자란 나는 자연스럽게 첼로를 배우고 음악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교만하고 현학적이라 외톨이였지만 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가면서 음악적인 교류를 나누는 친구도 생기고 오케스트라와 연주회 등에 참여하며 어려운 미션들도 수행해 나간다. 그리고 음악으로 가득차 행복했던 나날들을 더 빛나게 해 준 첫사랑이 찾아온다.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를 협주하면서 사랑은 더욱 깊어가고 미래는 이 아름다운 협주처럼 달콤하기만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미끄럼틀 같은 운명의 내리막길을 굴러 아래에 있던 사람들을 들이박는다.
배를 타라 2권부터는 본격적인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껏 들떠 2개월 간의 독일에서의 생활을 마친 사토루.
사토루는 일본으로 돌아온 이후, 자신을 대하는 아유카와와 미나미의 태도가 눈에 띄게 변한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미나미가 항상 창백한 얼굴로 자신을 피하는 것도 신경 쓰인다. 그리고 미나미의 집에 전화를 해도 찾아가도 어머니는 냉담한 태도. 사토루는 자신이 없던 두 달 동안 미나미를 너무나 힘들고 외롭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미나미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생각하지만 정작 원인은 다른데 있었다. 결국 그 사건으로 미나미는 학교도 그만두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게 되고, 가슴 아프게 깨진 첫사랑의 고통에 괴로워 하던 사토루는 가장 잘 통하고 좋다고 생각했던 철학담당의 가나쿠보 선생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이 일로 가나쿠보 선생님은 결국 학교에서 해고당하고, 사토루는 자신의 잘못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니 어쩌면 두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변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스스로를 증오하고, 첼로마저도 포기하게 된다.
사춘기 때는 예민하기 때문에 어떤 작은 발단에 의해서 모든 것이 걷잡을 수 없을만큼 뒤틀려 버리게 되는 일들이 생긴다. 나는 그 당시 나 스스로의 감정조차 주체할 수 없어서 그냥 아주 작은 일을 했을 뿐인데, 한 마디, 한 순간의 행동으로도 돌이키기 힘든 사고를 치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다. 이 책 속에서의 사토루도 그렇다. 사토루는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를 협주하면서 아름답고 반짝반짝 빛나는 장미빛 미래를 상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별로 길지 않다고 생각했던 두 달 간의 독일행 사이에 미나미와 그의 사이는 크게 어긋났고 사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것이었다. 그리고 상처받은 사토루는 마치 짐승처럼 다른 사람 즉, 가나쿠보 선생님을 들이받고, 본인의 첼로마저도 버리게 되었던 게 아닐까.
사실 인생의 가장 격랑기인 사춘기에 저지른 작은 실수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무겁고 용서받을 만한 것도 아니어서 사토루가 이 글을 써야 했던 동기와 이유가 충분히 짐작가기도 했지만, 글쎄 자신이 했던 일들을 적나라하게 대면한다고 해서 그 고통이 무뎌지고 이제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괜찮아질까?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그것이 괜찮아 지는 것은 아닐 것 같아서, 나는.. 사토루가 이 글을 쓰면서 몹시 가슴이 힘들고 때로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이것을 쓰다가 엉엉 울어버리기라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혹시 엉엉 우는 것조차 너무 그들에게 미안해서 끓어오르는 가슴을 붙잡고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터져라 두드리고 있진 않았을런지.. 나는 사토루의 마지막 고백을 들으며 그런 풍경이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작중 화자인 사토루의 고백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한 사람의 추억 속을 여행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눈부시도록 푸르게 빛났던 지난 날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사토루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어려운 고백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사토루는 어쩌면 세상을 향해 항변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나도 최선을 다했노라고, 나도 내가 겪은, 속한 이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단지 너무나 몰랐고 너무나 어렸을 뿐이라고.. 어리다고 해서 모든 게 용서될 수 없는 것은 알고 있지만 배를 타라..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나는 사토루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생겼다. 모두들 그런 추억 쯤.. 그런 아픈 기억쯤은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한다면 나 역시 그렇기에 사토루를 무조건 비난할 수도, 아니면 마냥 동정할 수도 없었다.
언제나 쉬운 길은 없다. 죽을만큼 노력해도 뭔가가 이뤄질 듯 이뤄지지 않기도 하고, 그냥 포기한 것처럼 손 놓고 최소한도 할 수 있는 것만 했는데도 의외로 일이 잘 풀리는 경우도 생긴다. 결국 돌고 돌고 돌아 마지막에 깨닫게 되는건 이 책에서의 비유처럼 우리가 이제는 더 이상 뱃멀미를 하지 않는다고 할 지라도. 여전히 우리 생의 배는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고. 한순간 우리는 내가 뱃멀미를 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배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배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고, 또 언제 큰 폭풍이 몰아닥쳐 안전하다고 생각한 나를 배 갑판으로 내동댕이쳐 버리는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배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라보고 꿈꾸는 그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는 적어도 방심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삶을 붙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속에서..>
p.145
거기에는 마음을 위로할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난 그것에 매달렸다.
왜냐하면 그때 내가 무엇보다 두려워하고 피하고 있었던 것이 스스로를 용서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p.207
그런데도 나는 예전처럼 가능한 한 변한 게 없는 것처럼 수업을 받고 레슨을 받으러 다니고,
누군가의 농담에 웃기도 하고 스스로 농담을 하기도 하면서 지냈다.
p.307
나에게는 생각해야 할 것, 느껴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음악은 그 어느 것 하나 해결해주거나 없던 일로 해주지 않았다.
더 좋은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지도 않았다. 그래도 음악은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 밝음으로, 활력과 율동감으로,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음악은 우리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우리는 그런 음악을 만났다. 음악을 공유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느꼈다고 나는 믿는다.
p.361
배를 타라!
살아가고 사유하는 나름의 방식에 대한 전체적인 철학적 정당화가 각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다시 말해 온기와 축복과 결실의 빛을 내려주는 태양처럼, 칭찬과 비난에 초연한 채 자족적이고, 풍요롭고,
관대하게 행복과 호의를 만들어 내려면 철학은 어떠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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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지구도 둥글다! 도덕의 지구도 양 극점을 가지고 있다! 양 극점도 실존의 권리를 지니고 있다!
발견해야 할 하나의 세계가 있다! 하나 이상의 세계가 있다! 배를 타라, 철학자들이여!
-니체의 글 인용문 중에서.
p.362
뱃멀미를 하는 건 괴롭다. 그래서 파도가 잦아들길 바라지만 파도는 잦아들지 않는다. 파도가 잦아들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바다가 평온해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뱃멀미는 언젠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흔들림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뱃멀미가 사라졌을 때 배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른들의 거짓말이다. 어른들은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한다. 그것도 자신보다 젊은 사람에게. 뱃멀미가 가벼워졌다고 해서 배가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해도 잊어서는 안된다.
p.368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파도에 흔들리면서 항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