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연재를 마치며
오늘은 새벽 3시 27분에 일어나,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어느 신문사 신춘문예의 예심 통과작 열 편을 읽었습니다. 11시에 심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토요일, 일요일에 읽어뒀어야 했는데 줄곧 잠만 잤군요. 내가 잠을 자기 시작하면 나도 놀랍니다. 자고 또 자고 자고 또…… 자거든요.
줄곧 잠만 잤습니다, 라고 쓰려다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네요. 얼어버린 수도를 사람을 불러 녹였고, 잘못 흘러나간 우리 집 물이(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을 받았다가 모터를 작동시켜 하수구로 보내주게 되어 있는데, 모터의 작동이 멎었나봅니다) 골목을 빙판(얼음 두께가 8센티는 되더라니까요)으로 만들어놓아 모터 고치려고 와준 분과 함께 걱정스럽게 바라봤던 시간도 있었군요. 이 도시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이사를 열일곱 번인가 했어요. 언젠가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집에서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생각을 실현시켜준 첫 집인데, 막상 살아보니 늘 이렇게 무언가 빠지고 얼고 넘치고 부서지고…… 그럽니다. 추워, 추워, 를 입에 달고 살아요. 장갑 끼고 팔토시 끼고 양말 신고 귀마개도 있으면 할걸요, 아마.
수도를 녹이고 모터를 작동시키기만 한 것도 아니네요. 그 틈의 어느 순간에 식구가 내게 수전 보일의 노래를 들려줬습니다. I Dreamed A Dream.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노래지요. 나는 꿈을 꿈꿨어요. 영국의 스타 발굴 프로그램에 출연해 감동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일약 스타가 된 가수라고 합니다. 데뷔할 때의 감동적인 동영상이 온 지구촌으로 퍼지며 3억 회나 클릭되었다는군요. 유튜브를 통해서도 1700만이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는데, 세상에, 나는 어디 딴 세상에 살다 온 사람처럼 수전 보일이라는 이름도, 그녀의 목소리도 처음 듣지 뭔가요. 아마 듣거나 보거나 읽고도 눈앞에 닥친 일들 때문에 떠밀렸는지도. 우선은 그녀의 외모와 나이에 놀랐습니다. 그 당당함과 가창력에 다시 놀랐습니다. 어머니를 돌보느라 가수의 꿈을 접고 있었다는군요. 이 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모험을 하라, 고 했답니다. 이 세상에 안 계신 어머니에게 나도 내 삶에서 무엇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도전을 했다고 합니다. 막 웃었어요. 오디션이 끝나고 심사평도 안 듣고 터덜터덜 걸어들어가는 그녀를 보며. 나는 노래를 불렀을 뿐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어요, 멋쩍은 듯이 말하는 그녀를 보며 또 웃었습니다.
초인종이 울렸고, 어디선가 꽃이 배달되었던 순간도 있었네요. 무슨 꽃일까? 살펴보니 거기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는 카드가 있었습니다. 오랜 연재 기간 동안 선생님 덕분에 참 많은 추억들을 만들었습니다. 윤이와 명서를 떠나보낸 허전한 마음이 이 꽃으로 조금이나마 채워지길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많이많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연재 덧글러 일동-
꽃다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연재 덧글러 일동…… 누구랄 것 없이 내 머릿속에 지난 초여름에 함께 시작해서 이 깊은 겨울까지 함께해준 여러분의 이름이 은하수처럼 무리지어 떠올랐습니다. 연재를 시작할 때의 긴장이 끝날 때쯤 아쉬움으로 바뀌었어요.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 있어 나도 놀랐네요. 이러다가 최고로 긴 에필로그를 쓰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도 들었답니다. 여러분의 숨결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넷에 연재한다고 해서 작품 쓰는 과정이나 태도가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평소에 네시 정도에 일어나던 것을 한 시간 당겨 세시에 일어나기 시작한 것과, 작품을 발표하는 공간과 그것을 읽는 분들과의 생생한 소통이 달랐을 뿐입니다. 포털사이트도 아닌 이 공간에 일부러 찾아와 작품을 읽고 덧글까지 다는 분들은 문학을 사랑하고 책을 아끼는 분들이라는 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어요. 연재를 하는 동안 사회적으로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무겁고 우울한 순간들도 함께 견뎠던 것 같습니다. 모니터가 숨을 쉬고 있는 듯 그 살아 있는 느낌을 공유했던 순간들을 잊지 않을게요. 함께하는 동안 나도 25년 전에 데뷔하던 때로 돌아간 듯이 여겨지던 순간도 있었고, 잘 늙고 싶다는 꿈이 피어오르는 것도 느꼈습니다. 그러려면 이미 쓴 작품보다 다음 작품이 궁금한 현재형의 작가가 되어야겠지요. 남은 겨울은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깊이 품어 다시 낳는 시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미처, 혹은 차마 쓰지 못한 말들을 쓰는 시간요.
날이 밝았군요.
한 해 마무리 잘하고,
모두들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는 새해 되길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2009. 12. 21.
신경숙.